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ah Mar 13. 2021

좋아하는 것들을 대할 땐

뜨겁게 뜨겁게

예전엔 뭔가가 좋아지면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이든,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기분 좋은 그 상태를 맘껏 즐기기 이전에 안달 나는 마음에 빨리 결론을 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반대로 '내가 빨리 질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필요한 걱정도 있었다. (역시 살면서 조급함이라는 건 좀처럼 도움되는 법이 없다.)


결론적으론 둘 중 어느 쪽이든, 뭔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상태가 영원하지 못할 것을 미리 염려했던 것 같다. 

사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왜 사람은 진심일수록 안달복달하게 되는지. 


그렇게 뭔가를 마음 놓고 좋아하는 법을 잘 몰랐던 나는 늘 조금씩 마음을 아껴두고, 남겨놨던 것 같다. 

혹시라도 실망하지 않게, 또 허무하지 않게.


영화관에서 여섯 번도 넘게 봤던 영화 <라라랜드>. 프로모션용으로 2018년 달력이 나왔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밤에 방청소를 할 때마다, 자꾸 몇 년 지난 새 물건들이 줄줄이 나오는 거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잔뜩 모아둔 <라라랜드> 달력, 선물 받고 너무 기뻐서 포장조차 뜯지 않은 채 넣어뒀던 각종 향수, 화장품, 텀블러, 티백, 커피 원두 등. (유통기한 지났다) 혹시나 닳을까 아끼는 맘에 보관만 해두던 목걸이와 반지들까지. (녹슬었다)


너무 좋아서 아껴두려던 마음에 2018년 달력은 뜯기지조차 않은 채 3년째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걸 가만히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겁낼 필요 없었는데. 

좋아서 맘껏 누린다고 그게 어디론가 증발하는 건 아니었을 텐데. 

설령 그로 인해 뭔가가 닳았다고 해도 그 시간들이 주었던 행복이 훨씬 컸을 텐데. 


그땐 에너지 보존의 법칙마냥 내가 지금 뭔가를 얻으면 언젠가는 뭔가를 잃을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틈내서 다녀온 성수동


결국 버려야 하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상자에 담으며 다짐했다.

그냥 뭔가가 좋아지면 그 순간에 마음껏, 넘치게 좋아하자고.

그런다고 해서 큰일 생기는 거 아니니까 누릴 수 있을 때 누리자고. 


언젠가 씁쓸해지거나 공허해진다고 해도 이미 충분한 행복을 느꼈을 테니 다 괜찮다. 

적어도 이렇게 뜯어보지도 못한 채로 분리수거통에 넣게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밖은 벌써 봄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사람이든, 직업이든, 일이든, 취미든, 취향이든 뭔가에 아낌없이 푹 빠질 수 있는 사람들.


그로 인해 행복하다 한들, 슬프다 한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 알고 자신의 선택이 가져오는 온갖 종류의 결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눈이 너무 반짝반짝해서, 행복해 보여서, 나까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사람들. 


영화 <라라랜드>에 나온 말이 맞았다. 

People love what other people are passionate about.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You remind people of what they've forgetten.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조용히 마시는 모닝커피.


좋아하는 것들을 대할 땐 뜨겁고 싶다.


모든 것에 심드렁한 상태로 살아가기보다 너무 좋아서 생각만 해도 웃음 나오는 게 하나쯤은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늘 대비하는 마음이기보단,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좋아하는 분야의 소식은 모르는 게 없고,

보답을 받든 받지 못하든 '좋은 건 좋은 거야' 하고 단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용감하고 부지런한 애정.

작가의 이전글 저한테도 정리할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