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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Dec 17. 2021

Chapter2 Life Inside The Stage

카코포니 'Reborn' 작업기



<Life Note>


지금의 시대는 좀 더 다양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시대인 듯 싶다. 하지만 내가 조금 어렸을 때만 해도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사랑받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 원한다면 자유로울 수는 있었는데, 따돌림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다. 진짜 ‘나’의 모습이 들킬까 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말하면 진짜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까 봐.


내가 조금 다른 상상과 이질적인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인지했다. 나의 ‘다름’이 가끔은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은 역시 무섭고 피곤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하는 일들이 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았고, 내가 숨 쉬듯이 하는 생각이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나의 다름이 관계에서 미세한 어긋남을 일으킨다는 것을 경험했을 때, 나는 나를 숨기고 살기로 결정했다. 지독한 사회화였다. 자유와 외로움은 언제나 함께 가야만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유에 대한 갈망보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나는 그렇게 두려움의 벽돌로 내 주변을 겹겹이 둘러쌌고 세상에 나의 성을 우두커니 세워두었다.


겹겹이 싸맨 나의 성 안에서만 나는 진짜 ‘나’를 키워갔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나는 진짜 ‘나’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나의 모습을 숨겨두고 아주 진득이 아껴주었던 것 같다. 아무에게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나는 헤르만 헤세를 읽었다. 보들레르와 랭보를 읽었다. 까뮈, 사르트르, 라캉, 푸코, 바타유를 읽었다. 니체를 읽었다. 그들의 문장에서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위로받았다. 독서실에서 몰래 읽으며 받았던 격한 흥분을 지금도 온몸이 기억한다. 나는 라디오헤드를 들었다. 이소라를 들었다. 퀸과 사이먼 앤 가펑클을 들었다. 데이빗 보위를 들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나와 같이 슬픈 사람들이 있음에 위로받았다. 무슨 가사 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걷다가도 울었다. 나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베를린 천사의 시, 멀홀랜드 드라이브, 트루먼 쇼, 아멜리에,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았다. 나는 내가 처음 보는 세계에서 자주 정신을 놓고 오곤 했다. 하루 종일 영화만 보고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는 나를 감추어두며 만났던 작품들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Reborn 영화에서는 안무가 박주현님이 연기해주신 ‘별의 요정’ 캐릭터로 표현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 진짜 나를 알아봐 주고, 나랑 놀아주던 친구. 


스무 살이 된 나는, 얼핏 보기에 사회에 잘 적응한 사람이었다. 물론 학교 밴드에서 도 노래를 부르고, 웃음소리도 좀 크긴 했지만  사람들이 용인할 수 있는 경계 안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이상함이 묻어나왔겠지만, 나는 나름의 방식대로 나를 세상에 융화시키며 살아냈다. 


그리고 그때쯤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무서웠지만, 나도 사랑하고 싶었다. 

랭보의 시에서처럼, 이소라의 노래에서처럼, 퐁네프의 연인들처럼. 

나의 성 안에 그를 초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성에서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그는 미세하게 거부감을  내비쳤다. 아주 어린 시절 내가 친구들에게 느꼈던 그 어긋남. 결국 나는 사랑에서도 경계 안에 있는 사람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이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연애에서 나는 나를 다 숨길 수가 없었으니.


다른 연애도 비슷했다. 상대방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사랑에 내가 없음을 안다. 진짜 나는 사랑받을 수 없음을 안다. 전부 다 사랑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 사람들이 내게 비춘 그 당혹스러운 표정, 어색한 분위기, 방금 것은 실수라고 말하기를 강요하는 눈빛. 어색한 침묵을 끝내기 위한 나의 사과. 


이 어긋남이 반복되면, 나의 하나뿐인 연인은 나에게 이제 말로 타이르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라고. 더 반복되면 이제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하고 싶은 나는 경계 안에 있어야 하니까. 더 나를 감춰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완전히 바뀔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 





<Music Note> _ 에일리언

https://youtu.be/vAbrsr5L5k4 


멜로디와 가사, 기본적인 코드는 30분 정도만에 썼던 반면에 가장 작업 기간이 길었던 노래이다. 생각해보면 크게 변경되지도 않았는데, 고민을 이것저것 많이 했다. 


