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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Dec 13. 2021

Chapter 1 BIRTH

카코포니 'Reborn' 작업기 

<Life Note>


내 노래를 듣고 혹시 종교가 있냐고 나에게 대뜸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 대답을 하자면 종교는 없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 이 질문은 굉장히 난처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분명히 종교적인 사람인 것 같다. 법칙과 운명과 구원을 믿으니까.


사실 어린 시절에는 구체적인 ‘신’을 믿었다. 나를 구원해줄 초월적인 존재를. 사실 어떤 신이 존재할지는 확신할 수 없어서 모든 신을 믿었던 것 같다. 참 근성 없이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가고 절도 가곤 했다. 신성해 보이는 건 다 믿었다. 일본인들의 토속신앙처럼. 많고 많은 신들 중에서도 특히 별과 달은 나의 중요한 신이었다. 


왜 그렇게 신을 믿고 싶었을까? 답은 뻔하다. 외로우니까. 


외로운 꿈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반복적으로 꾸곤 했다. 노란 햇살로 가득 찬 이촌동을 배경으로 꿈은 진행된다. 내가 앞장서서 걷고 있고,  내 뒤로 엄마, 아빠, 오빠가 줄줄이 나를 따라온다. 나는 유치원에 가야 했고, 가는 길에 중간중간 뒤를 돌아볼 때마다 가족이 한 명씩 줄어든다.  오빠가, 아빠가, 엄마가. 그리고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는 나만 남았다. 머뭇거리다 유치원에 들어간다. 총을 든 군인들이 가득 채우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선생님과 아이들을 찾아내서 총을 쏘고 있었다. 이유는 몰랐다. 이유가 있었어도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입구 바로 옆의 풀숲에 숨어 작은 손으로 입을 막고 숨을 죽인다. 심장 소리가 온몸을 통해 밖으로 새어나가는 듯했다.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총에 맞고 힘 없이 쓰러졌고 나는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흘러나온 탄식 뒤로 뒤늦게 침묵으로 뒤덮어보지만, 총구가 풀숲을 치우고 나를 향한다. 그러고서는 이 지독한 꿈에서 깬다. 


영화 [Reborn],  Chapter 1 BIRTH


나는 주변에 맞춰주기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주변인들은 내 어린 시절이 외로웠다고 말하면 이해를 못 할지도 모른다. 나는 연기를 잘했고 정말 모든 종류의 사람과 잘 지냈으니까. 흔히 노는 친구들부터 무리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까지 두루두루 친했다. 


'친(親)’했나? 


아직도 조금은 가지고 있는 고질병인데, 나는 타인이 원하는 말은 잘 해낸다. 허나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바는 말하지 못한다. 나를 드러내 놓고도 내가 한 말 뒤에 숨기를 참 잘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었고, 나 역시도 친구들을 사랑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언제나 낯선 섬이 되어 나는 방에 와서 울음을 터뜨리기 일수였다. 


태어나기를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막상 태어난 이 삶은 내가 어울릴 수 없는 종류의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별 다른 걱정이 없어 보였고, 나는 혼자 복잡한 생각을 하는 이방인이 되었다. 외로움에 도취되는 성격도 아니어서 골치가 아팠다. 나는 그저 저들과 같아지고 싶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지 않아도 사람들과 매끄럽게 굴러가고 싶었다. 사람들의 허물 벗은 웃음을 허락받고 싶었다. 


영화 [Reborn],  Chapter 1 BIRTH


아무도 찾지 않는 밤이면 몰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행위를 따라 하곤 했다. 의식행위가 그렇듯이 기도를 하면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다. 내 안의 말을 누군가는 들어주는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저 ‘신’이라는 존재에게는 토해낼 수 있어서. 왜냐면, 그 자는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니까.


신이라는 존재, 때로는 '별'이고, 때로는 '달'이었던 존재에게 했던 말들을 가사로 적었다. 나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으면 하는 가사를 프랑스어로 쓰곤 한다. 물론 프랑스어권 팬들이 많아져 그 의도는 희미해졌지만 아직도 그렇게 한다. 이것도 무슨 의식처럼. 그래도 털어놓았다는 기분에 감정이 소화되는 듯해서. 이 노래도 프랑스어로 썼다. 어린 시절 혼자 불 꺼진 방 안에서 기도하는 내용을 노래로 만들고 자는 했으면서, 겁쟁이처럼 이 초라한 마음을 제대로 보여 줄 용기는 없었나 보다.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조금 열어야겠지. 


