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플레 Aug 04. 2022

주간 영화

2022.07.23-2022.07.29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1)


<한산>은 이순신도, 와키자카도, 나대용도 그 어느 누구의 영화도 될 수 없다. 결국 공허한 스크린을 메우는 건 다름 아닌 거북선이다. 아니 어쩌면 거북선이라는 물리적인 집합체가 아니라, 그 관념 자체일지도 모른다. '복카이센'을 연발하는 왜군이 궤멸되는 모습보다도 먼저 눈에 인식되는 건, 구선이 전장을 누빌 때 피어나는 스펙터클한 몇몇 순간들이다. 실제 역사에서의 승리, 실제로 제작된 거북선의 물리적인 질감이 스크린에선 가상의 무언가가 개입된 채로 구현된다. 그렇다면 관객은 무엇을 실감하게 되는 걸까? 그건 바로 기대감이 충족된다는 사실 그 자체다. 기대하던 해전의 모습, 기대하던 이순신의 지략, 기대하던 왜구의 패배. <한산>은 그 지점에선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이 미리 설정해놓은 기대치에 <한산>을 끼워 맞추려고 한다. 이때 <한산>이 재밌는 건, 그 기대치를 채워 넣는 데 있어, 캐릭터가 아닌 거북선이라는 관념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2004)


사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에필로그가 없었다면 여운이 오래가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일단 들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어디에 집중했나? 감정의 폭과 넓이를 매만지는 것? 시공간을 넘나드는 유려한 편집을 앞세워 퍼즐을 짜 맞추는 것? 형사들의 수사 과정은 자연스레 사건의 인과와 연결되면서 그들의 사연을 짚어볼 수 있게 만든다. 그렇지만 영화는 특별히 어딘가에 포커스를 두지 않는다. 서술 트릭이나 스타일이 가이 리치의 풍미를 살려보려는 시도인 건지, 캐릭터 라이징이나 찰진 대사들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흔적을 재현하려는 건지, 정리가 될 듯 말 듯 하면서도 이상하게 모여들지 않고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사족처럼 들러붙는 에필로그가 어쩌면 집약될 수 없는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구간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주간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