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난곬족』을 빌려.
어느 날 나는 봄의 밤바람 따라 별빛은 나를 따라 텅 빈 운동장으로 가면
모래알이 깔린 동그란 지면 위에 달과 별이 살랑이고 노란색 초록색이 촌스러울 만큼 칠해진 미끄럼틀과 소리내어 발음하면 진짜 구름을 달릴 듯한 구름다리와 삐걱거리는 하늘색 시소 두 개와 신나게 놀고 나면 손바닥에서 쇳냄새가 나는 그네가 구석에 몰려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단단히 버티고 있는 작은 내 운동장
그럴 때마다 하얀 운동화를 챙겨 신고 개나리가 유독 많이 핀 길을 걸어오는, 또 집에 갈 때도 그 길만 걸어가는
(중략)
우리는 좁은 미끄럼틀을 거꾸로 뛰어올라가고 그네는 이마가 시원하게 아플 때까지 서서 타고 아는 노래들을 계속 부르고 학교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우리보다 더 잘 수풀과 바위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고양이 몇 마리를 보고 이렇게 흰 고양이, 얼룩 고양이, 노란 줄무늬 고양이, 검은 고양이 이름을 붙여 주고 철봉 밑에 열쇠 같은 걸 숨겨 두고 어둠 속에서 등나무 덩굴이 보랏빛 꽃 피울 준비를 하며 토끼풀도 짙은 색이 더 진해질 때 구름다리 위에 올라가 목 아플 때까지 하늘을 보다가 마주 보며 일곱 발짝 씩 걸어와 헤어지는 인사하고 저녁시간 늦게 운동장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