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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Aug 01. 2023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 흔들리던 이가 빠지던 꿈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2화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끼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  
아니 에르노




올해 초에 지나치게 선명한 꿈을 꾸었어. 앞의 내용은 흐릿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다만 오른쪽 아랫니가 계속 흔들렸고, 흔들리던 이를 내가 만지니까 너무나도 손쉽게 쏙 빠져 버렸어. 꿈에서 깨자마자 나는 혓바닥으로 오른쪽 아래를 더듬거렸어. 그러고도 믿기지 않아 거울로 다가가 내 이가 제대로 있는지 눈으로도 확인했지. 그 정도로 아랫니의 빈자리가 선명했어.  


꿈은 보통 다 잃어버리는 편인데, 감각으로도 느껴지는 꿈이라 특별하게 여겨졌어. 이가 빠지는 꿈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지. 내가 핸드폰을 증오하지만, 이런 편리성은 확실히 부정할 수 없어. 안타깝게도 이가 빠지는 꿈은 대체적으로 좋지 않은 내용이더라. 죽음과 관련된 흉몽이래. 턱 막힌 듯이 숨쉬기가 어려워졌어.  

나는 사실 이제 엄마의 죽음 이후로 죽음은 지긋지긋해. 더 이상 이 정도의 불행은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일까? 이 꿈의 해몽은 나를 갑작스러운 불안으로 던져 버렸어. 아빠는 하얗게 늙었고, 내 주변 사람들을 더 이상 잃기 싫은 것 같아. 강한 척 하지만, 무뎌진 척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런 죽음들에 익숙해지겠어?  


빌리 아일리시는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이 자기를 편하게 한다고 방송에서 말하더라. 죽으면 모두 잊히고 별 상관이 없어지지 않냐고. 그런데 죽음은 나에게 더 이상 환상이 아니야. 내가 목격한 엄마의 죽음은 엄청나게 길고 지긋지긋한 것이었어. 피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피하고 싶은 것이었어. 5년 전의 죽음에도 나는 이렇게 벌벌 떨잖아.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이 감각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무시무시해. 


엄마, 나는 사실 엄마의 죽음이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을 줄 알았어. 큰아빠와 고모는 그곳에서 만났어? 동료의 죽음도 그렇게까지 날 힘들게 할지 몰랐고 갑작스러운 친구의 부고도 날 위태롭게 할지 알 수 없었어. 이태원에서 일어난 나와 연고가 없는 사람의 죽음도 날 이렇게 무너지게 할지 상상 못 했지. 최근에 발생하는 죽음들은 곱씹어 볼 여유도 나에게는 이제 없어.


나는 죽음을 감당할 수 있는 역치에 도달 직전이었어. 장례식을 그다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엄마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어. 엄마가 죽자마자 정말 득달같이 나에게 여러 형태의 죽음들을 안겨주더라. 이 꿈은 나에게 또 가까운 죽음이라는 행사를 치르게 할까 봐 너무 무서웠어.  


어떻게든 다르게 해석하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흔들리던' 이가 빠지는 꿈이라고 다시 검색해. 제발 조금이라도 내가 도망갈 수 있는 여지가 있기를 바라면서.   



흔들흔들하던 이가 빠지는 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안 요소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현재 생활에서 안고 있는 걱정이 해결되어,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날들이 찾아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빠진 것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어떤 계기로 빠진 것이라면 어떤 행동을 일으켜서 해결해야 한다.   



상황이 역전되었어. 나는 더 이상 죽음을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지. 나는 그제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어. 그리고 '불안 요소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이 달콤한 신탁 같은 말은 내가 한 해를 달릴 수 있게 만들었지.    








엄마, 사실 올해가 반이 지났는데 나는 평온한 날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엄마한테 괜히 편지를 쓰잖아.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거든.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은 사람에게 이 정도까지 지긋지긋한 일을 설명하는 건 분명 귀찮고 피해 주는 일이니까, 침묵하는 엄마니까 편지를 쓰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내 이야기를 생전에 들어주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들어줘 엄마. 지금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서 내 목을 비틀어 쥐고 있어. 엄마마저 들어주지 않으면 한 달도 못 버틸 것 같아. 그렇지만 발매하는 11월까지는 버텨야 하거든, 나.


