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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Aug 15. 2020

자주 무력한 마음으로 지내는 요즘이다.

'테드창 - 숨(Exhalation)' 독후감을 표방한 이런저런 딴소리


자주 무력한 마음으로 지내는 요즘이다.


최근 몇개월 사이 새로운 취미들을 여럿 시작했다.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고, 재봉틀을 사고 옷을 만든다. 디자인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이런 새로운 배움이 나를 항상 즐겁게 한다.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먹고 살기 위해 해야만 할 때가 있는 디자인과는 달리,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무언가 만드는 일들은 나를 오롯이 그 자체로 충만하게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을 때 온 힘을 다해 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손바느질로 야매(?)독학 옷만들기 하다가 재봉틀 생기니까 기쁨을 주체못하고  날뛰는 나란 녀석... 진작 살걸 싶다.
원단을 다 쓸때까지 핫핑크는 계속된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채우고, 새로운 배움으로 충만한 행복을 느끼고, 웃으며 잠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무력감에 차있다.  

엊그제인가는 지윤과 소파에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세대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개개인의 영향도 분명 있을 테지만 어쩌면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살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에 젊은 세대, 열에 아홉은 어떤 무력감을 모두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기 시작할 때, 그런 고민이 화두로 떠오르면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있더라도 그것이 무력감인지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려 하지 않는 경우 정도였다.
나는 아주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무력감이 스스로에게 찾아들 때면 큰 상실감에 가라앉는 것 같다. 밝고 긍정적이면 뭐해, 이것저것 신나게 배우고 창작하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행복해하면 뭐해. 현재에 충실하고 오늘 당장 행복하고 사랑하면 그걸로 충분하다지만 눈앞에 보이는 미래를 언제까지나 무시하고 외면할 수 없다는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취업이나 생계유지에 대한 문제, 일자리가 있어도 고정적이지 않고, 취업에 성공해도 안정적이지 않고, 행복하지 않아 퇴사하고 싶거나, 불안해서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고 취업하고 싶거나, 돈이 모이지 않거나, 돈이 모여도 시간이 주어지지 않거나. 이렇게 해서 10년 뒤, 20년 뒤 내가 지금의 부모님 세대만큼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한숨들.
열심히 일해도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높아지는 집값과 월세에, 내 집이 없다면 평생 일한 돈의 반 이상을 누군가의 공간에 쓰며 여기저기 불안한채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데, 언제쯤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돈이 아주 많거나 집이 생기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청년들을 위한 주거문제로 등장한 많은 정책들은 사실상 청년이 지불할 수 없는 월세와 보증금을 제시하고, 이런 삶을 해결할 수는 있을까? 걱정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10년 안에 내가 이 많은 것들을 다 이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럼 그 10년동안 일에만 몰두해서 돈을 아주 많이 모아보자. 그런데 그 사이에 사회가 더 나빠지면 어쩌지. 열심히 일한만큼 사회도 열심히 어려워지면 그땐 어떡하지. 내겐 아무런 보장도 없고 10년 20년 후에 무언가가 크게 달라져 있을거란 기대도 없고, 그렇게 내 아주 깊은 곳에 바닥처럼 깔리는 무력감이 자리 잡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만들었던 2018년의 독립출판물. https://tumblbug.com/artist808


요즘은 그 10년 사이에 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어쩌면 그 전에 많이 아플 수도 다칠수도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수도 죽을 수도 있겠지. 부정적인 생각이나 우울감에 차 있다기보단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는 실제로 병들어가고 있고, 전염병이 터지고 곤충떼와 그치지 않는 장마와 태풍이 물로 도시를 뒤덮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꾸만 아프고 다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지구는 점점 더 빨리 병들고 세상은 이상하고 어쩌면 정말 20년 뒤면 이 모든 재해들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들이 남아있지 않아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


오늘 본 뉴스에선 2030년이면 태풍으로 인천이나 부산이 잠길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이 등장했고, 지구는 지구온난화로 이미 반이, 어쩌면 거의 망해서 과학자들은 이럴바에 사람이 좀 덜 죽는 옵션으로 화산을 폭발시키거나 핵전쟁이나 인공미세먼지로 대기를 가려 지구의 기온을 낮추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중이라는 기사를 봤고, 경기도 동물원의 호랑이와 사자, 너구리들은 10분동안 같은 자리를 100바퀴 넘게 돌며 무기력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종일 지속했다는 슬픈 기사도 보았다.


스브스뉴스 https://www.instagram.com/p/CD3SqtDFmdT/?igshid=eurl3vpr1nlu
JTBC 뉴스 https://www.instagram.com/p/CD0U_bZp4qK/?igshid=1lwiy2n5oqijd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https://m.mt.co.kr/renew/view.html?no=2020080715250962665&type=outlink&ref=https%3A%2F%


어쩌면 우리 세대가 삶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무력감을 가지고 있는건, 지구가 병들어가는 이런 문제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나 자랄때부터 지구온난화와 함께 성장했고, 병들어가는 지구를 바로 옆에서 함께 느끼며 자라왔으니까. 지구가 주는 어떤 생명의 기운이 점점 줄어들어 그런지도 모르지.



