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채영 Nov 23. 2019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부러운 것에 대하여

보글보글 연재 일기

오늘은 토요일, 책방으로 출근하러 가는 날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하루에 24시간이라고 했을 때, 물론 이건 그저 인간의 약속에 불과한 거지만, 그중에 3분의 1은 잠을 자고 3분의 1은 일을 하고 3분의 1은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춤을 추거나, 그중에서도 책방에서 일을 하는 3분의 1은 완전한 1만큼으로 느껴진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 너무나 빨리 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영혼이 몸이라는 뻘에 갇힌 인간 따위인데, 책방에 있는 순간만큼은 나의 영혼이 자유로워 1이 되는 느낌을 받는달까. 나는 절대로 0과 1 사이에만 살지 않을 거라고 그것은 나와 맞는 결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왜 이런 결과를 도출한 거지?


지하철이 파업을 했다. 내가 타는 경의 중앙선은 배차간격이 가뜩이나 느린 데다가 파업까지 하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10 전역이라는 전광판의 알림을 보자니 10이라는 숫자가 원래 저렇게 무겁고 무섭게 느껴진 숫자였나, 완전한 숫자가 아니었구나. 생각한 채로 2호선을 타고 6호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한 것은 어쩌면 10 전역이라는 숫자가 가장 빠른 길이었을지도 몰랐겠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지 기다림은 있고 그 기다림 사이에 혼잡과 보통을 넘나드는 그 사이에 말이다.


버스를 타니 오렌지색 기둥들이 굳건히 세워져 있었고 고요함도 잠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버스 안을 가득 메웠다. 그저 부러웠다. 우렁찬 울음소리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아 울고 싶다. 영혼이 가득 참을 느끼고는 왜 울고 싶은 건지, 10 전역이라는 숫자를 보고 왜 그렇게 겁을 먹은 건지, 왜 쉬운 길을 두고 멀리멀리 돌아온 건지. 그럼에도 집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변치 않았다.


11월 23일

보광동에서

작가의 이전글 이상형이 뭐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