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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엄마가 양치전쟁 중에 깨우친 것

by 레나팍

나는 육아를 수월하게 하는 편이다. 육아가 쉽다는 의미가 아니라 육아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란 뜻이다. 하지만 육아가 수월하다고 말을 뱉는 순간 꼭 험난한 난이도 높은 일을 겪기 때문에 평소에 잘 얘기하진 않는다.


그런 내가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양치전쟁과 일찍 재우는 것이다. 이건 몇 년을 해봐도 잘 안된다. 자꾸 하면 개선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대로다. 그냥 나 혼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며, 아이를 잡았다가 놨다가 난리다.

아이가 씻고 양치를 해야 할 때 한 번에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고, 특히 4-5살 때는 매일같이 평균 30분이 걸리기도 했다. 별별 방법을 써봤지만 그때뿐이다.(칭찬스티커, 게임활용, 조선미 교수의 세분화된 단계 이동할 때마다 칭찬해 주기, 구글타이머, 시간제한하고 5분 단위로 미리 알려주기, 아이와 사전에 협의하고 약속하기, 보상하기, 협박하기, 어르고 달래기, 부탁하기, 강제로 데려가기, 남편에게 역할 넘기고 아몰랑 하기, 양치하고 산책 가자며 신나게 하기, 조건 걸기, 약속/신뢰에 대해 의미부여나 설명하기, 양치 잘하는 친구 얘기 꺼내기, 치과 가야 한다고 겁주기, "빨리 오라 했다"하며 카운팅 하기, 놀이로 승화시키기, 인어공주 샤워볼사서 흥미 유발하기, 물총놀이 하기, 목욕 놀잇감 두기, 충치의 무서운 이야기하기 등이다)


어쨌든 최근의 방법은 아이가 몇 분 후에 양치/샤워를 할 것인지 스스로 정하고 구글타이머로 맞춘 다음, 시간이 울리면 양치를 하는 방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다 되면 '10분만 더 놀게요' 또는 '이것까지만 먹고 할게요' 또는 '5분만 다시 맞출게요' '조금만 있다가 할게요' 또는 '잠깐만요' 하고 방에서 계속 놀기 등을 하며 미루는 날이 많다.


그럼 나는 한두 번 부드럽게 말해 본 뒤 안 통하면 양치전쟁을 선포하며 카운팅을 시작한다.


"엄마가 10셀 때까지 화장실로 와. 지금 안 오면 엄마는 양치 안 시켜주고 자러 갈 거야"를 외치며 말이다.


오늘도 평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여러 번 미뤘는데도 막상 양치할 순간이 다가오자 아이는 더 놀고 싶었던지 방에서 놀이에 집중하고 등 뒤로 들리는 내 협박의 말엔 대답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평소와 다르게 접근해 봤다.


아이에게 명령을 하다 멈추고, 가까이 다가가봤다.


"이게 뭐야?"

"이거 내가 그린 거야"

"오, 케이팝데몬헌터스 루미야??"

"응, 이거 루미가 지금 공연하고 있는 거야. 이거 마이크고 루미가 노래하고 있어"

"오! 여기 있는 스티커 루미인가?"

"아니, 이 스티커의 루미야"

"오... 정말 잘 그렸다!!! 진짜 루미네~~"


"재밌게 그림 그리고 있었구나. 근데 00 이는 왜 엄마가 하는 말에 대답을 안 했어?"

"...."

"양치 안 하고 더 놀고 싶구나?"

"응"

"루미 그림 그려서 진짜 재밌게 놀고 있었네. 더 놀고 싶겠다. 아 근데 엄마가 진짜 궁금한 거 생각났어. 우리 루미 미니 그림 가지고 화장실 가서 계속 얘기해 볼까? 엄마 궁금한 거 있어~~~~"

"그래그래^^ 궁금한 거 뭔데?!?!"


너무도 순순히 아이가 화장실로 총총거리며 따라갔다. 바로 1분 전만 해도 어떤 말에도 꿈적도 안 할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마치 '해와 바람' 이솝우화에서 거센 바람보다 따뜻한 햇빛이 나그네에게 통했던 것처럼 나의 지시나 협박의 방법들은 전혀 통하지 않다가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의 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부드럽게 다가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장실로 당장 이동했다.


아이가 대답도 안 하고, 내 말은 통하지 않아서 답답한 감정이 올라왔는데 화내는 대신 잠시 멈추고 아이에게 다가가 보니, 아이는 그냥 놀이에 너무 집중해서 놀고 있었을 뿐이었다. 엄마의 거센소리는 통과되었지만, 현재 아이의 관심사에 같이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고 마음을 읽어주니 아이는 내 말에 쏙쏙 대답했다.


그리고 난 루미의 여러 모습 중에 어떤 모습이 제일 좋은지 묻고 아이와 즐겁게 대화하며 수월하게 샤워와 양치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해야 할 것을 해야 하는 행동에 집중했다. 그리고 역시나 한 번에 화장실로 와주지 않는 상황에 부딪히고 인상을 써 가며 미션을 클리어 할 단도직입적인 방법을 써 온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새로운 방법은 놀랍도록 서로 힘들이지 않고 효과도 있었다. 그동안의 내 모습에 반성하며 쓰는 글이다.


아이의 시선에 맞추고, 조금 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공감과 감정에 집중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최근 법륜스님의 글에서 본 육아 문구가 너무 좋아서 집에 붙여놓았다.


필요이상으로 야단치지 않기


오늘도 이 글귀를 새기며 조금씩 발전하는 엄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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