이전까지 엄마에게 편지를 안 쓰지는 않았어. 기일이면 빼곡히 써서 납골당에 두었잖아. 글자들은 많았지만 별 내용은 없었지? 늘 착한 딸의 입장에서 '보고 싶다, 미안하다'라는 말만 쓸 정도로 도덕적 검열이 심했으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나를 말렸어. 아마 엄마에게 닿을 힘도 같지 못한 문장들이었을 거야. 사실은 말이야, 나도 기억도 잘 안나. 


근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는 걸 눈치챘지? 나는 이제 나의 언어와 생각을 검열할 여유가 어디에도 없거든. 이게 나를 해방으로 가져다주는 것일까?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조금은 통쾌하다는 기분이 들기는 해. 이 편지들의 문장들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 같거든. 그리서 엄마가 정말 듣고 있을 것만 같아서 안심이 돼. 


사실 엄마, 이번 앨범을 준비할 때에는 나는 엄마로부터 벗어난 줄 알았어.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곡들을 다 만들고, 앨범소개글까지 써두고, 몇 달이 지나서야 나는 이 앨범마저도 엄마를 간절하게 찾고 있다는 걸 알았지. 전혀 그런 곡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놀라운 일이야. 가까이서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거리가 생기니 뚜렷하게 올라오는 거야. 이 사랑스러운 구멍이. 


사람들이 다 나를 착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정말 나빠. 나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사람이거든. 엄마를 좋은 위치에 그저 둘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알고 싶지 않은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잖아. 이딴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곧 나올 앨범과 엄마를 연결시키지 않았을 텐데. 딸의 치부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끝내 나는 참지 못했어. 나는 낭떠러지 끝에 몰린 짐승처럼 발악하고 울 거야. 가장 낮고 지겨운 비명을 지를 거야.  


누군가에게 이 앨범을 이야기했을 때, 그런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은 여유 있고 유명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좋은 노래들만 골라서 내라는 피드백을 받았어. 안타깝게도 나는 유명하지 않지.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야. 엄마가 이렇게 낳았어. 나는 정리하지 못하고는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어. 합리적 선택을 배우는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면서 웃기게도 가장 미련한 선택을 해.  


미안해, 하지만 미련한 선택을 끈질기게 끌고 가는 사람은 강렬한 것을 탄생시키기도 하잖아.  


엄마, 나는 집은 쓰레기장이 되어가는데 명품 가방을 들고 향수를 뿌리고 밖을 나서는 엄마가 싫었어. 엄마, 나는 이렇게 방치해 두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선물을 주는 엄마가 미웠어. 엄마, 나는 길바닥에서 엄마에게 맞는데 사랑하는 딸이라며 엄마의 SNS에 나를 자랑하는 게 끔찍했어.  


엄마, 나는 우리가 이렇게나 악취가 난다는 걸 말하고 싶은가 봐.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테지만. 나의 현재에도 여전히 엄마와 함께 만들었던 악취가 가끔가다가 흘러넘쳐.   


미안해.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다섯 번의 봄이 더해지는 동안 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보다도 우리가 설명해내지 못한 비릿한 냄새로 괴로워했어. 그래도 이해해 줄 거지?  


엄마,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요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 악취를 공개하기 때문일까? 


이 꿈의 의미를 내 안에 가두어 두고 나는 올해를 살고 있어.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이 부디 나를 해방시키기를. 이번에야말로 내가 전부 버려두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들기를.  


흔들리던 이가 빠지는 꿈을 꾸지 않았어도 나는 어떻게든 의미를 찾았을 테지만. 저번에도 말했듯이 구원을 찾는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구원이 나타나나 봐. 


간당간당한 이 마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해도 좋아. 엄마는 알 테니까. 아무리 나를 외롭게 만들어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해. 내가 유일하게 이 글쓰기라는 칼로 공격할 수 있는 타인.

 

이만 글을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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