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엔딩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마지막에 엉겨 붙는 "실제 주인공은 이러쿵저러쿵…살다가 어쩌구저쩌구…됐다고 합니다" 따위의 해설 멘트가 스크린을 가득 수놓을 때, 영화는 지금껏 취해왔던 전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다. 자멸까진 아닐지 몰라도 상당히 아쉬운 귀결이다. 그 이유는 바로 <캐치 미>가 실화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작동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과의 접점을 부각할 때 영화가 뿜어내는 가능성, 영화가 만들어내는 탐색 지대가 쪼그라든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쪼그라들어도 사실 문제될 건 없지만, 그냥 아쉬울 뿐이다.
실제 프랭크의 사연이 어찌 됐든, 그의 인생사가 실제로 어떠했든 간에 영화는 줄곧 프랭크의 시점을 관객과 나누려고 한다. 이를테면 와인 얼룩이 묻은 카펫 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프랭크의 시선, 브렌다의 부모님을 바라보는 프랭크의 시선 따위의 것들. 그러니까 <캐치 미>는 프랭크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FBI를 속이고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했다는 사기극을 직조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외로움에 둘러싸인 한 소년의 내면을 바닥까지 들여다보려는 시도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시도는 탁월한 캐스팅을 통해 별 어려움 없이 성공적인 결과물로 나타났다. 디카프리오의 배역 소화도와 이해도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보조하는 톰 행크스 역시 상대 역과 합을 잘 맞추면서 시너지를 냈다.
다시 말해 <캐치 미>는 실화를 질료 삼아 서사를 꾸려가면서 소년이 아버지와, 또 어머니로부터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진동을 (감독 본인의 관점과 의중을 충분히 반영해) 담아내고 있는 영화다. 그에 따라 영화는 첩보원 뺨치는 프랭크의 위장술이 유효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묘사할 뿐이지 그 행위가 가져오는 연쇄 작용이나 후폭풍을 밀도 있게 담아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브렌다의 부모님에게 의심을 살 만한 순간들을 얼렁뚱땅 넘긴다거나 하는 순간들은 묘사되지만 그 이후는 생략되어 있지 않나. 당연하다. 애초에 그런 구조를 쌓아가는 데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치 미>는 마지막 순간에 다시 현실을 스크린에 불러내면서 스스로를 '희대의 사기극'으로만 가둬버리는 악수를 둔다. 프랭크를 그저 영화 속에 내버려 두면 안 됐던 걸까? 시작부터 실화에 기반했다는 자막이 뜨고 있으니, 이 같은 엔딩 역시 필연일 수밖에 없던 걸까? 왜 굳이 현실과 결부시켜야만 하나. 어차피 극중 시공간을 명시하는 자막이 계속 등장해도, 그건 스크린 내부의 논리에서만 가능한 시공간일 뿐이지 않나. 촬영 당시 시점에서 어떤 장소를 카메라로 응시한 뒤 편집과 가공을 거쳐 1967년 미국 어딘가를 재현하는 것과 실제로 1967년의 그곳을 담아내는 건 동치가 아니니까 말이다. 스필버그의 눈을 떠난 레오의 프랭크는 카메라를 거쳐 그만의 세계를 딛고 설 채비를 마쳤지만, 끝내 <캐치 미>는 그 몸부림을 지속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영화와 현실이 연결된 순간, 그 움직임은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