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를 넘어 클래식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썸원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된 콘텐츠입니다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미슐랭 3스타 셰프 안성재가 '급식대가' 이미영 조리사를 심사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안성재 셰프는 "솔직히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음식을 먹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며, "마치 배고픈 아이가 급식을 막 퍼먹듯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맛있다는 생각만 들었다"라고 밝혔습니다. 평범한 급식이 그 순간 특별한 경험으로 승화된 셈이죠. 그저 일상적인 음식이었지만, 여기에 이야기가 더해지자 파인 다이닝에 견줄 만한 가치를 지닌 특별한 메뉴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브랜드도 이와 비슷합니다. 반드시 처음부터 특별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가치를 쌓고 전달하며 자신만의 철학과 이야기를 담아내면, 일상 속 브랜드도 헤리티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급식대가' 이미영 조리사의 요리에 열광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그녀가 15년간 급식 조리사로 쌓아온 경험과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철학에 미슐랭 셰프의 인정을 더하면서 독특한 가치를 발현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브랜드 역시 시간과 철학을 통해 일상에서 특별함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은 우리에게 익숙한 치킨 브랜드, 페리카나가 헤리티지 브랜드로 거듭나려는 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페리카나는 1982년 창업 이래 42년간 꾸준히 성장해 온 브랜드로, 단순히 과거의 추억 속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1,000개 이상의 가맹점을 운영하며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역'입니다. 최근 페리카나는 자신을 헤리티지 브랜드로 자리 잡겠다고 선언하며,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한남동에서 이를 주제로 한 사진전도 열 예정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페리카나는 정말로 헤리티지 브랜드로 불릴 자격이 있을까요? 평범한 브랜드가 어떻게 특별함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헤리티지 브랜드는 단순히 오래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대부분이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곳들이죠. 맥도널드를 생각해 보세요. 맥도널드는 단순한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최초로 패스트푸드 시스템을 만들어낸 곳입니다. 이러한 스토리 덕분에 더욱 특별한 헤리티지를 가질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원조'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페리카나는 충분히 헤리티지 브랜드라 불릴 만합니다. 한국의 치킨 문화를 상징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모두 페리카나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국식 치킨의 시초는 양념치킨입니다. 미국의 음식이었던 프라이드치킨에 매콤한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이 더해진 양념치킨이 등장하면서, 한국 고유의 닭요리로 거듭날 수 있었죠.
양념치킨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 논쟁은 있지만, 이를 대중화한 브랜드가 페리카나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1989년, 코미디언 최양락을 모델로 한 페리카나 광고가 크게 히트하면서 양념치킨은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치킨 마니아들은 가장 원형에 가까운 양념치킨을 맛볼 수 있는 브랜드로 페리카나를 꼽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식 치킨을 즐기는 방식인 '치맥' 문화 역시 페리카나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은 이제 외국어 위키백과에도 등재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식문화로 자리 잡았는데요. 페리카나는 이 치맥 문화의 시초로 여겨지며, 한국을 '치킨 공화국'으로 만든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식 치킨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식 열풍을 대표하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치킨의 원조'라고 자처할 만한 브랜드는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누구보다 자격을 갖춘 페리카나가 이러한 이미지를 가져간다면, 헤리티지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역사를 지녔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헤리티지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헤리티지 브랜드에는 강력한 상징적인 요소가 필요합니다. 맥도널드의 골든 아치, 나이키의 스우시 로고처럼 시각적인 상징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는 중요한 자산이죠. 버버리의 체크 패턴이나 아디다스의 삼선처럼, 단지 보기만 해도 브랜드가 떠오르는 반복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있으면 그 브랜드의 존재감은 더욱 강렬해집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브랜드 철학과 가치를 고객들에게 쉽게 각인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러면 페리카나에게도 이와 같은 상징이 있을까요? 바로 1989년 최양락 씨가 출연한 광고에서 처음 등장한 그 유명한 CM송은 페리카나만이 가진 상징적인 요소라 할만합니다. '페리카나 치킨이~ 찾아왔어요'라는 가사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멜로디가 떠오를 정도니까요. 이처럼 시각적 요소는 아니더라도, 청각적으로 각인되는 '브랜드 징글'은 브랜드를 강력하게 기억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실 이러한 오디오 요소는 시각적 심볼보다 각인시키기 더 어려운데요. 