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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n 26. 2018

'나라'에 사슴밖에 볼 게 없다구요?

일본 나라 여행기

최근 지진으로 움찔했다던 일본.

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오사카 공항에서 출발하면

갈아타는 재미(?)가 있는

지하철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선마다 회사가 달라

환승할 때마다 고스란히 발품을 치루어야 하는

일본의 못된 교통체계를 고려하면.


리무진을 타고 편안하게

대략 1시간 20분, 한화 2만원정도 
나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숙소는 nara visitor center.

6명 기준 13만원대.




넓은 다다미방에 지하에 있는 목욕탕이 황송하고



지루할 틈 없이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되어 맘에 들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다개국어에 능하여

모든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해주시는데


다만 물인심은 야박하여

물은 어디있냐 물었더니 지하 편의점에 있다고...





밤늦게 까지 커튼을 열어놓고 지냈습니다.



시간에 따라 색이 바뀌는 수채화가
한쪽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요


작은 창을 열면 새소리 물소리에
시원한 바람까지 덤으로 들어오지요

가끔 모기도 들어오긴 했습니다만...







일본을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인데

대부분 반나절 코스로 삼는 곳이라

관광객을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이른 새벽 산책길엔

1000년 넘은 나무들이 피톤치드를 내뿜는 숲을

통 크게 전세내고



고독하게 수행중인 석등과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산세는 너무나 고요하여

내 눈엔 종 같아 보이는 저것을

나무젓가락으로 통통 치면

청아한 음으로 산 속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참느라 혼났습니다.




평화롭게 조식 중인 사슴떼와 교감도 이루었......다기보다



무시를 당한 거 같습니다.




사슴고기의 맛을 아는 육식동물이

즈들 나와바리에 들어왔는데

이 녀석들은 소 닭보듯 닭 소보듯.

오히려 제가 이 넓은 곳에 영장류는 저 하나뿐이라

무섭고 외로워졌습니다.



사슴으로 유명한 나라에서는



입장료를 내고 사슴공원으로 들어가서



과자를 사면
그걸 주며

사슴과 반나절쯤 놀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심 안됩니다.





사슴공원도 무료입장인데

공원이 아니라도 시 전체에 사슴을 방목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 호수 앞에도 사슴




명승지를 가도 사슴




음식점에 가도 사슴



심지어 도로 위에서도...




관광객이 제 아무리 많아봤자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슴들이 나라를 정복한 듯




여기저기 사슴을 보호하라는 표지판과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사슴님의 의식있는 행동앞에

무탈히 건널때까지 꼼짝 않는 차들.



얼짱각도로 웃으며

셀카까지 함께 찍어주는

센스 오지는 사슴들이 사는 곳에



그저 사람이 조금 곁들여 있을 뿐인

나라라는 도시.


그렇다고 나라엔 사슴밖에 볼 게 더 있어?

라고 말씀하시면 좀 섭섭하지요.

나라는

걷는 재미가 쏠쏠한 매력터지는 곳이거든요.






대략3시간이면 나라마치를 훑어볼 수 있다는

지도를 보고 무작정 따라하려고 출발.




지도도 여기저기 널려있고 이정표도 잘 되어 있으나

일단 걷기 시작하면 지도고 나발이고...


팽개치고 그냥 막 떠돌아다니게 되요. 풍선처럼요.




이것저것으로 막 찍어서
어디가 먼저인지 모르지만

요시다씨 집이 맨 처음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두고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면

재밌겠다 생각했거든요,




여기도 이쁘잖아




여기도 안왔음 안됐잖아





아... 저 눔의 빨래들...


아이옷에 햇빛 냄새가 배이는 모습을 보니 행복해져요

어제의 그림일기를 보는것 같거든요.

이 옷 입고 어딜 갔었니?

라고 물어보면 사정없이 이야기를 쏟아낼 것 같아요.



한때 글쓰는 카페에서 남의집 빨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가

변태로 오해를 받았었던...

슬픈 역사 갖고 있는 저랍니다.

그냥 빨래 널어진 풍경이 너무 좋아요.




익숙한 것은 하나도 없는 남의 동네이지만



우연히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해보고 싶은 골목



말차향이 바람 타고 날아오는 지점을 좇아가 자리를 잡고

같은 차를 한잔 청하여 홀짝거리다가

한참 후 계산을 하려니


여기 찻집 아니다 이눔아 하며
껄껄 웃던 할머니.


그곳은 공방아니면 전시관이었던 겁니다.



나라마치에는 공방도 많고

오랜 가옥을

전시목적으로 무료개방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게다가 죄다 찻집처럼 생겨서,  

저처럼 아무곳에나 들어가

나 차 한잔 줘. 하면 당황스런 일이 생깁니다.






미사에 쓰일 술을 만든다는 핑계로

와인을 만들었던 그옛날의 수도원처럼

일본의 도읍이었던 나라에서도

1000년 전부터 신에게 드릴 술을 만들어 내는

양조장이 여러군데에 생겼습니다.




 곳은 수 백년 동안 지역 농가와 협력해

무려 13대째 나라현을 대표하는 전통술을 만들고 있는
하루시카 양조장입니다.




500엔을 내면 사케를 시음할 수 있는 잔을 주고

다 마신 후에는 맘에 드는 색을 선택하여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5종류의 사케를 안주와 함께 자시다가

맘에 드는 술은 사갈 수 있습니다.

평균  병에 1000엔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사케맛은 잘 모릅니다.

일본인들은 사케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의하기 힘듭니다.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과정은 모든 술이 대동소이하고

인간에겐 '취향'이라는 지극히 사적이고도
보편적인 성질이 있기 때문이죠.



마셔보니 맛은 있습디다.


그동안 마셔온 맥주에 대한 권태감 때문인지

금방 나온 신선한 술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요.


솔잎으로 엮은 통에 쌀과 누룩을 함께 담아

새벽 벚꽃에 맺힌 이슬을 털어 살살 저어 놓고

오랜동안 기도를 드리면

이런 맛이 날까...



와인의 색감도 맥주의 청량감도 소주의 쨍한 맛도 없지만

부드러운 질감과 순수한 단맛이 먼저 오고

어마어마한 꽃향이 뒤늦게, 오래동안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니


그 향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

홀짝.... 음.... 또 홀짝.

옆에서 다음 잔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고

한참을 멍해지는 맛이었습니다.



서비스로 스파클링 사케까지 딱 6잔으로 끝나 다행입니다.

더 마셨으면 취해서
계속해서 한잔만 더 달라며 울었을 겁니다.




온통녹지에

동네마다 천년 묵은 문화재

여기저기서 술이 만들어지는 도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다니던 학교

담쟁이가 타고 올라가는 창문

집 밖에 빨래, 파란하늘에 전깃줄



제가 좋아하지만 어쩔수 없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나이 든 동네에는 버젓이 다 있어서 행복합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광경이 허물어지지 않고

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그 곳에만 가면

전 어린아이가 되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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