자연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6월인가 7월부턴가는 테드창의 ‘숨(Exhalation)’ 이라는 과학소설을 읽고 있는데 표제작 ‘숨’을 읽고 그런 자연과 세상과 저탄소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 이곳에 책을 다 소개하긴 어렵겠지만 꼭 읽어봤으면 한다. 아주 추천하는 책.


간단히 설명하자면, 공기(아르곤이라고 불리는 기체)가 생명의 원천인 세상이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기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거대한 지하 공기층에 연결된 ‘허파 충전소’에서 자신의 허파에 공기를 채우며 살아간다. 공기를 채우는 것을 잊으면 기계장치가 전부 멈추는 ‘죽음’에 이르게 됐기 때문에 이들은 공기가 곧 생명의 원천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새해를 알리는 첫 종소리가 3분 정도 늦게 울리고, 사람들은 시간이 느려졌다고 생각하지만 해부학자인 주인공은 시간의 오류가 아닌, 자신들이 느려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자신이 해부함으로서 실제 생명의 원천은 ‘공기’가 아닌 ‘기압차이’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뇌의 활동, 우리 몸의 움직임, 지금까지 만든 모든 기계들은 공기의 움직임, 공기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각기 다른 압력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려는 과정중에 발생하는 바로 그 힘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실제로는 그들이 공기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몸의 고압의 공기를 저압의 공기로 바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생각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때마다 그들은 공기의 압차이를 평형 상태로 만들고 있던 것이다.



우주의 배경 기압이 그렇게 증대하면서 결과적으로 사고 속도가 느려졌고, 어느 순간 지하층의 공기를 계속 끌어내 대기 공기와 지하 공기의 압 차이가 동일해져 공기의 흐름이 멈추게 되면 그 순간 세상은 멈추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기 농도가 짙어지는 것을 최소화 하기 위해 활동을 자제하고, 일부는 공기를 쓰는 대신 태엽을 풀거나 무게 추를 내려 작동시키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단단히 감긴 태엽은 그것을 감은 사람의 몸에서 공기가 배출됐음을 의미하고 그것은 결론적으로 공기를 더 빨리 더 많이 소모하는 일이 되었다.

주인공은 우주가 엄청난 양의 공기가 비축된 데서 시작됐고,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 사실에 감사하며 다만 그들의 세상이 결국 멈춰 또 다른 어떤 우주의 동력원으로 쓰이게 될 때, 누군가 그들의 멈춰버린 문명을 탐험해 찾아내주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하며 끝이 난다.

이 단편을 읽으며 너무나 소름이 돋았다. 사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화석연료도 결국 아주 오래전 어떤 생명체들의 문명이었고, (공룡이 멸망해 묻히면서 석탄이 되고 석유가 된 것처럼 말이다.) 지구온난화도 결국은 탄소 배출량이 높아짐으로서 발생하는 문제들인데, 내가 살면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탄소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점이나, 저탄소적인 생활을 위해 행동하자는 것들이 결국은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일이 되거나 하는 점들이 너무나 유사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대로 깨끗이 배출하면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공연히 리사이클링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해 판매하는 경우라던지 말이다.)

한편으론 저탄소적인 생활을 표방하며 탄소 덩어리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반성도 들었고 말이다. 오늘 저녁도 나는 플라스틱 포장용기로 된 음식을 먹었는데 말이지. 반성한다.

사는 것은 무엇일까. 돈을 버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먹고 자고 사랑하고 행복하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 모든게 매순간 탄소를 소비하며 일어나는 일인지 모른다. 우리의 순간 순간이, 생각이, 숨을 쉬는 모든 1분 1초에는 지구의 생명이 담겨있다.


딴소리 대잔치가 되었는데, 결론은 사랑한다는 소리다. 내 삶을 너무 사랑한다. 가족들을, 주변의 사람들을, 친구들을, 내가 배우고 알아가는 이 세상을 너무 너무나 사랑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세상을 더 오래 건강히 나누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기적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구가 좀 더 건강해지면 좋겠다. 그러면 무력하고 뭐고 간에 어제보다 내일 더 조금 조금씩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다. 말도 안되는데 그러다보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에너지가 세상에 더 많이 퍼질 수 있을 것도 같다. 내집마련도 어쩌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건 불가한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구의 가장 큰 바이러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정말로 인간이 다 사라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인간이 사라지며 회복된 강이나 호수, 자연의 모습을 (랜선으로나마) 목격하는게 정말 경이로웠다.

그렇지만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지구도 인간을 정말 포기했으면 싹 다 갈아엎었지 이렇게 경고를 해주는건, 아프다고 소리내는건 아직 땅의 생명체들을 사랑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좀 그렇거든. 사랑하니까 싸우고 잔소리하고 서운해하고 화도 내는거다.)


지구가, 동물이, 사람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10년 뒤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건강한 세상에서 건강하게 내집마련해서 살면 정말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며, 로또나 당첨되면 좋겠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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