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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achK Nov 02. 2020

쌀국수, 생의 남루함을 위로하는 맛

(1) 쇠고기 쌀국수



  이 음식을 ‘phở bò một trứng’이라고 한다. 한국어로 발음하면 “포 보 못 증", 번역하면 ‘날달걀(증)을 하나(못) 쇠고기 쌀국수(포 보)’다. ‘포 보 하이(둘) 증’도 당연히 가능하다. 달걀을 풀지 않고 그대로 후루룩 마시는 것이 제대로 먹는 방법이다.


 *뜨거운 국물에 푼 날달걀은 베트남 남자들이 즐겨 먹는 정력 증진식이다.




 쌀국수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분’, 다른 하나가 ‘포’. 분은 한국에서 흔히 먹는 소면과 형태가 같다. 즉, 면의 단면이 동글동글하다. 반면에 우리가 흔히 '쌀국수'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포다. 납작하고 넓은 모양이다. '포OO', '포XX' 등등 국내에 있는 각종 쌀국수 프랜차이즈 이름에 거진 들어가는 '포phở'는 바로 이런 뜻이다. 국수는 전세계 어디든 있는 음식이지만 쌀국수의 본고장은 아무래도 동남아고, 그 중에서도 태국과 베트남인데 태국식은 볶고, 베트남식은 끓인다. 즉, 뜨거운 국물에 말아 후루룩 들이키는 쌀국수는 베트남식이다.




 한국에서야 쌀국수를 별식으로 즐기지만 베트남에서 쇠고기 쌀국수는 훌륭한 한 끼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밥쯤 될까. 삼시세끼 즐길 수 있는 국밥과 다른 점은 쌀국수는 거의 아침 끼니로만 먹는다는 점이다. 부산하고 쫓기는 아침 출근 시간에 쌀국수 노포에 앉아 주문을 하면, 아무리 사람이 많을 때라도 2분 안에 쌀국수는 나온다. 2분 안에 받아 10분이 채 걸리지 않고 먹고 나가는 베트남식 패스트푸드다.


 아침거리를 책임지는 베트남 쌀국수집들은 보통 05시쯤 열어서 09시30분이 되면 이미 문을 닫는다. 점심 넘어서까지 문을 여는 쌀국수집들은 대개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가게들이며, 주말에도 아침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07시 이후로는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거리기 때문에 편하게 먹고 싶으면 먹고 다시 들어가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일찍 갔다오는 편이 낫다.




 베트남은 소 비육법(肥育法)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 베트남의 소란 거개 농우(農牛)인데, 출퇴근길에 국도변 들판에 그냥 풀어놓고 기르는 남방 소떼를 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 소를 농사 짓는데 이용하고, 나이가 들면 도축장에 판다. 그러므로 고깃집에 가서도 원산지를 확인하여 호주산 내지는 미국산이 아니라면 시키지 않는 편이 좋다. 입에서 살살 녹는 쇠고기를 최고로 치는 우리 입맛에 평생을 농사를 지은 소의 단단하고 질긴 살은 단백질이라기보다는 생고무에 가까운 식감이다.



 그러나 이런 소들이 쌀국수 재료로는 아주 이상적인 맛을 낸다. 쌀국수집 부엌을 살짝 기웃거리면 초등학생 애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큰 솥에 항시 고기 국물이 끓는다. 축생으로 태어나 너른 들판에서 일을 하다 생을 마친 우공(牛公)의 삶이 24시간 이상 끓어 켜켜이 풀린 육수는 그야말로 뭐라 형언키 힘든 깊은 맛이 난다. 베트남 육수에는 오로지 소만 들어간다. 그래도 그 맛은 고국의 쇠고기무국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더 깊고 시원하다. 한국 소가 축사에 갇혀 보내는 3년 간의 우생(牛生)으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맛이 베트남 쇠고기에서 우러난다. 아마 베트남 쇠고기는 구워서 한 점 안에 생을 응축하여 먹기에는 그 생이 기니 펄펄 끓여서, 맛을 올올이 풀어내어 마셔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그토록 오래 끓인 국물에, 역시 그만큼이나 오랫동안 익힌 ‘포’를 넣어 한 그릇을 훌훌 말아 먹는다. 쌀면은 찰기는 밀면보다 부족할 지언정, 국물에 넣어 오래 끓여도 절대 붇지 않는다. 많이 끓어 숨이 살짝 죽은 쌀국수는, 맛의 홍수 같은 국물의 좋은 짝이 된다. 여기에 갖가지 향신료를 취향대로 넣어서 먹으면 된다. 아예 부엌에 가서 자기 취향대로 향신료를 만들 수 있도록 여러 양념이 구비되어 있어,시간이 있고 가게에 익숙한 단골은 본인이 향신료를 커스터마이즈한다. 이렇게 먹는 게 베트남식 쌀국수이며, 베트남식 쌀국수 식당이다. 베트남 본토 쌀국수에 비하면 미안하지만, 한국 프랜차이즈형 쌀국수는 쌀국수는 육수맛 육수에 말아 넣은 ‘쌀면 샤브샤브’에 가깝다.


 ‘포 보’, ‘포 가’, 그리고 ‘분 하이싼’. 아침 끼니로 먹는 쌀국수는 이렇게 세 가지다. 먹는다기보다는 들이켜는 것에 더 가까운 쌀국수, 3년 간 베트남에 거주하며 수없이 먹고 수집한 쌀국수에 대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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