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 끝내는 남편의 네이밍 스킬 2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생각보다 부산스럽다. 세 살배기 아이 하나가 얼마나 떠들까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하루 종일 집안에는 만화 주제가가 울려 퍼지고, 조그마한 발로 콩콩 뛰어다니며 외치는 함성은 제법 우렁차다. 그리고 꼭 엄마도 같이 따라 해야 한다고 졸라대는 통에 우리 집은 늘 씩씩하고 활기차다. 엄마와 아이는 그렇게 만화 주인공으로 하루를 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준비완료'를 외치며 날아가고 뛰어다니는 우리 아들이지만 아주 잠깐 그 함성이 멈출 때가 있으니 바로 엄마와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이다. 오래가진 않지만 조그마한 잔에 식혀둔 차를 따라주면 나름 호호 불어가며 엄마와의 오붓한 티타임을 즐기곤 한다. '차차 마시자.'라는 부름에 조르르 달려와 의자에 앉는 녀석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남편이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내 쇼핑몰의 상호명을 지어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는 '출동준비완료'라는 상호를 가진 온라인 쇼핑몰에서 찻잔이나 티포트 등과 같은 차도구를 판매하기로 했다. 뭔가 여성스럽고 보들보들한 느낌의 제품들과는 달리 저돌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상호명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나와 아이가 나누는 행복한 티타임처럼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이 조금 더 따뜻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보기로 한 것이다.
쇼핑몰 상호가 흔하지 않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주기적으로 나를 웃겨주기도 한다. 초보 사업가에게는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비타민이기도 하다.
우선 나의 멋진 상호명은 도매처에 연락을 할 때, 빛을 발한다. 한번 연락을 했던 도매처에서는 몇 달이 지나 연락을 해도 대부분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호명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쇼핑몰 유입인원 중 '출동준비완료'로 네이버 검색을 해서 들어오는 고객의 비율이 제법 높은 것도 내게는 재미있는 포인트이다. 그들의 뇌리 속에 내 쇼핑몰 상호명이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한 번은 배송 문의를 해온 고객이 이렇게 말했다.
"지난 금요일에 주문을 했는데, 언제 도착하는지 알고 싶어서요. 확인해보니 출동준비 중이라고 떠있긴 하던데요."
아직 배송 출발이 안된 상품이었는데, 상호명을 보고서 배송 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출동준비 중이라고 하면 배송 문의를 하지 않고 기다려도 될 것 같은 이미지이긴 하다. 금방이라도 집 앞에 도착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좋게 말해 위트 있고, 나쁘게 말해 저렴해 보이는 그 이름은 쇼핑몰에 임하는 내 마음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사활을 걸고 매달리기보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쇼핑몰에 내 인생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면, 나는 매일 밤 잠을 설치며 상품을 등록하고 들어오지 않는 주문에 나날이 말라갔을 것이다. 물기 없는 식물처럼 퍼석퍼석 메말라 죽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장난스레 지어둔 이름 덕분인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되 그 안에 매몰되지 않고 내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힘쓰게 된다. 엄마이면서 사업가인 내게는 꼭 필요한 능력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화 속 그것처럼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일까. 만화 속 마법사처럼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 올리기도 하고, 이리저리 레이아웃을 바꾸고 홈페이지를 꾸미는 것에도 부담을 적게 느끼려고 한다. 모든 순간을 중요하다고 여기되 하나의 에피소드가 흘러가듯 작은 것에는 연연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집에 고요가 찾아오는 시간.
그 시간 속에 숨어있는 '출동준비완료'라는 이름.
아이와 함께 맞이하는 고요 속에서 나는 차를 마시며 행복을 찾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 맞이하는 고요 속에서 나는 쇼핑몰을 운영하며 행복을 만든다.
어느 쪽이든, 우리 집에 고요가 찾아오면 나는 가슴을 한 껏 열어젖히고 설레는 기분을 만끽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