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프 2024의 테마 '확장', 과연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요?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가장 큰 행사인 프리즈·키아프 2024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저 역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는데요. 일각에서는 수백억 원 대의 대작 판매가 사라진 점을 들어 미술 시장의 침체를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프리즈 서울이 처음부터 추구했던 아시아 시장 개척이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이번 행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거장들이 떠난 빈자리는 아시아 기반의 갤러리와 작가들이 채우고 있으며, 수억 원 대의 작품들이 대거 팔렸다는 점을 다르게 해석하면, 콜렉터 층이 더욱 넓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올해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프리즈 못지않게 키아프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키아프는 2002년 시작된 최초의 국제 아트페어이자,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행사였지만,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22년부터 프리즈와의 5년 공동 개최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프리즈는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불리기에, 처음에는 키아프가 프리즈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5년 후 버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공동 개최의 반환점을 맞으며 키아프는 이러한 걱정을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키아프 단독으로 운영된 마지막 날 방문자 수는 작년 6천 명에서 올해 1만 2천 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나며 관람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프리즈 CEO가 공식 석상에서 5년 계약 연장을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반환점을 돈 키아프가, 이러한 성과를 거두기까지 그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작년 프리즈와 키아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프리즈는 여전히 찬사를 받았지만, 키아프는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았죠. 특히 전시장 설계에서 두 행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갈렸습니다. 프리즈는 세심한 조명 설치와 동선 운영 덕분에 ‘컬렉터를 위한 행사’라는 평가를 받은 반면, 키아프는 갤러리가 너무 많이 모여서 비좁고 불편하다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21개국 207개 갤러리가 참여해 작년 20개국 210개 갤러리와 외형상 비슷해 보였지만, 2층 더 플라츠까지 전시 공간이 확장되면서 훨씬 쾌적해졌습니다. 전체 공간이 20% 이상 늘어난 반면 갤러리 수는 줄어들었기 때문에, 갤러리당 할당된 부스 면적은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외 갤러리 수는 63개에서 75개로 늘었고요.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개별 부스의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다소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관람객의 만족도가 올라가자 전시장의 분위기 역시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작년만 해도 프리즈에 비해 키아프는 한산해 보였던 경우가 있었는데, 올해는 그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이번 키아프 전시는 1층과 2층에서, 프리즈는 3층에서 열렸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안내 직원들이 "프리즈뿐 아니라 키아프도 꼭 들러보세요"라는 멘트를 반복해서 외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리즈에만 모든 시선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었죠. 실제로도 키아프는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닌, 또 다른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질적, 양적 성장을 통해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키아프는 한국화랑협회에서 주최하는 비영리 행사입니다. 애초부터 상업적 성격이 강한 프리즈와는 시작부터 결이 달랐는데요. 이러한 차이 덕분에 오히려 두 행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더욱 돋보일 수 있었습니다. 프리즈가 키아프와 공동 개최를 선택한 이유는 새로운 갤러리와 콜렉터를 발굴하기 위함입니다. 프리즈 서울은 초기에는 피카소, 샤갈 등 거장들의 작품을 들여와 수백억 원 대의 판매로 화제를 모았지만, 이후 아시아 기반 갤러리와 작가들에게 집중한 것도 이러한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키아프는 프리즈 무대를 활용하여 국내 대형 갤러리와 검증된 작가들에게 글로벌 진출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프리즈의 문턱이 낮아진 것은 물론, 프리즈를 찾은 콜렉터들이 자연스럽게 키아프를 둘러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키아프도 영리 행사였다면, 시장 전체는 커질 수 있었겠지만 자체 매출은 줄어들 위험이 있어 이러한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술 시장 전체의 확장을 목표로 한 비영리 행사이기에 이러한 역할 분담이 가능했습니다.
프리즈의 ‘포커스 아시아’와 키아프의 ‘키아프 플러스’는 이러한 목표에 가장 잘 부합하는 섹션들입니다. 포커스 아시아는 2012년 이후 설립된 젊은 아시아 기반 갤러리들을 선별해 유망 작가 한 명을 소개하는 특별 섹션입니다. 프리즈가 신진 갤러리와 작가를 발굴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반영한 코너죠. 키아프 플러스도 이와 비슷하게 실험적인 신진 작가와 10년 미만의 신생 갤러리를 발굴해, 그들을 따로 모아 소개함으로써 미술계 전체에 신선함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포커스 아시아가 아시아 미술 시장으로 진입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면, 키아프 플러스는 미술품 구매를 처음 경험하는 콜렉터들에게 적합한 장소입니다. 키아프 플러스에서 키아프 메인, 그리고 프리즈로 이어지는 일종의 콜렉터 성장 경로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프리즈에서 유명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을 감상한 관람객들이 키아프를 둘러보면서 콜렉터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키아프는 더 과감한 시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키아프 플러스를 확대해 2층 공간을 따로 배정했고, VR 전시 등 관람객들에게 흥미를 줄 만한 요소도 더해졌습니다. 프리즈가 로컬 색채를 강화하는 만큼, 키아프는 더욱 실험적이고 젊은 작가들에 집중하려는 의지가 엿보였고, 이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키아프는 새로운 갤러리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힘쓰는 것은 물론, 잠재적인 콜렉터와 미술 애호가를 늘리기 위해 대중들을 향해 준비했던 다양한 액션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작년부터 구독자 수 37만 명의 유튜브 채널과 팔로워 12만 명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유한 소셜미디어 기반 뉴미디어 ‘널위한문화예술’을 공식 파트너로 선정한 것은 특히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젊은 세대가 가장 익숙하게 접하는 채널을 통해 행사를 홍보함으로써, 더 가까운 접점이 마련되었고, 이는 관람객 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매년 관람객이 늘어나고 있고요.
올해에는 이뿐만 아니라 시티호퍼스, 헤이팝 등 웹 기반 뉴미디어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홍보 활동을 한층 진화시켰습니다. 사실, 이러한 미디어를 소비하는 층이야말로 미술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콜렉터들입니다. 이들에게 방문 전부터 행사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관련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면서 관심을 끌어올렸습니다.
더 나아가 2층 더 플라츠 전시장 입구에는 미디어 파트너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배치했습니다. 여기서 뉴미디어는 물론 일반 잡지사들도 자신들을 소개하고 새로운 구독자를 모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더욱 확대할 수 있었고, 키아프가 목표하는 미술 저변 확대에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키아프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한 덕분에 내년에는 더 큰 흥행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올해는 키아프에 대한 기대가 유독 컸습니다. 그 이유는 짝수 해마다 열리는 미술계의 또 다른 대형 이벤트인 광주 비엔날레와 부산 비엔날레가 연이어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광주 비엔날레는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비엔날레는 9월 17일부터 10월 20일까지 이어지며, 키아프와 프리즈를 찾은 미술 애호가들이 자연스럽게 광주와 부산으로 발길을 옮길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 미술 축제’라는 이름으로 이 세 행사와 전국 미술관들을 연결하는 초대형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두 비엔날레 통합 입장권을 구매하면 전국 123개 미술관의 입장 혜택이 제공되며, 철도 승차권과 결합한 특별 관광상품도 마련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키아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입니다. 그래서 이번 키아프의 테마도 ‘확장’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공간의 확장부터 여러 미디어를 통한 경험 확장, 그리고 전국적으로 뻗어나가는 확장까지 다양한 시도를 준비했고, 이는 지금까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매년 성장하는 키아프는 앞으로도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남은 내년과 내후년까지의 프리즈와의 동행, 그리고 그 이후 연장이 이루어진다면 키아프가 어디까지 확장할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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