카코포니의 대부분 곡이 그렇듯이 에일리언도 피아노로 시작했다. 내 피아노를 최종 트랙으로 쓸지 몰랐는데, 살짝 서툰 느낌이 오히려 이 노래와 어울려 그대로 가기로 했다. 이 서툰 피아노는 경계 안의 나를 상징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예쁘게 들리는 이 피아노 소리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피아노 주변으로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라진다. 숨기지 못한 진짜 나의 모습이다. 


‘난 에일리언, 너에게 사랑받을 수가 없어’라고 고백하는 후렴에서는 진짜 나의 모습을 더 드러낸다. 변조한 괴상한 목소리를 여러 겹 쌓고, 과감하게 비트를 찍었다. 특히 하이햇에 필터, 드라이브, 패닝을 과감하게 주어서 마치 에일리언의 꼬리가 휘젓는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건우의 기타가 묘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원래 이 곡은 미디 베이스로 작업했는데, 철순님이 이 곡을 듣고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다고 하셔서 흔쾌히 맡겼다. 비트 작업을 할 때 그냥 감으로 아주 미세하게 박자 조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 메트로놈을 듣고 연주하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곡이 특히 그랬는데, 이 때문에 리듬을 맞춰야 하는 철순님이 많은 고생을 하셨다. 이렇게 많은 노트를 연주하는 리얼 베이스 녹음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셨다. 덕분에 보컬과 베이스가 함께 곡에서 울부짖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이 울부짖는 보컬에 대한 설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절절하게 들리는 이유는 진짜 울면서 불러서다. 


나는 대부분의 보컬 녹음을 엄청나게 짧게 끝낸다. 보통 세 테이크 통째로 부르고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두 테이크 정도 더 부르고 끝낸다. 1집의 ‘숨’처럼 원테이크로 간 노래도 종종 있다. 오래불러봤자 감정만 잃고 길을 잃어서다. 그런데 이 노래 녹음은 너무 어려웠다. 내 노래 중에 가장 테이크를 많이 갔던 것 같다. 


보컬 디렉팅은 믹스와 레코딩을 맡은 은정언니가 하는데 보통은 별 디렉팅을 안 하신다. 하지만 에일리언은 계속해서 아니라고, 다시 하라고 했다. 박자와 음정을 생각하느라 중요한 게 없다고. 더 무너지라고, 더 슬퍼야 한다고. 내가 너의 보컬을 좋아하는 이유는 짐승같이 불러서인데 이상하게 지금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계속 감을 잡지 못하다가, 마이크 앞에서 그 때의 에일리언으로 순식간에 변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사랑받고 싶지만, 껍데기밖에 사랑받을 수 없던 그 때의 내 모습으로. 곡을 쓴 주제에 그 감정을 감당하기가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무너지기를 거부하다가 마음의 벽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내가 내뱉은 목소리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어린 기억을 데려온다. 내가 에일리언일 수밖에 없던 그 기억으로 나를 무너뜨린다. 그 때 차마 울지 못했던 나의 마음을 이제서야 들여다본다. 이제야 흘러나가게 내버려둔다. 마지막 테이크에서 완전 엉엉 울면서 불렀다. 그 덕에 박자와 음정이 조금 엉망이었지만 그 테이크를 곡에 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은정언니는 내가 그 감정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음을 어떻게 알았던 걸까. 아마 물어보면 호탕하게, “그냥 그럴 줄 알았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카코포니 EP & 영화 [Reborn] 작업기 매주 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카코포니 영화 [Reborn] 감상하기 

https://vimeo.com/ondemand/cacophonyreborn   


카코포니 영화 [Reborn] 프로그램북 확인하기 

https://url.kr/qjt2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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