소리는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기억 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TV 광고나 매장에서 자주 들리면서 자연스럽게 각인되어야만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면에서 페리카나는 시대적 운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90년대 제한된 매체 환경에서 꾸준히 노출되며 페리카나의 독특한 멜로디가 대중의 기억 속에 깊이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광고에서 이 징글을 주기적으로 사용하면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페리카나의 징글은 잘 활용된다면, 헤리티지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더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페리카나라는 이름이 '펠리컨'에서 유래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새로운 브랜드 상징을 창출할 여지를 충분히 제공합니다. 레트로 열풍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던 곰표를 기억하시나요? 대한제분은 곰표 브랜드를 활용해 곰 캐릭터와 다양한 콜라보 상품을 내놓으며, 낡았던 이미지를 클래식하고 트렌디한 이미지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페리카나도 브랜드 징글에 더해, 펠리컨 캐릭터를 활용한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 낸다면, 충분히 현대적인 헤리티지 브랜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헤리티지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일관되게 고객 경험을 유지했는가입니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카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며, 매장 관리와 커피의 맛을 철저하게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든 동일한 스타벅스 경험을 누릴 수 있고, 이를 통해 스타벅스가 안정적이고 일관된 브랜드라는 인식을 하게 되죠.
페리카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로서 모든 가맹점에서 맛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가맹점 운영의 연속성이 매우 뛰어난데요. 2024년 9월 기준, 페리카나 가맹점의 평균 운영 기간은 무려 19.1년으로, 이는 한 번 가맹을 시작하면 오랜 기간 운영을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사례도 많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페리카나는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합니다. 덕분에 흔히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점포마다 맛이 다르다’는 리스크가 비교적 적습니다. 이는 페리카나가 클래식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죠.
또한 페리카나는 창업 초기부터 고수해 온 전통적인 레시피 덕분에 자신만의 독특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페리카나도 신메뉴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고, 매번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초기의 전통을 지키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러한 요소들은 페리카나만의 클래식한 매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내 프랜차이즈 치킨 시장은 다양한 양념과 새로운 메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지만, 원조의 맛을 찾고자 할 때 페리카나로 돌아가게 되는 점은 이 브랜드만이 가지는 특별한 점으로 남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브랜드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그 가치는 금방 퇴색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페리카나도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임에도 그 가치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부분이 있죠. 사실 '올드'와 '클래식'의 차이는 미묘합니다. 브랜드의 강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미지로 쉽게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브랜드 활동을 통해 가치를 재발견하고 재조명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페리카나가 다시 그들의 역사를 앞세우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페리카나의 인스타그램 계정명인 ‘pelicana1982’는 1982년 창립을 강조하며 브랜드의 시작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진전 개최를 기념하며, 페리카나 치킨과 연관된 추억을 응모받는 이벤트들을 진행하며, 클래식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과거의 메뉴, 로고, 그리고 페리카나의 상징적인 CM송을 재창조하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브랜드 메시지는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겁니다. 패션업계에서는 과거 상징적 상품을 복각해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 자주 이뤄지는데요. 페리카나도 이러한 복각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 유산들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면 '올드'라는 이미지를 넘어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콜라보레이션도 충분히 활용할 전략 중 하나입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협업은 헤리티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신선함을 더해줄 수 있거든요. 앞서 언급한 곰표는 물론 모나미 같은 많은 전통 브랜드들이 다양한 협업을 통해 젊은 세대에 어필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듯이, 페리카나도 이런 협업을 통해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더 넓은 소비층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돌아보면 글의 첫머리에서 이야기 나눴던, <흑백요리사>의 영향으로 한식은 다시 한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열풍이 파인 다이닝과 같은 고급 시장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대중적인 한식 시장에서 이를 이끌 만한 강력한 브랜드가 아직 부재하기 때문인데요. 한식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치킨, 그리고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페리카나가 진정한 헤리티지 브랜드로 자리 잡아, 한식의 대중적 인기를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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