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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Sep 21. 2022

주간 영화

2022.09.03-2022.09.09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My Blueberry Nights)> (왕가위, 2007)


왕가위가 홍콩을 벗어나 찍은 영화는 본편 말고도 <해피투게더>나 <동사서독>이 있지만, 이 영화는 유독 낯선 질감을 환기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영화가 기존 왕가위 영화에서 바뀐 게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매개물(유리창 등)을 두고 인물을 클로즈업하다가 갑자기 컷하면 스텝 프린팅으로 멀어져 가는 혹은 흔들리는 인물의 모습을 담아낸다. 물론 이런 지점들에 그의 시그니처가 녹아든 건 맞다. 그는 늘 그렇게 영화를 만들어 왔고,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당연하게도 기존의 왕가위 월드라는 공식을 들이밀 때 어긋나는 지점이 전혀 없는 영화다. 인물들은 늘 실연당하고, 답답할 정도로 미련을 못 버린다. 늘 추억 혹은 회상을 위한 매개체를 물리적으로든 관념적으로든 한 번 이상은 감각해야 하고, 누군가(이를테면 아버지)를 떠올리거나, 방황 끝에 재회한다(혹은 재회의 여지를 남긴다).


아르헨티나에 녹아들고 사막을 감싸 안고 홍콩 거리에 스며들던 양조위를 떠올려 본다면,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주드 로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하다. 킬러의 곁을 맴돌던 베이비를 떠올리게 하는(외관상) 나탈리 포트만 역시 배우에게 내재된 기운이 억눌린 듯한 묘한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어쩌면 소통의 문제로 왕가위가 원하는 디렉팅이 성사되지 않았을 확률도 있고, 왕가위와 뉴욕, 그리고 서양 배우의 조합이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금 선명해진 사실이 있다면, 어쩌면 왕가위의 세계에선 카메라로 세상을 응시하는 방식만큼이나 배우와 감독의 궁합을 따져 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점이 아닐지.


사실 촬영과 삽입곡 등을 통해 관념의 영역에 놓인 요소들을 공감각적으로 매만지는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이 영화에선 어쩐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변환해야 할 관념적인 요소들이 낯선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인물을 파편처럼 담아내는 다리우스 콘지의 카메라 운용 방식과 서술 대상으로 삼은 감정, 생각 등의 덩어리들이 접합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데, 이는 무심하고 느슨하게 교차됐던 <중경삼림>, <타락천사> 등과 비교할 때 본편이 지극히도 정형화된 로드무비 구성에 충실하다는 한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사랑과 아픔, 고독과 방황 등 불안하고 흔들리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점은 같아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엔 성장 혹은 회귀를 둘러싼 어떤 전형적인 상징 내지는 구조가 들러붙어 있다. 게다가 파인애플과 눈물을 흘리는 빨래, 아이스크림 트럭이나 앞치마에 뿌리는 케첩 등은 비교적 느슨하게 의미화됐지만 이 영화에 스며든 것들은 그렇지 않다. 블루베리 파이와 열쇠 꾸러미, 외상 계산서 등의 매개물이 어쩐지 지난날의 왕가위 영화 속의 그것들보다는, 표상하거나 지시하는 바에 다소 속박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스티븐 스필버그, 2018)


숨은 그림 찾기 하듯 펼쳐지는 레퍼런스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흥미와 의문이 함께 피어났다. 흥미라면, 당연히 익숙하거나 혹은 낯선 대중문화 속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접하는 재미에서 올 테지만 의문점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어쩐지 시점에 관한 문제 같다. 다만 원작을 각색하는 작업에 있어, 원작에서 다루는 그것과 스크린으로 불러낸 소설 속 대중문화의 시점을 맞추는 차원에서만 접근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보다는 영화가 어떤 시점에서 어떤 시점을 회상하고 낭만을 부여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닐지. 그러니까 2010년대에 제작된 영화에서 가상으로 설정한 근미래인 2040년대를 다루는 상황에서 과연 건담과 메카고질라, 오버워치의 트레이서를 한 스크린으로 불러내는 방식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말이다.


일례로, 현시점(개봉 당시 2018년)의 관객과 영화 속 204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2016년에 출시된 오버워치를 바라보는 관점이 과연 같을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게임을 떠올려 보면, 대략 시점을 맞췄을 때 '디아블로'를 예시로 들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영화 속 그들도 오버워치를 대하는 데 있어 우리가 디아블로 1편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비슷하게 먹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의 시점이 영화 속과 일치하는 2045년이 됐을 때, <레디 플레이어 원>이 스스로가 다시 레퍼런스화되는 그 순환고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사실도 주목하고 싶다. 즉, 미래의 관객들은 2018년에 나온 <레디 플레이어 원> 속에 재현된 레퍼런스를 통해, 27년 전의 대중 문화는 건담과 고질라, 오버워치를 이런 관점에서 녹여냈을 거라고 간접적으로 예측하게 된다. 그래서 <레디 플레이어 원>을 통해서 느껴지는 건, 레퍼런스를 잘 핸들링했다는 사실보다도, 특정 시점의 레퍼런스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작업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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