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1.
이럴 수가. 샌디에이고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니. 8월이 오면 여행이 끝나는 기분이 들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상이 끝나는 기분이었다. 샌프란시스코 Boudin에서 빵과 수프를 먹던 것이 100시간 전쯤 인 것 같은데, 왜 벌써 8월인 거지. 내 성격 까먹었나 보네.
오전에 아이들은 밀린 숙제를 했다. 이제 방학이 끝나가니 애들도 쫄리는지 먼저 숙제를 하겠다고 앉았다. 지영이는 은영이 누나와 커피타임을 가지고, 난 동네 한 바퀴 돌았다. 더워서 두 바퀴는 무리고.
오후에는 라호야 비치로 나갔다. 프랭크 형 마당의 창고 박스를 여니, 4명 가족 집에 해변용 의자가 10여 개 있었다. 10개 묶음 할인 때 사셨나. 4개를 가지고 590 Coast Blvd, La jolla를 찍고 집을 나섰다. Cuvier Park란 곳이었는데, 야외 결혼식 하기 딱 좋은 잔디 상태와 1번 국도도 울고 갈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아무도 없는 잔디밭에 의자 4개를 깔고 누우니, 인생 별 거 있나. 이곳이 천국이구나.
이곳에서 잔잔한 음악 깔아놓고 하루종일 늘어지고 싶었지만, 그건 내 욕심이지. 지우 지아는 오늘 대자연 친화 컨디션이 별로라 빨리 들어가자고 했다. “여기 서 봐. 여기 서 봐. 좀 웃고. 아니 그렇게 말고…” 사진 좀 찍자는 것도 협조 안 해주고. 아빠라도 두어 시간 더 있으면 안 될까. 나, 지금 너무 좋은데. 그래도 아이들을 어떻게 이겨. Cuvier Park, 이곳을 하와이에서 51-329 Kam Hwy Kaaawa를 찍고 가는 비밀 바닷가처럼, 우리 가족만의 비밀 해변이라고 하자고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표정들이었다. 그래, 나만 여기 기억할게. 가자 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며칠 전 맛만 봤던 MOCHINUT에 들러 도넛 12개짜리 한 박스를 샀다. 쫀득쫀득한 식감에 맛 미쳤네. 박스는 살짝 촌스러웠지만 안쪽에 ‘More than just a donut. Always near you’라고 적혀 있었다. Always 근처에 두기엔, 12개 30불이라 조금 비싸긴 하다. 지금 환율 1,400원 넘었거든요.
저녁은 미국 와서 꼭 먹고 싶었던 음식 리스트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메뉴, 피자와 엔쵸비를 먹기로 했다. Papa Jones에서 피자 두 판을 시켰고, 통조림 anchovies를 뜯었다. 생긴 것은 극혐인데 피자에 한 마리씩 올려놓고 먹으면 환상의 조합이다. 별명이 멸치였던 친구들까지 보고 싶게 만드는 맛이다. 날 위해 사놓은 엔쵸비 다섯 캔이 이토록 든든하다니. 이로써 샌디에이고에서의 모든 식사를 마쳤다.
저녁에 혼자 del mar로 가서 현우 형을 다시 만났다. 형도 고생 많이 했네. 그래도 지금은 시민권도 나오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다 뿌듯했다. 20년의 업데이트를 모두 듣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벌써 9시 반이 지났다. 오늘 일정이 이게 끝이 아닌데. 방실이 집에 가서 아쿠아 슈즈를 전해줘야 했다. 미국에서 이렇게 늦게 다녀도 되나. 지영이도 전화 와서 방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안 가고 뭐 하냐고 혼냈다.
10시쯤 방실이 집에 도착했더니, 내일 이동 중에 먹으라고 각종 과자를 정성껏 넣은 간식 봉지를 건네줬다. 친구 동생지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참 착한 아이다. 나 샌디에이고는 운명적으로 꼭 다시 올 거니까, 그때까지 그랜드 피아노 치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라.
집으로 돌아와서 9일 간 펼쳐놨던 짐을 싸서 차로 옮겼다. 아 정말 샌디에이고를 떠나는구나. 슬프다. 누나 집과 샌디에이고, 프랭크 형, 씨씨, 삐삐, 찬휘, 영휘, 집 앞 토끼까지 모두 정말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