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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r 19. 2024

욕심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디뎌 도착한 곳에 아무도 없을 걸 상상해 본 적 있다. 마음을 잡을 수 없어서,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해서, 가슴 한 곳에 고여 썩기 시작한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메마른 사막처럼 비쳤을 때, 나는 겨울비처럼 울고 싶었다. 차가운 날씨 때문에 눈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속은 뜨거운 겨울비가. 종착역에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 역에 서 있을까.

 지난날의 나의 선택과 삶을 후회하면, 지금의 내 모습이 더없이 초라하고 못나보였다. 더 늙어 보이고, 나이 들어 보였다. 시간을 거슬러 젊어질 수 없고, 애석하게도 점점 더 나이 든 노인의 얼굴로만 남게 되겠지만, 어쩌면 나는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싫고, 마음이 연약해지는 게 싫다. 어려선 세상을 몰라 울음을 터뜨렸다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을 알게 돼 울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의 후회나 엎을 수 없는 무거운 책임감, 나만 바라보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같은 이유들이.

 삶은 잔인하게도 후회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상냥하게 손을 뻗어, 구덩이에서 나오라고 손을 뻗거나 일으켜주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 나와야만 하는 게 인생이었다. 모든 면에서 냉정해져야만 했다. 뜨거운 감정은 오히려 더 깊은 우울의 땅굴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지금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은, 오직 세상에 대한 증오와 미움, 어쩌면 냉정한 무관심이 전부였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타인에게 상처주기 싫어 어떤 날은 내 세상의 어둠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우울감은 잠식하고 나타나, 나를 끝없이 어두운 길로 이끌었다. 언젠가의 나의 삶은 늘 사랑으로 일렁였는데, 오늘의 나는 사랑으로 세상을 품지 못했다. 온통 주변이 미움 투성이었다. 모든 삶과, 모든 하루와, 모든 순간들이.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 미움만이, 나를 더 악독하게 만들었다.

 그런 순간에도 틈틈이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를 평생 잊지 못했으면 좋겠고, 내가 죽어서도 영원히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영원한 이름으로 기억된다는 건 기쁜 일일까, 슬픈 일일까. 이제는 두 번 다시 죽음에 대해 떠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는 이따금 우울감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곤 했다. 그러나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발버둥 치기 바쁜 사람이었다.

 나는 마치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같아 보였다. 남들에게는 잔잔한 호수처럼 평안한 얼굴을 보이고, 하고 싶은 일도 척척 해내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실상 내 마음은 여름날 아지랑이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목은 메여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사실 이제 나에게는 더 열심히 살 기력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오히려 그 옛날의 뜨거운 열정과 용기와 사랑 같은 것들은 뜨겁게 녹아 없어져버렸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그때는 안간힘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목적지 없는 행복을 찾아 떠도는 중이었고,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랐다. 뭔가를 하는 모습이 열심히 하는 것처럼은 보였으나, 실상 까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람이었다.

 이제 나는 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쇠약해졌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자신도 없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삶에 대한 안정감은 내가 열심히 살지 못하게끔, 세상의 변두리 밖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늙고 병들게 만들었다. 나는 병들기 싫어 아득바득 발악하고, 조금이라고 젊어지고 싶어 운명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 욕망이 오늘날의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지나버린 일들에 대한 후회와 확실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선택과 세상을 몰랐다는 알량한 변명만이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세상을 좀 더 가볍게 살고 싶다. 이런 생각도, 우울감도 들지 않게. 무거운 감정의 추에 매달려 지구의 중심까지 꺼지지 않고. 그냥 조금 가볍게, 냉정하고 무관심하더라도 아무런 감정 없이, 때론 그렇게 삶을 살아내 보고도 싶다. 행복할 필요도 없고, 젊음과 영원한 사랑 같은 걸 지켜보겠다는 욕심도 모두 내려놓은 채, 삶은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 생명처럼, 내 마음에 행복하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튀어 오르지 않게. 왜 나는 삶을 가볍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의식해야만, 비로소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욕심은 쉬운데, 포기는 어렵다.

 나는 모든 것을 쥐고 놓을 수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 십수 년을 발목에 족쇄를 물린 채 바락바락 기어 왔다. 찬란하고 멋지게 살고 싶은 욕심, 비로소 행복하고 싶다는 이 욕심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미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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