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이상형 월드컵
과거의 나는 말이다. 이상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던 순간이 있었다.
ㅡ 음 그러니까 키는 저보다 크면 좋겠고요, 눈은 쌍꺼풀이 없으면 좋겠고요, 옷은 깔끔하게 입으면서도 포인트를 주는 사람이면 좋겠고요, 여행을 좋아하거나 음악 그리고 책을 좋아하면 더할 나위 없겠고요, 같이 영화 보고 함께 느낀 점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요. 아 또 재밌는 사람이면 좋겠고요, 웃음 코드가 맞으면 좋겠는데, 약간만 웃겨도 엄청 크게 웃는 저니까 사실 상관은 없어요. 그리고 제가 의외로 말이 없으니 말이 많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저는 잘 들을 수 있거든요.
라고 말이다. 이보다 더 구체적일 수 있겠는가. 아마도 나는 나를 내 취향을,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한지를, 다시 말해 그때의 나의 취향은 저렇게나 구체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여느 커플과 같이 가장 보통의 이별을 맛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는 물음에
ㅡ 지혜로운 사람이요.
로 끝나거나,
ㅡ 음 그냥 남자면 다 좋아요.
심지어 저번에는
ㅡ 인도 다녀온 사람이요.
라고 했더니 왜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게 왜지? ‘왠지 그곳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나의 진가를 알아봐 줄 것 같아.’와 같은 아직도 희망찬 나의 연애관인가. 그런데 그렇다고 한들 나의 취향이 흐려지거나, 내가 음악을 안 좋아한다거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꽃피우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섬세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들어 나의 이상형을 그리는 질문에 깊게 고민할 시간도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세상에 가치 없는 질문은 없겠지만, 가치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 나의 감정이 태도가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섰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나의 목적성에 맞는 문장 일지는 모르겠다만,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는지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 큰 일이라, 나는 사랑에 빠지면 내 걱정을 먼저 해서, 태풍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대다가 잠시 바다의 고요함을 느끼러 눈과 귀를 막고서는 그저 흘러가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꺼이 나의 사랑에 나의 눈과 귀를 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나는 나의 그렇게 구체적인 취향과 확고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내가 만날 사람을 감히 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어서, 그러니까 나는 나로서 너를 만나는 것보다 우리가 맞춰갈 시간들을 꿈꾸어서 지금은 그렇게 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꺼이 너의 파도에 휩쓸리려고. 어쩌겠나, 그것이 사랑인 것을.
p.s 인도를 가야겠어.
19년 10월 9일
선선한 가을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