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이는 마음
요즘 유난히 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바로 '모여있어서 더 아름다운 것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오랜 시간 꾸준히 기록해놓은 일기, 사진, 글 등이 그렇고, 부엌 서랍 속에 들어있는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여러 종류의 티백 뭉치들, 비슷한 결의 책들로 가득 찬 누군가의 책장, 심지어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 진열되어있는 케이크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만 있을 때보다 모여있을 때 더 아름다워지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맥락' 덕분인 것 같다. 하나일 땐 덩그러니 놓여 있지만, 모이면 맥락이 생겨서. 그러고 보면 별도 하나만 있으면 덩그러니 혼자 있는 느낌인데, 여러 개가 붙어 움직일 땐 사람들이 별자리 이름도 붙여주고, 전설도 만들어준다. 확실히 뭔가가 모이면 그 안에서 어떤 류의 맥락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재탄생하나 보다.
* [맥락:脈絡] :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
무엇이든 하나만 있을 땐 그 하나로서 그칠 것들이, 여러 개가 쌓이기 시작하면 다르게 보인다. 아마도 모여있는 것들 간의 연관 관계 속에서 우리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연관 관계를 보고 여긴 이런 느낌의 장소구나, 이 사람은 이런 면이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무엇보다 내가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모이고 쌓인 것들을 보고 가장 기쁜 경우는, 한 사람이 그 안에 공들인 마음과 애정을 느낄 수 있을 때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겠지만, 첫 발을 내딛고 처음 돌을 쌓아 올릴 때 지금처럼 되리라 알고 시작했을 리가 없다. 이런 맥락이 만들어질 줄, 쌓이고 쌓여 지금의 색깔과 분위기가 될 줄 아마 몰랐을 거다. 다 같이 모르는 건 매한가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노력을 공들였다는 그 사실에 매번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따지면 어쩌면 맥락이라는 것은 언제나 '실행'과 '꾸준함'을 전제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시도하지 않으면 뭔가가 쌓일 리가 없고, 모일 수도 없다. 또 그 뒤에 꾸준함이 동반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맥락도, 이야기도 뚝 끊기고 만다. 마치 도중에 이야기가 멈춰버린 빈 페이지처럼.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포기는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닐까.
물론 오랜 시간 뭔가를 만들고, 모아 나가다 보면 때로는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였나'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지금까지 모아뒀던 거랑 어쩐지 별로 안 어울리는 거 같고, 괜히 튀는 것 같고, 어딘가 모자란 거 같고.
하지만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의 것들만 빈틈없이 꽉 차 있으면 그게 좋을까? 의외로 조금은 숨이 막힐지도. 게다가 사람들은 의외로 어떤 대상이 가진 부족한 지점들 덕분에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항상 바람이 통할 정도의 빈틈은 모두를 위해서 만들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잡동사니에 치이고 싶지 않다면.)
물건을 모으거나 기록을 쌓아나가는 일이 됐든, 공간을 채워나가는 일이 됐든,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묵묵하게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새삼 그리운 날.
언젠가는 점이 선이 되고, 또 그 선이 면이 될 거라는 말을 믿고 싶고,
이왕이면 기쁜 마음으로 점들을 찍고 싶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