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위험한 줄타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전보다 더 빠르게 결착을 지어야 합니다

by 기묘한

아래 글은 2026년 03월 04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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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3문장 요약

1. 개인정보 유출 이후 첫 성적표에서 쿠팡은 매출 성장 둔화와 영업이익 97% 급감이라는 뚜렷한 위기 신호를 드러냈고, 김범석 의장의 공개 사과는 그 불안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2. 쿠팡의 모델은 고성장을 전제로 한 인프라 투자·규모의 경제·협상력 강화 구조였기에, 성장 속도가 꺾이자 과거의 강점이었던 물류 인프라가 곧바로 이익을 압박하는 부담으로 전환됐습니다.

3. 이를 돌파하기 위해 대만 시장에 다시 베팅하고 있지만, 한국 사업의 현금창출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1·2분기 실적이 향후 전략의 성패와 시장 주도권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드러난 위기 신호들


아마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텐데요. 쿠팡의 2025년 4분기 실적이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이후 처음 받아 든 성적표였던 만큼, 시장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날 더 눈에 띈 건 숫자가 아니라 김범석 의장의 사과였습니다. 컨퍼런스콜에서 약 1분간 공개 사과를 했는데요. 공식 사과문은 지난해 12월 이미 발표했지만, 실시간 육성으로 사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러한 태도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습니다. 쿠팡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죠. 실제로 공개된 지표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12월 매출 부진으로 4분기 매출 성장률은 14%에 그쳤고, 50조 원 돌파가 유력해 보였던 연간 매출도 49조 1,197억 원으로 마감했습니다. 무엇보다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7% 급감했다는 점은 치명적인 경고였습니다.

올해 전망 역시 밝지 않습니다. 1월 매출 성장률은 4% 수준에 머물렀고, 1분기 성장률도 5~10%에 그칠 것으로 제시했습니다. 물론 최근 일부 지표가 안정화되고 있고, 일시적으로 감소했던 와우 멤버십 회원 수도 다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설명은 덧붙였지만요. 다만 구체적인 연간 실적 가이던스를 회복세가 뚜렷해진 뒤에 제시하겠다고 밝힌 점은, 지금도 여전히 쿠팡이 불확실성의 구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조건 시장보다 훨씬 더 성장해야


물론 솔직히 말해 4분기까지의 외형 성장만 놓고 보면 쿠팡의 성적이 아주 나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4분기 성장률 14%는 시장 평균 6%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었고, 1분기 전망 역시 예상대로라면 최소한 시장 평균은 상회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문제는 영업이익입니다. 외형이 조금 둔화됐을 뿐인데 이익은 거의 소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쿠팡이 구축해 온 모델의 구조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쿠팡의 성장 공식은 크게 세 단계였습니다.


첫째, 압도적인 인프라 투자와 물류 내재화로 경쟁사와의 서비스 격차를 만들었습니다. 빠른 배송과 높은 편의성을 내세운 와우 멤버십은 고객을 묶어두는 결정적인 무기였죠. 고객과 주문 모두 덕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요.


둘째, 이렇게 확보한 주문 밀집도를 기반으로 주문당 물류비용을 낮췄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며 오랜 적자 구조를 벗어나 흑자 전환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셋째, 쌓아 올린 시장 지배력을 기반으로 공급자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LG생활건강, CJ제일제당 등 대형 제조사와의 갈등에서도 주도권을 쥐며 입지를 재확인했고요. 이렇게 확보한 수익을 다시 인프라에 재투자하며 격차를 더욱 벌려 왔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지속적인 고성장’을 전제로 설계됐다는 점입니다. 물류 투자를 멈추지 않는 이상 이를 회수하려면 충분한 주문량과 높은 가동률이 필수적입니다. 동시에 협상력을 유지하려면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속도가 필요했습니다. 쿠팡의 확장은 시장 전체를 키우기보다 경쟁사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는 방식이었고, 그래야 제조사들 입장에서 쿠팡이 ‘대체 불가능한 채널’로 자리 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에 이러한 속도가 둔화된 지금, 과거의 인프라 투자는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주문이 기대만큼 늘지 않으면 고정비는 그대로인데 가동률은 떨어지고, 그 결과 이익은 급격히 훼손됩니다. 이번 분기처럼 성장률이 조금만 꺾여도 영업이익이 크게 흔들리는 이유입니다. 구조적 강점이었던 인프라는 성장 둔화 국면에서 곧바로 약점으로 전환된 겁니다.




멈추면 넘어지기에 달리곤 있습니다만


그래서 쿠팡은 역설적으로 다시 성장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매출이 세 자릿수로 증가하고 있다고 밝힌 대만 시장에 투자를 확대하는 겁니다. 이곳에서 한국 시장 둔화를 상쇄할 만큼의 볼륨을 만들어낸다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문제는 그때까지의 시간입니다. 투자를 이어가려면 결국 한국에서 벌어들인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연결고리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습니다. 이제 한국 핵심 사업이 안정적인 현금창출원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죠.


이는 과거 쿠팡이 걸어왔던 길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설이 증명되기 전까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천문학적 적자를 감내하며 ‘계획된 적자’ 아래 줄타기를 이어갔습니다. 그 위험한 선택은 결국 성공으로 이어졌고, 쿠팡은 한국 유통 시장의 최강자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끝났다고 여겼던 줄타기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다시 속도를 회복해 현금 흐름을 안정화시키는 길, 혹은 대만을 새로운 축으로 키워 구조를 재편하는 길입니다. 아무래도 후자가 장기적으로 매력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사업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투자가 수년간 더 필요하다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올해 1·2분기 실적입니다. 회복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쿠팡은 대만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핵심 사업의 효율화를 더 강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그동안 압도적 투자로 격차를 벌려온 전략에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탈팡’ 흐름은 초기만큼 가파르지는 않지만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닙니다. 경쟁사들이 이 틈을 파고든다면 쿠팡은 분명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국면을 버텨낸다면 쿠팡이 다시 한번 주도권을 쥘 여지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결단과 실행이 쿠팡에게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시장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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