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5.
오늘의 출발은 5시 10분, 너무 가혹한 일정이다.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도 잠 좀 재웁시다. 일행들의 퉁퉁 부은 쌩얼을 보니 한층 더 친해진 것 같네. 운전도 안 하니 차 타고 푹 자면 좋겠지만, 희한하게 차 뒷자리에 앉으면 눈은 말똥말똥해지고, 손은 넷플릭스를 누르고 있다.
다시 동쪽으로 3시간을 달렸다.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를 넘어 유타주로 들어왔다. 가이드님이 유타주와 몰몬교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실 때 드디어 눈이 스르르 감겼다. 여유 있을 때 딴짓하고, 집중해서 들어야 할 땐 졸고, 딱 공부 못하는 사람의 전형이네.
첫 번째 도착지는 Zion Canyon의 canyon overlook Trail이었다. Grand Canyon의 맛보기 버전. 사람들이 줄지어 먹는 맛집 옆의 식당들처럼,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 사이라는 복 받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 여행객들을 빨아들이는 곳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여기를 Grand Canyon이라고 해도 10명 중 7~8명은 속아 넘어갈 것 같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산악 지형의 구보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에게도 적당한 30분 트래킹 코스였고, 다행히 그늘이 많아 덥진 않았다.
다시 출발해 한 시간 정도 더 동쪽으로 가서 Kanab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Lotsa Motsa Pizza라는 이름의, 90년대 대학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피자 뷔페였다. 허름과 힙함의 중간쯤인 식당에서 5.99불짜리 런치 뷔페를 즐겼다. 음식들도 이 정도면 낫 배드. 엔쵸비만 곁들여서 남양주에 분점 하나 냅시다.
그다음은 말발굽처럼 생긴 Horseshoe Band로 향했다. 여긴 또 애리조나주였다. 주차를 하고 Horseshoe까지 걷던 이 구간이 가장 더웠다. 말발굽이 제법 크고 웅장했는데, 날 것 그대로 보존하느라 안전장치들은 허술해서, 인생 샷 남기다 저 밑 10억 년 전 지층 위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제법 될 듯했다. 서초구 공무원들 여기 와서 그날막 좀 설치해 주면 좋겠다. 너무 덥다. 아, 그렇게 인공 구조물 하나씩 생기다가 국밥집이랑 모텔도 생기겠지. 이대로 놔둡시다. 안전은 스스로 챙기는 걸로.
이제 오늘의 메인 목적지 antelope canyon로 향했다. 차에서 어떤 곳인지 검색을 해 볼 법도 한데, 귀찮기도 하고 모르고 봐야 감동적이라 사전 정보 전혀 없이 도착했다. 이곳은 인디언 마을이었다. 인디언들의 가이드를 받으며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사전 예약이 필요했다. 여기 입장 시간을 맞추려 새벽 5시에 출발한 거였군.
가이드들이 사전 인사 차 인디언 복장으로 나왔다. 이들은 인디언 마을의 9급 공무원들이네. 우린 ‘병아리 짹짹’ 대형으로 가이드를 따라 Lower Antelope로 향했다. Lower가 이으니 higher도 있나 봤더니 대응되는 곳은 upper antelope였다. Lower의 초입은 며칠 전 샌디에이고에서 San Elijo Lagoon 트래킹 했던 곳과 비슷했는데, 들어갈수록 멋진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윈도우 배경화면들로만 봤던 장면들이 연달아 등장했다. 시간에 맞춰서 와야 하는 이유가 있었네. 빛이 들어와야 이 멋진 협곡의 아름다움이 완성되는데 그 시간에 맞춘 것이었다. 그래, 내가 인디언이래도 여긴 일반인들에게 공개 안 하겠다.
모두의 핸드폰에 붉은빛 사진들로 가득 채운 다음, 숙소로 향했다. 원래 캐러밴에서 묶으며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정이었는데, 얼마 전 폭우로 캐러밴 마을에 전기가 끊겼다고 한다. 가이드분께서 급히 Page라는 마을에서 에어비앤비 집을 하나 구해 주셨다.
저녁은 Mandarin Gourmet이라는 중국집에서 먹었다. Panda express의 레스토랑 버전이었다. 저렴한 중국 음식 뷔페, 내가 이런 음식 좋아하는 것 어떻게 아시고.
지우는 김치찌개의 저주로 애리조나에서도 나랑 자야 했고, 내일 그랜드캐년에 간다는 설렘보단 모레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여행 1일 차 글이나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