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심리상담을 받아보신 적이 있다면, 상담사가 당신이 겪은 일 속에서 어떤 ’ 감정‘을 느꼈는지 반복적으로 물어본다는 걸 아실 거예요. 이 질문을 처음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제 감정이 뭐 중요한가요?”라고 답하시는 분도 계시고, 혹은 생각을 이야기하셔서 다시 감정을 여쭈어 보면, “앗, 이게 감정이 아니고 생각인가요?” 반문하시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내면으로 느끼는 감정보다 눈으로 보이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아파도 꼭 감정이 힘든 것보단 몸이 아픈 것을 더 아프다고 ‘인정’ 해주기도 하고요. 감정이 이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은 아마 심리상담소, 아니면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 불리는 음악 정도일 것 같네요.
감정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상담소에서는 왜 그토록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계속 감정을 물어보는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보다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어떨 때 화를 내고, 미안함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지, 무엇을 힘들다고 느끼고 기쁘다고 느끼는지. 감정 속에는 당신이 좋아하고, 불쾌해하고, 소망하고, 두려워하는 것들, 더 나아가서는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까지 알려줍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에 관해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면 일상의 작은 감정들을 살펴보는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한 사람의 감정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자주 느끼는 감정이 있고, 가장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 있죠. 견딜만한 감정도 있고, 쌓여서 터질 것 같은 감정도 있어요. 감정을 다루기 어려운 분은 관계뿐 아니라 공부나 업무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겪는 ‘게으른 완벽주의’ 그리고 그로 인한 ’ 미루기 행동‘에 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감정적 교착상태, 감정조절의 어려움이 일을 미루는 결과를 낳는다고 해요. 그리고 우린 가까운 관계에서는 쌓아둔 감정이 많아서 쉽게 터져버리기도 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고, 더 이상 듣기 싫어 소통을 차단해 버립니다. 이처럼 감정의 패턴은 어딘가 막히고, 불편한 지점들을 만들어 인간관계, 그리고 나의 업무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감정 속에는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의 경험이 담겨 있어요.
감정에 대해서는 정말로 정말로 할 말이 너무 많답니다. 그중에서 이번 <슬로우 마인드> 2번째 수업에서는 <감정에 담긴 히스토리>라는 제목을 뽑았어요. <슬로우 마인드>는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주제들을 모았는데요. 사랑은 세밀한 관심과 깊은 이해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죠.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려면 ‘감정’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고요. 감정은 나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랍니다. 감정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모든 삶의 경험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삶의 경험을 토대로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 만족감을 주는 것들에 반응하고, 반응을 쌓아서 패턴이 되어 가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우리 몸에 고통과 죽음의 위기에 찾아오기도 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고통과 죽음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당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어떤 것이 관계적 위기였나요? 신체적으로 작고 약해서 괴롭힘을 받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공격적이고 거칠어서 혼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늘 완벽해야만 생존했을 수도 있고, 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숨죽이고 있어야 생존했을 수도 있죠. 그리고 이 모든 환경에서 반응하는 당신만의 타고난 기질적인 면들이 있을 거예요. 타고난 기질과 나를 길러준 부모님, 사회적 환경들이 맞물려서 당신의 내면에 감정 패턴이 생깁니다. 그 감정은 당신을 위기로부터 보호하고, 안전한 곳으로 향하도록,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생존 도구랍니다. 나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들을 두려워하고, 불쾌하게 여기고, 거부감이 들게 하고, 나를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좋아하고, 그 방향으로 행동하고 싶게 힘을 실어 줍니다.
과거로 이끄는 감정들로부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법.
그런데 문제는 이 감정이 내 삶의 과거 경험들로부터 쌓인 직관적인 것이라서, 그때와는 달리 변화한 현재 상황과 성장한 나의 능력에 맞지 않게 문득문득 나타난다는 거죠. 나는 그때의 어린아이가 아닌데도 마치 작은 아이처럼 두려워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휩싸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나를 괴롭히던 그 사람이 아닌데도, 비슷한 특징을 발견하면 그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편견에 휩싸여서, 나를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될 일에서 작은 실수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도 실수에 대해 반복적으로 학습한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매 번 비슷한 연애패턴을 반복하고, 어떤 회사로 이직해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어느 순간부터 삶이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된 느낌이 든다면, 이제는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닌 당신의 감정을 살펴볼 때일 것입니다.
내 감정이 왜 이러한 패턴을 만들어왔는지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과거에 머물고 과거로 이끄는 감정과, 현재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교수님께서,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상처가 나를 보호하려고 만드는 색안경, 내가 채우고픈 욕구들이 만드는 색안경을 모두 벗어야 합니다. 두려움과 욕망을 잠깐이라도 내려놓는 힘이 필요해요.
과거로 이끄는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내 감정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 모두 며칠간 감정일기를 쓴다고 해서 이뤄지는 일은 아닙니다. 마음이 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시간을 들인다는 건, 그만큼 사랑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죠. 마음을 향해 쓰는 시간과 노력은 겉으로 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코 숨겨지지도 않는 성숙함이 됩니다. 눈빛과 표정, 말투와 몸짓, 어떤 순간의 무심코 내뱉는 말들 속에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의 숨겨진 시간을 알아보게 하는 것들로요. 우리 사회는 대부분 비싼 돈으로 사는 것,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반대로 천천히 조금씩 쌓아가는 마음의 힘에는 그만의 가치가 있죠.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한 사람의 매력으로요.
*<감정에 담긴 히스토리>는 1월 26일(금) 온유 심리상담소에서 진행되는 <슬로우 마인드> 2회차 이야기 주제입니다. 이야기 주제에 맞춰 명상 세션도 진행됩니다. 가벼운 명상과 심리 이야기로 마음이 쉬어가는 슬로우 마인드로 초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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