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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Nov 03. 2017

교토를 걷다 4

기요미즈데라, 교토가츠규

응숙이는 맛있는 음식을 위해 

김포에서 전주까지 가는 아이다.

강원도의 해장국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기꺼이 일출을 보는 아이다.

고기는 한 번에 한 근을 먹는다. 

처음엔 위차력을 보여주려는 줄 알았다.

그런 아이가 맛 집에 코가 닿았는데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유엔에서 식량배급이라도 해야 할 만큼 불쌍한 표정이다.

먹는 욕구가 적은 내가 보기엔

좀 정상적이지 않다.     


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물론 즐겁지만 

그것이 내 앞에 차려졌을 때 이야기다.

배가 부르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서 

소화될 때까지 몸을 움직인다.

먹기 까다로운 새우나 대게 월남쌈 같은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맛은 두 번째 문제이므로 

한입 넣기 위해 열일해야 하는, 

소위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음식은 과감히 안 먹는다. 

간장게장도 마찬가지다 

그 녀석은 입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부피가 거의 같지 않던가 

손가락만 더러워졌지 도대체 뭘 먹은 것인가!

응숙이가 보기에 이런 나는 좀 병적이다.

마른 나를 보고 가끔 재수 없다고 욕을 하고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사과를 한다.       

     

그래서 나는 사실... 맛집을 검색한 후 찾아가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에는 좀 회의적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입소문으로 알려진 맛집에는 

몇 시간을 운전을 하고 긴 줄을 서는 고생을 해서라도 

얻은 후에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추천을 했으며

추천의 대가는 그 맛을 공유하는 것, 

그것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맛 집은 프로 블로거의 손가락에 의해 

때로는 피디에게 건네는 돈에 의해 탄생한다.

막상 그런 곳에 가보면 

사람만 바글바글해서 서비스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맛도 옆집과 비교해 더 나을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반짝 유명세를 떨친 뒤 

권리금을 두둑이 챙기고 장사를 접는 일도 허다하다.

게다가 여기는 어느 곳을 가도 

평균 이상의 맛을 내는 일본이지 않은가 

굳이 맛집에 목 멜 이유가 없는 것이다.    


허나 응숙이의 생각은 굳건하다. 

일본의 맛집은 대부분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곳이고

이들은 몇 대에 걸쳐서 가업을 물려 받았으므로 

반짝 맛집 하고는 크라스가 다르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냄새가 먼저 뇌에 들어가 각인을 시키는 것이다.

후각세포는 기억 세포와 가까운 곳에 있다.

너는 교토를 생각할 때마다 

둘이서 정답게 맡았던 가츠규 냄새를 떠올리게 될 지어다.’ 

과연 음식장사하는 사장님 다운 면모다.

분명 프랜차이즈인데 응숙이가 한 음식은 

다른 지점의 것보다 맛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파는 사람인지 묻지 않아주길 바란다.

더 이상 매출이 늘어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살고 있고

이 친구가 바빠지면 나는 더 이상 얘랑 여행을 갈 수가 없다.)

좁은 인도에 한쪽 벽으로 납작히 줄을 서는 것은 감수를 해야 하니

에너지를 소비한 만큼 우린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비까지 맞으며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수고를 해야하니 

오늘은 가츠규 먹기 참 좋은 날씨라 볼 수 있다.    


수고 끝에 노른자에 말아먹는 우까쓰는 정말 맛있었다.



응숙이의 예언대로 그 냄새는 잊혀지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의 흙냄새 풀냄새 

거기에 더해, 생전 처음 맡아보는 단백 고소 짜릿한 규카츠 튀김 냄새.

지금도 군침이 나오면서

그날의 여행만큼이나 그립고 애틋하다. 

(튀김에 ‘짜릿’이 왜 들어가냐 싶지만 먹어보면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입점해 있으니 비싸지만 한번 맛보길 추천한다.)    





청수사에서부터 닌넨자카 산넨자카로 이어지는 길은 교토스러움의 극치다.

우산에 치어 걷는 것은 고달팠지만 

때마침 기모노를 입고 수학여행을 떠나온 고등학생들이 있어

거리의 색채가 더욱 뚜렷해졌다.         

기모노란 예쁜 옷이지만 다소 불편하기도 해서 

그녀들은 관광객처럼 많이 걸어 다니지 않았다.

어디에 가니 진짜로 무엇이 있더라 하는 팩트체크를 하고

선생님께 제출할 용도로 

얼굴만 대빵만 한 인증샷을 찍은 뒤

삼삼오오 무리 져 기념품 샵에서 구경을 하거나 

한가한 신사안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18살쯤 되었나?

옷은 화려한데 얼굴엔 립글로스 하나 바르지 않았다.

이게 바로 자체발광인가 싶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예쁜지도 모르고 빛을 발하던 때.   




   

이쯤에서

기모노 입은 일본인을 보고 ‘예쁘다’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자기고백 시간을 가져본다. 

애국적 견지에서 부적절한 사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역사의식이 있는가

시시때때로 마냥 즐기고 싶은 향락주의와 이런 감정들이 충돌했다.

교토는 10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그 시절은 일본이 한참 잘 나갈 때라 

문화적으로도 융성하게 발달한 시기이자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불운한 때였다. 

우리 민족의 설움과 쟤네 민족의 번영이 함께 한 도시를 걷는다는 건

겪은 바가 없는 내게도 힘든 일이었다.    


지나가는 아무나 멱살 잡고 

그때 니네 왜 그랬냐고 당장 사과하라고 따져 묻고 싶은데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문화유산은 찬란하고

자연경관은 ‘너네 우리나라 가자.’ 하고 싶을 정도로 기특하다.

'아휴.. 이것들이 다 일본에 있어 어떻게 해

얘네 좀 있음 가라앉아야 할 텐데...'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은데

이런저런 나쁜 생각들이 나게 한다.



그렇다고 딴생각하다 넘어지면 큰일이다.

닌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넘어졌더라도 걱정이 없다.

계단 아래 있는 가게에서 호리병 하나를 사면 그게 액막이를 해준 다한다. 쳇.

그래도 조심하자. 비탈길이라 많이 아플 예정인 데다

자그마치 6천 원짜리 넘어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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