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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Nov 10. 2018

웰 컴 투 하카타!!

기온 마츠리 야마카사


저는 안타깝게도 직업상 이미 너무 많은 남성들의

엉덩이를 봐왔습니다.



보자마자 엑스축과 와이축을 그리듯 4등분을 하여

정확한 곳에 바늘을 내리꽂는

프로페셔널한 행위의 대상으로서 그것을 마주하다 보면


팔뚝이나 발등을 보듯 무신경해져

어떠한 죄책감도 두근거림도 없어진다니까요.



이렇게 변명을 하듯 구구절절 이유를 대는 것은

엉덩이를 중점적으로 촬영할 의도도 없었고

그것을 소장하고 싶은 욕망은 더더욱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대략 600여 장의 사진이
모두 남성들의 엉덩이였다는 사실에

필시 느끼게 될

누군가의 당혹스러움과 의아함에 대한 변명입니다.



일 년 내내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는 마츠리가 열리고 있는 일본 열도.


마츠리는 축제와 제사의 의미를 함께 닮고 있습니다.

봄, 가을에는 성공적인 농작을 기원하고

여름에는 역병 퇴치를 염원하며

겨울에는 눈과 조명이 아름다워서...


특히 후쿠오카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마츠리가 열리니

그네들은 어떻게든 놀거리를 만들어내고 싶은 어린아이 같습니다.


늘 조용하고 소심한 일본인에게는

무질서한 해방공간에서 희열감 도취감을 느낄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다는 점.

그것이 제사의 의미가 퇴색된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번창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중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는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던 그 시절

기도수를 뿌려서 역병을 퇴치했던 것이 시초가 되어

매년 7월, 700년 이상 이어져 온 마츠리입니다.




한 달 전부터 마을에서 힘 좀 쓰는 장정들을 뽑아

월급을 보전하고 하루 세끼 밥값까지 지불하며

가마를 이고 달리기 연습을 시키는데

가마꾼으로 뽑히는 것은 자신에게도 영광스런 일이라

마치 이것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카타 마츠리 홈페이지에서 얻은 정보로

동네별로 연습시간과 루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호텔에서 가까운 분홍색을 따라가 보기로 하고

새벽 알람을 맞춘 후 잠이 들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마을 구석구석에서 새벽 5시부터

온 동네를 오이샤! 오이샤! 하는 구령으로 잠을 확 깨우는데


기다렸다는 듯 나가보니

옷차림이 요상하더라 이겁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갓난아이부터 80 어르신까지

모두 다 당당하게 엉덩이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찍은 사진을 여성 친구들에게 보내니

너만 좋은 거 보면 다냐,
왜 나를 데려가지 않았냐 따지는 부류도 다소 있었지만

아름답지 않은 사진들을 투척하는 너를 저주한다며

당장 안 본 눈을 사 오라며 호통을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왜 여자들은 남자들의 몸을 보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여자들이 이런 복장으로 하카타 거리를 행진한다면

바다 건너 우리나라까지 교통이 마비될 텐데요.



하치마키라는 수건 머리띠를 매고

동네나 조직의 이름이 박힌 핫피라는 겉옷을 걸치고

커다란 가마를 지고 시가지를 도는 행렬의 이미지는

꼭 이 곳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으나



특이하게 하카타의 마츠리는

시가지를 천천히 행렬하는 것이 아닙니다.

7개의 가마가 5분 간격으로 출발하여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순위를 가르는,

이 뜀박질이 참으로 볼만합니다.



이웃마을 청년끼리 행진 도중 경쟁이 붙어

서로 니가 먼저니 내가 먼저니 옥신각신 싸우던 것이

오늘날의 가마 달리기가 되었다죠.



그 뒤로 300여 년 동안은
동네 대항 가마이고 달리기 대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수도 열심히지만

구역의 주민들가만히 지켜보지 않습니다.

가마꾼들을 격려하는 의미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수시로 양동이로 물을 퍼붓습니다.



이 모습이 마냥 신기한 이방인은

그 안에 들어가 뛰어 댕기며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동네 형아의 손을 잡고 새벽부터

예행연습을 나온 개구쟁이들이 기특하고



지들 동네가 이기든가 지든가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동네 꼬마들 마냥 이쁘고



손자뻘 아이들과 장난치는 할아버지 귀엽고



옷차림을 단도리해주는 옆집 삼촌 정다운...


그 모습에 매료되어 대열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습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여기선 온 동네의 어른들이 온 집안의 아이들을 키우는구나



이렇게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이웃 간의 교류를 이어가는구나 싶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말이죠.




그동안 제게 익숙했던 축제는

장미, 감자, 양파, 마늘 또는 맥주가 주인공이 되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명백하게 나눠진 채,

돈을 내야 잠깐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만


오늘의 축제는 초대가수도 없고

푸드트럭 하나 서있지 않지만

참여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가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연습부터 스파이마냥 촬영을 하던

이웃 나라 아녀자를 반기는 마음이 고마웠고

땀냄새 섞인 뜨거운 공기에도

마음이 개운해졌던

어느 더운 날의 여행.

 

바람이 스산한 날 꺼내보니

더욱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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