“달이여, 별이여, 내 말을 들어줘. 이 밤이 지나면 나를 바꿔줘.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아침이 찾아오면, 나는 햇빛으로부터 숨어야 해. 나는 보통의 세상을 봐. 이방인 그림자의 꿈. 나는 내 얼굴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 않아. 나는 내 삶을 선택하지 않았어. 빛이 나를 비웃어.”


이제 이 이야기를 들었으니, 당신도 나의 신이 되어버린 걸까? 






<Music Note> _ Mon Étoile

https://youtu.be/2WrzMwuVJk4 



이 배경은 확실히 ‘밤’이어야만 했다. 이 분위기를 위해 낮은 음역대의 신디사이저로 시작을 했다. 밤을 상징하는 이 신디사이저 소리로부터 이 노래가 시작이 되었다. 보통 가사를 먼저 쓰는 나에게는 색다른 작업 방식이었다. 


목소리는 밤안개처럼 들렸으면 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가사이니, 일상적인 방식으로 들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직설적인 가사가 나올 때부터 목소리를 정중앙에 두지 않고, 양쪽(스테레오)으로 넓게 퍼뜨렸다. 양쪽으로 넓게 퍼트리기 위해서는 두 번 녹음을 해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보내는 방식과 하나의 소스를 시간차를 두고 왼쪽 오른쪽에서 재생시키는 방식이 있는데, 나는 후자를 택했다. 하나의 목소리인데 넓게 들릴 때 더 기이한 느낌이 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드럼도 들어온다. 심벌들은 밤하늘 넓게 퍼진 별빛 같았으면 했다.  패닝을 조금 극단적으로 주어 여기저기에서 별빛이 깜빡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2집의 첫 번째 곡도 3/4이었는데, 이번에도 3/4 박자이다. 3/4을 선택해야지 하고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3/4이 더 동화스러운 것 뉘앙스를 준다. 


이후에 여러 악기들이 추가된다. 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인 다양한 목소리톤은 포기했다. 한 가지의 톤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나의 불안과 욕망을 악기들이 대신 설명해주었으면 했다. 기도는 원래 마음속으로 아무에게 들리지 않게 하니까. 


기타는 1집부터 그랬듯이, 건우에게 부탁을 했다. 펜더 기타로 작업실에서 녹음을 했다. 건우가 가지고 있는 기타 중에서 펜더의 빈티지한 느낌이 밤의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코드를 깔아주는 기타와 뉘앙스를 주는 기타 두 트랙을 활용했다. 특히 솔로 기타는 덤덤하고 쎄하게 부르는 보컬 대신 기타가 슬픔을 나타내 줬으면 했고, 건우의 섬세한 연주가 이를 해결해주었다. 데이빗 길모어의 기타톤을 레퍼런스로 했다고 한다. 


베이스로는 무그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 가상악기로는 베이스가 원하는 만큼 묵직한 느낌이 잘 들지 않아, 직접 연주해서 녹음을 했다. 베이스톤을 만들고, 발과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노래 진행에 맞게 디스토션과 필터 이펙터를 걸었다. 감정이 고조될 때 베이스가 특히 더 튀어나오게 조정했다. 


모든 악기가 빠지고 처음의 신디사이저와 나의 목소리만 남는다. 여러 욕망들에게서 다시 기도하는 나로 시선점이 바뀐다. 남들과 같아지고 싶다고 말하는 나의 뒤로, 합창 소리가 쌓인다. 다른 멜로디를 부르는 목소리와 기타가 들려온다. 


사실 나는 다른 말을 하고 싶다.  



카코포니 EP & 영화 [Reborn] 작업기 매주 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카코포니 영화 [Reborn] 감상하기 

https://vimeo.com/ondemand/cacophonyreborn   


카코포니 영화 [Reborn] 프로그램북 확인하기 

https://url.kr/qjt2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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