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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Jul 23. 2023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 비망록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1화



엄마. 

엄마의 죽음은 방아쇠가 되었어. 나는 대화를 잘 못 나누는 사람이라, 엄마가 떠나가는 와중에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지. 고통으로 매일 수번씩 비명을 지르는 엄마에게 말이야, 나는 내가 가진 어떤 것도 털어놓지 못했어.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를 사랑했고,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당신을 더 괴롭힐 수 없었어.  


약물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 난도질당하는 사람에게 '나는 내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거야. 갑자기 20년 정도 묵은 과거를 들이밀면서 말이야. 나는 간호사를 다급히 부르고, 엄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없애줄 진통제를 더 부탁해. 내 억울하고 헛된 마음은 어떻게 어딘가에 쳐 박아 두고.  






미국에서 엄마를 보러 이모가 한국에 왔을 때 기억나지? 엄마를 가장 오래 보며, 엄마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 엄마는 그런 이모를 특별한 결로 참 좋아했지.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잘 안 보였는데, 간병을 하다 보면 엄마의 작은 반응들을 학습하고 알아차릴 수 있게 돼.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엄마는 미묘하게 열띤 얼굴을 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챙겨주더라. 돈이 전부인 엄마의 세상에서는 이모 이름으로 들어 둔 보험과 통장이 최선의 사랑 방식이었지만.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병원에서 은행으로 이모를 데려가라 했어. 이모는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 이모는 정말 좋아하는 언니를 그저 보러 온 거였으니까. 고작 돈으로 자신의 방문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싶지 않았겠지. 그 모습에서 이모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멋대로 믿어버려. 구원을 찾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나타나기 마련이거든. 무의미해 보이는 은행 업무를 마치고 병실 앞에서 나는 이모와 대화를 하다가 울컥 토해버리지. 어떻게 어딘가에 쳐 박아 두었던 억울하고 헛된 마음. 


 "도대체 나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어요."하고.   






엄마는 이모가 미국으로 떠나고 느닷없이 나에게 1000만 원을 줘. 엄마가 이 돈을 나에게 줄 때의 표정이 기억나. "나는 사랑을 행하고 있다"는 안도감의 표정. 돈이 전부인 사람에게서 돈을 받는다는 일은 꽤나 중요한 일로 기억되었어. 그때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엄마의 이름 마지막 글자에서 가져온 '화(和)', 카코포니의 1집은 엄마와 화해하고 싶어서 만든 앨범이었어. 나는 엄마에게 받은 돈 전부를 이 앨범에 썼지. 사람들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이해하기 쉬운 테두리 안에 나의 슬픔을 두었지만, 나는 엄마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화를 했다고 생각해. 죽기 직전 당신의 눈빛에서 받은 마음과 노래하는 나의 마음이 이어지는 그런 기묘한 대화. 평생을 같이 살았으면서 그제야 서로의 우주를 흘끔 바라보는. 마치 엄마가 나에게 화해를 돈을 주고 산 것만 같았지. 엄마와 나 다운 나름대로의 달콤한 밀월이라 생각이 들어.

  

나는 그 앨범 이후로 엄마의 죽음 이전으로 갔어. 내가 해결하지 못한 마음들이 많았거든. 아마도,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엄마와 비슷한 모양새로 살았을 것 같아. 잔뜩 고장이 난 채로, 엄마의 삶의 궤적을 뒤따라 걷는 사회적 시선에 묶인 노예의 나로. 떳떳하고 이룬 것 많은 척 살아가지만 속은 텅 비고 비어서 음흉한 질병으로 채워지는 그런 삶으로.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음악으로 과거의 오물들을 토해내는 법에 익숙해지지. 1집 이후에도 (앞으로 내가 쓸 이야기에도 종종 등장할) 이런저런 사람들에 대해서 2집을 만들어. 자칫 아름답게 비쳐서 더 구역질 나는 과거들이었지. 엄마는 그러고 보니 모두 만난 적이 있어. 그렇지만 엄마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아. 아마 재미있을 거야. 우리가 살면서 나누었던 그 어떤 말들보다.   


그 이후로는 더 과거로 갔어. 조산사였던 엄마로부터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 방 안에서 혼자 기도하는 장면부터 시작했지. 나는 얼마나 이 이야기를 해내야 했으면 앨범이랑 함께 영화까지 만들었어. 상상도 못 했지, 진짜 돌이켜보면 웃겨.


사실 그래서 나는 이제야말로 앞으로 가야 하는 사람이었어. 어두운 과거를 다 이야기했으니까. 미련 없이 훌훌 떠날 수 있어야 했지. 그런데 나는 두 장의 정규앨범과 한 장의 EP에서 교묘하게 어떠한 부분을 도려내어. 나는 잘 잊고 사는 사람이란 말이야. 내가 가진 우울과 절망이 사실은 어디서 생겨났는지 알면서도 까먹은 척했던 거야. 하지만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망각. 




나는 마치 엄마를 잃기만 해서 슬퍼한 사람이 되고,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 때문에만 슬퍼한 사람이 되고, 음악을 하지 못한 이유로만 슬퍼한 사람이 되려고 했어. 왜냐하면, 그게 내 어둠을 전시하기에 쉬운 수단이었으니까. 


엄마, 그런데 이 3장의 앨범에서 반복된 기억 삭제가 결국에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온전히 다 표현하니 빈 부분의 모양이 분명하게 드러났지.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이 오히려 가장 압도적인 의도성을 띄어 버린 거야. 


그리고 나는 비었던 부분을 

정확하게 마주하기로 결심해. 

거푸집에 쇳물을 붓듯이, 

나는 글자들과 노래들을 이 빈자리에 가득 채워 넣기로 결심한 거야. 


나는 문득 또다시 깨달아. 

내가 계속해서 피해 다녔던 이 빈자리에는, 내가 엄마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엄마, 엄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죽기 전에 그런 말을 했어.


엄마와 내가 닮아서 걱정된다고.  

근데 말이야, 나는 엄마랑 달라.  


나는 발악하는 사람이야. 

나는 삶을 쟁취하고 싶은 사람이야.  


나는 이제 잘못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거세된 나의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엄마, 살아서는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들어줘. 그리고 나의 숨으로 함께 노래해 줘. 


이 쇳물이 잘 굳으면 어떤 모양을 하게 될까? 











망각됐다고 해서 그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기억은 의지의 힘으로 재생될 수는 없어도 잠재적인 상태로 계속 존재하고 잇다가 언제든지 저절로 머릿속에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자존심이 너무 강한 때는 기억이 오히려 길을 양보한다. 


카를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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