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 끝내는 남편의 네이밍 스킬 1
구청 직원이 누런 서류봉투를 만지작 거리며 내게 물었다.
"출동준비완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이긴 하지만 내가 창업한 가게의 이름이 처음 호명되는 순간. 나는 그 감동적인 첫 데뷔의 순간을 부끄러워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크고 당당하게 대답하려고 애썼다. 아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내 목소리에는 떨림과 기대, 그리고 자신감이 자연스레 묻어 나왔다.
내 대답 소리에 정적이 흐르던 구청 사무실이 아주 잠깐 동안 술렁였다. 어렸을 적 문방구 앞에 있던 두더지 게임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파티션 위로 몇몇 머리가 아주 조금 올라왔다 내려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빼꼼 눈만 내밀어 보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내게 서류봉투를 내밀던 직원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보다 몇 살 어려 보이는 남자 직원이었는데, 메마른 얼굴에 몇 초 동안 싱그러운 웃음꽃이 드리웠다 사라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내 상호명 때문인 걸까. 내 우렁찬 대답 소리 때문인 걸까.
통신판매업 신고증을 받아 들고 나서는 구청. 흔하지 않은 내 상호명에 더해 찰지게 대답한 내 목소리의 협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몇 번을 되내어 생각해봐도 평범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차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본인이 지어준 상호명이 그만큼 뛰어나다며 자화자찬을 시작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체념했다. 시작부터 다른 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 그랬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어떤 것을 팔지, 어떻게 팔지를 고민해도 모자랄 시간에 브랜드 네이밍 따위에 신경 쓰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개똥이, 소똥이로 지어도 아이템이 좋으면 사업은 흥하고, 아무리 이름이 좋아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 사업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소인인 것인지, 온라인 쇼핑몰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로 오로지 네이밍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판매할 아이템과 연관이 있으면서 조금 고급스럽고, 엘레강스하고, 참신하면서도 너무 튀지 않는 그런 네이밍을 찾고 있었다.
순 우리말 사전을 시작으로 영어사전은 기본이요,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사전까지 뒤적였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면서 왜 다른 나라 단어까지 들쑤시고 있는지 답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전 검색창에 머물고 있는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오빠, 나 상호명을 뭐라고 하지? 정말 어렵다."
"음... 출동준비완료 어때?"
"응? 출동준비완료?! 지금 장난해?"
"왜? 난 괜찮은 거 같은데? 빨리 보내줄 것 같은 느낌, 뭔가 필요한 건 다 있을 것 같은 느낌?"
출동준비완료는 그 당시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는 단어였다. 세 살배기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쳐대는 단어! 출동준비완료! 주인공은 빨간 비행기 로봇인데, 택배박스를 들고 전 세계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배달을 다닌다. 아주 정확하고, 신속하게.
남편의 충격적인 제안을 피식하는 웃음으로 넘기고 난 또다시 사전을 뒤적였다. 아뿔싸. 이번에도 남편의 마수에 걸리고 말았다. '출동준비완료'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단어 찾기 진도도 도무지 더는 진척이 없었다. 더 충격적인 건 '출동준비완료'를 다른 언어로 검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빠... 그럼 아이디는 뭘로 해. 출동준비완료는 너무 길잖아."
"아이디? 영문이어야 하지?"
"ready to start?! 너무 길고, 뭔가..."
"huddak + go!"
그렇게 내 쇼핑몰 상호명은 '출동준비완료'가 되었다. 쇼핑몰 접속 아이디이자,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의 주소는 huddakgo. 결혼 전부터 휘몰아치는 남편의 마수는 뻗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 무료한 일상에 단비와 같은 개그미를 가지고 있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남자, 하지만 내 첫 사업에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이야.
오늘도 남편은 본인의 네이밍 스킬에 감탄한다.
"아~ 내가 쓰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이름이란 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맘에 들어. 그렇지?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