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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Dec 27. 2021

CHAPTER 4 THE PLOT TWISTED

카코포니 'Reborn' 작업기 

<Life Note>


슬픔을 겨우 벗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다시 태어나서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휘몰아치는 알 수 없는 소용돌이를 느꼈다. 울음이 차오르는 감각과 구역질을 섞은 기분 나쁨. 한 번도 토해본 적 없었지만, 이 감정은 도저히 숨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신이었던 ‘타인’의 지위는 한순간에 추락한다. 내가 그토록 따르고 싶던, 내가 그토록 사랑을 갈구했던 타인들이 이제는 밉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었다. 전부 다 나를 위한다고 했던 말과 행동이었으니까. 그들은 나에게 착한 마음으로 저주를 내린 것이다. 멀리 있던 생각들이 모여 엉켜버린다 .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여성스러워야 한다, 뚱뚱하면 안 된다, 연애를 해야 한다”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 말들이었나. 동시에 또 얼마나 나를 몰개성하게 만드는 말들이었나. 


이 저주가 오히려 고맙던 시절도 있었다. ‘고작 나에게 이런 관심을 주다니.’ 그들의 기대를 가능한 한껏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그들의 사랑 속에서 안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이 기대와 관심이 얼마나 깊이도 의미도 없는지 안다. 


왜 나는 타인의 시선에 갇혀만 있었을까. 왜 그것이 나의 세계의 전부였을까. 내가 보는 바다는 아무도 상상해주지를 않았는데. 나는 왜 깊이도 없는 그 시선을 나의 마음을 모두 담아 상상해준 것일까.



사람마다 저마다의 길이 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전부 다 다르게 태어났으니까. 성공과 행복의 색깔은 조금씩 다르게 칠해져야 한다. 다 다르게 예쁘고 빛나야한다. 허나 나는 성공과 행복이 마치 한 가지의 색이고 모두가 그 색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속았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색을 가져야만 하는 저주에 걸린 것처럼 평생을 살았다. 나의 색은 못생긴 색이라 여기면서. 


내가 얻은 졸업장과 상장과 자격증들에 나의 이름은 있지만 나는 없다. 이상하게 하나씩 그런 나의 실력을 증명하는 문서가 생길 때마다, 오히려 나는 더 무서워졌던 것 같다. 나의 가치가 이 문서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 같아서. 더 집착했다. 더 모았다. 그러나 이 작품 같은 자격증들로 갈아 만든 나는 사실 시체와 다름이 없지 않을까? 


내가 얻은 친구들과 애인에게 나는 나의 모습 하나 떳떳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언제나 그들의 기분이 우선이다. 나는 틀리고 그들은 맞다. 틀린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말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생각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내 인생을 영화로 비유해 본다. 타인들이 만든 나의 영화가 끝이 났을 때 엔딩 크레딧에 나의 역할들이 나열된다. 학교에서의 나, 가족에서의 나, 친구들 속에서의 나, 연애에서의 나. 정말 많은 나. 하지만 저 역할 중 어느 하나에서도 진정으로 나였던 적이 없다. 


나.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분노한다. 소리 지르고, 악을 쓴다. 이 저주에 손뼉 치며 웃어넘긴다. 




<Music Note> _ 저주

https://youtu.be/Qo1NOM2q3k8 


  ‘저주’라는 제목처럼 주술적인 느낌이 필요했다. 쿵-,쿵쿵. 아주 간결하고 분명한 리듬을 반복시키면서 괴기한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벨소리와 특이한 타악기 소리로 한층 더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 곡은 카코포니 라이브를 함께 하는 연주자 세 명과 함께 곡을 완성시켰다. 가장 먼저 피아노를 맡기기 위해 완기오빠에게 곡을 들려줬다. 그랬더니 오빠에게서 영화 ‘어스’의 Ost처럼 합창을 넣어서 편곡을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받았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노래 자체가 너무 나의 취향이었고, 합창 소리가 쌓이면서 만들어내는 기이한 분위기가 나의 메시지와도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성스러운 합창 소리와 나의 과격한 보컬과의 부조화가 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나의 가치 사이의 부조화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스케치 단계에서 보다 합창 부분을 발전시켜 편곡을 진행했다. 


 피아노 그 자체 소리뿐만 아니라 이펙팅이 걸린 피아노라든지 여러 소리들 함께 전달해주었다. 곡이 더 풍부해져서 부분 부분 썼다. 비슷한 그림을 함께 그릴 수 있다는 건 참 편안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피아노 외에도 피드백을 꼼꼼히 해줘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철순님의 경우에는 리듬 부분에서 여러 조언도 해주셨고 베이스 자체도 간단한 베이스지만 많은 고민을 해서 보내주셨다. 덕분에 여러 욕심으로 난잡했던 노래가 정리가 되었고, 완성도가 올라갔다. 노래의 가닥이 거의 다 나온 후에 마지막으로 기타 녹음을 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기타가 가장 어려웠는데, 그래도 건우와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원하던 분위기의 기타를 얻을 수 있었다. 화려한 플레이보다 적은 노트로 효과적인 연주를 목표로 했다. 



한 음 한 음 정확하게 디렉팅을 내리기 싫어하는 타입의 나로서는 음악의 그림을 제시했을 때 알아서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가 필요하다. 내가 미디로 연주해 둔 피아노, 베이스, 기타 너머로 진정으로 이 노래가 가야 할 길을 볼 수 있는 연주자가. 그러려면 기술적인 연주 자체뿐 아니라 음악 자체를 할 수 있고, 나의 세계관에 공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뮤지션은 흔하지 않다. 나는 감사하게도 그런 뮤지션들을 만났다. 참 운이 좋고 감사한 일이다. 


보컬, 베이스, 피아노, 기타, 합창, 여러 타악기들이 휘몰아치다가 한 순간에 확 사라진다. 힘이 빠진 보컬과 피아노만 남는다. 분노 후에는 외롭고 슬프다. 분노를 느끼지 않았더라면, 그 사회에서 그 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었을 테지만, 분노를 느낀 이후에는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되니까. 


혼자가 된다.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한 모든 시간들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무리와 떨어져 홀로 남아 슬피 우는 새처럼 노래를 불렀다. 이 감정이 본 녹음 때는 잘 표현되지 않아 데모 버전으로 썼던 녹음 파일을 그대로 썼다. 


차라리 분노를 느끼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혼자가 되지 않았을 텐데. 분노가 끝난 후의 나는 사무치게 외롭다. 분노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타인을 향한 분노가 어느새 나를 향한다. 나는 변해야 한다. 





카코포니 EP & 영화 [Reborn] 작업기 매주 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카코포니 영화 [Reborn] 감상하기 

https://vimeo.com/ondemand/cacophonyreborn   


카코포니 영화 [Reborn] 프로그램북 확인하기 

https://url.kr/qjt2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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