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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Oct 08. 2020

잊히기 싫어서 사장이 되었습니다.

두 아이 엄마의 온라인 쇼핑몰 창업이야기


 우리 엄마, 우리 여봉봉, 우리 동생, 우리 여봉봉, 우리 여봉봉...

 문득 핸드폰을 켜서 최근 통화내역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전화번호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엄지 손가락을 까딱거려 한참을 내려보았으나 통화내역은 처음 내가 보았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마치 복사, 붙여 넣기를 한 것처럼. 간혹 모르는 전화번호가 섞여있었으나 아마 그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긋지긋한 스팸 전화번호이거나 감사한 택배기사님이거나.


 빨간색 하트가 박혀있는 그들이 싫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들이 내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 이렇게 잊혀 버리는 건 아닐까.


 탁상달력 빼곡하게 점심 약속, 저녁 약속이 많던 나였다. 명절이면 안부인사 전하는 연락을 심심치 않게 주고받던 나였다. 하지만 갑작스레 퇴사를 하고, 아이를 낳고, 두 번의 이사를 연거푸 하면서 무언가 모르게 조금씩 서먹해짐을 느꼈다. 아마 그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은 회사원이었고,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고, 몇 명만 빼고는 모두 서울 아니면 출퇴근이 가능한 경기도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전업맘이 되었고, 일을 하지 않았고, 서울에서 경기도를 거쳐 우리나라 끄트머리 남쪽까지 내려와 있지 않은가. 남편까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였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공통의 이야깃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그마저도 품을 수 있을 만한 돈독한 인간관계였다면 달랐겠지만, 내가 가졌던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그만큼의 그릇은 아니었나 보다.


 회사 어린이집 추첨 이야기, 연말 상여금 이야기, 해외로 떠나는 휴가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내 동기들과 나 사이에는 뭔가 매끈하지 않은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 휴대폰 통화내역에서 그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시나브로 사라지는 그들을 나도, 물론 그 들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몸이 멀어진 만큼 마음도 멀어지게 되었다.




 바람이 매섭던 지난겨울,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나는 창업을 했다.

 수년간 준비해 온 그럴싸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숨이 턱까지 막힐 정도로 생계가 급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창업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뱃속에는 5개월 된 둘째 아기가 들어있었고, 품에는 3살짜리 아들이 안겨있었다. 왠지 이번 타이밍을 놓쳐 버리면 영영 아파트 현관문 안에 갇혀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다그친 것도, 남편이 눈총을 준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마음이 급했다.


 첫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어린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면 다시 일을 시작하겠노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출산 직후에는 엄마나 남편에게 아이를 잠시 맡기고 백화점 문화센터 강의나 마을에서 하는 간단한 모임 등에도 얼굴을 비추었다.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간과의 싸움.

 어린아이를 돌보는 내가 집 밖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이른 욕심이었다. 물론 그 또한 지방으로 이사를 내려오면서 남편의 일이 바빠지자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온전히 내 시간을 갈아 넣고, 내 몸으로 버텨내야 하는 시간. 아이를 두고 강의를 나가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당분간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쉬워하고 미련을 가지는 것이 싫어서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 편이 내게는 오히려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둘째가 생겼고, 행복하지만 아쉽고 즐겁지만 씁쓸한 나의 시간이 이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는 게 아쉬웠다. 내 이름을 높이 쳐들어 빛나게 하고 싶지는 않아도 그저 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남는 것도 싫었다. 마음 한편에 작은 구멍이 뚫려 시린 바람이 불었다.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감사한 시간이었으나 온전한 나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였을까.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

 나는 조용히 컴퓨터를 켜고 통신판매업 신고를 했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한 때.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온라인 쇼핑몰을 떠올린 것이다. 무엇을 팔지, 어떻게 팔지는 차차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때 내게 필요한 건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 그 자체였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 내게 용기를 주고, 동기부여를 해줄 것이 필요했다. 내가 아직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느낌말이다.


 통신판매업이 등록되었다는 구청의 연락을 받고는 연달아 사업자등록도 내버렸다. 막상 해보니 어렵지도 않았다. 사무실이 무슨 필요냐며 호기롭게 우리 집 주소를 넣고, 남편 이름으로 된 전세계약서도 스캔해서 올렸다. 작은 쇼핑몰을 하나 만들겠다고 했더니 네이버에서 필요한 서류도 척척 뽑아주었다. 따로 도메인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흔한 웹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듯이 빈칸을 메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도 쉬운 일을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마저 들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알아보고 배워가며 온라인 쇼핑몰을 해보자.

 조금은 긴장하고 있을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몇 번을 되내었다. 신입사원일 때 그렇게도 대단해 보이던 과장님, 결국 내가 그 과장 자리까지 앉았다 나왔듯이 이번에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응원했다. 날 때부터 사장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부딪혀 배우다 보면 금방 해낼 수 있을 거라 입술을 앙 다물었다.


 후... 그렇게 나는 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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