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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Aug 31. 2022

주간 영화

2022.08.13-2022.08.19

<풀타임(À plein temps)> (에리크 그라벨, 2021)


<풀타임>은 하루가 시작한 뒤 하루가 끝날 때까지의 시간, 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관객이 시간의 흐름을 감각 혹은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시간이 흘러간다는 정보 혹은 날짜나 시간 등의 구체적인 표지를 통해서 제공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풀타임>을 통해 부각되는 건, 쥘리(의 일상)와 연관된 특정 행위들이 그를 둘러싼 시간 흐름의 개념을 무효화시킬 만큼 강박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히치하이킹의 경우가 그렇다. 그 행위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시점이 출근 전 아침인지, 퇴근 후의 오후 내지 저녁인지 알 수 있는 단서는 그저 길거리의 점등 여부와 하늘의 어둡고 밝은 정도뿐이다. 대신에 관객들은 히치하이킹을 하는 행위가 영화 어느 구간에 삽입되어도 그 자체로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즉 <풀타임>에서 쥘리가 버텨내는 일상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숏과 시퀀스 단위로 봤을 때),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들의 순서를 임의로 재조합한다고 쳤을 때, 우리는 주말에 있을 아이 생일 파티를 위해 트램펄린을 구매하려는 장면이나 면접을 위해 근무지를 이탈하는 장면 등 몇몇 구간을 제외하면, 그 순서 자체가 이리저리 뒤바뀌어도 영화가 성립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풀타임> 속 시간선은 하나로 특정될 수 없다. <풀타임>은 쥘리의 일주일 조금 넘는 분량 동안 쥘리의 일상을 추적하고 있지만, 실상 다루게 되는 시간의 범위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쥘리가 짊어져야 하는 평생~찰나를 마구 오가고 진동하는 어떤 시간의 총체를 아우르는 영화가 되는 셈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래서 특정 시간대를 명확히 분간해내거나 시간선을 갈라놓는 작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Mission Impossible: Logue Nation) (크리스토퍼 맥쿼리, 2015)


1.

초고층 빌딩 등반, 모래폭풍 돌파 등의 시퀀스가 강조된 듯한 지난 편의 화두는 믿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선 관념적으로 인식하는 차원이든, 물리적으로 실감하는 차원이든 간에 그저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화두가 영화 내내 배어 있던 느낌이었다. 그런데 <로그네이션>에선 유사한 듯 보이지만 상당히 다른 결이 묻어난다. 인식하는 과정과 맞닿은 믿음(혹은 믿는 행위)의 작동 여부보다는, 믿음이라는 관념 자체가 어떤 조건에서 성사되는지 따져보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가능성 혹은 확률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야 한다면, 아니 그것만이 나와 세계를 지탱하는 논리이자 형식이라면, <로그네이션>의 후반부에서 헌트가 보여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헌트가 선사하는 그 광경을 두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 장면에서 관객은 과연 에단 헌트라는 캐릭터의 설정을 기반으로 세계의 논리와 정보를 수용할 수 있을까? 혹시 지금껏 프랜차이즈화를 이룩한 톰 크루즈라는 배우의 특정 면모가 선행해서 가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은 걸까? 그 장면이 과연 헌트라는 존재를 입증시키는 혹은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2.

에단 헌트는 또다시 아니 늘 그랬듯이 새로운 위협에 직면한다. 와해된 조직이 재생되는 건 이제는 불가능해 보인다. 잠시나마 팀플레이를 선보였던 지난 소동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팀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개인 역시도 활개칠 수 있는 환경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헌트는 독자 행동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아니 돌파구라는 워딩보다는 생존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일까? 헌트는 무엇을 직면하게 됐나?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대상은 세계인가 나 자신인가? 만약 그것을 분간할 수 없다 해도 <로그네이션>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관객에게 관철시키려고 든다. 서사의 하위 개념과 맞닿아 있는 개연성, 핍진성 따위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관념적인 요소들, 다시 말해 톰 크루즈와 에단 헌트를 오가는 어떤 존재성 같은 것들 말이다. 5편이 지속되는 동안, 에단 헌트이자 톰 크루즈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왔던 어떤 궤적이 있을 텐데, <로그네이션>은 그것에 대한 일종의 점검 과정이라도 보아도 좋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 극한 환경에서 육체는 어디까지, 그리고 무엇을 지탱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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