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코포니 Aug 26. 2023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 내 꿈은 더러워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3화

엄마 지난번에는 엄마를 너무 비난해서 미안해. 엄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유치하고 잔인한 꿈들을 많이 꿔. 예술을 하는 주제에 너무 적나라하고 저급한 욕망이 스며든 꿈을 꿔서 부끄러울 지경이야. 특히 최근에 생긴 트라우마들이 이상한 형태로 변형이 되어.  


예를 들자면, 작년 경연심사에서 노래를 하고 "난해하네요"라고 들었던 평이 여전히 마음에 남았는지, 최근 꿈조차 그 경연심사 무대에서 흘러가. 어떻게 다 쏟아내서 노래를 하고 "난해한 거뿐만 아니라, 노래를 못하는데요, 재능이 없어요. 예쁘지도 기분도 안 좋아지는데요."라고 심사위원에게 똑똑이 들어. 참 촌스럽게도 과장되고 대치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식은땀을 흘리며 죽고 싶었지. 약을 한 알 먹고. 하루를 겨우 살아가.  


얼마나 더 연습해야 이런 불안에서 벗어날까? 얼마나 더 시간을 쏟아부어야 나는 나를 믿을 수 있을까? 오늘도 12시간을 작업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작업물을 들으면서 나를 자책해. 자책하다가 못 참고 술을 마셔버리고, 바보같이 내일 노래 연습을 해야 해서 너무 많이는 못 마셔. 이런 상태가 늘 지속되어. 착하게 성실하지도 못하고, 추하게 망쳐지지도 못하는 상태. 노동자도 아티스트도 아닌 것 같아.  


엄마, 나는 음악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거 알지?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나는 집 앞에서 혼자 리코더를 부르곤 했고, 집에서 악보 없이 아무렇게나 피아노를 연주하기 했고, 쉬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혹시나 눈치를 못 챘을까 봐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 나는 실용음악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엄마를 음악 학원에까지 데려가기까지 했잖아. 물론 엄마는 선뜻 나의 길을 응원해주지 않았지만. 그때 엄마가 나를 응원해주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별 거 아니었단 걸 알아서 고작 이런 이유로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아. 우선 한국에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모두가 하는 틀에 박힌 생각. 그리고 나는 고집부릴 만큼 그때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나의 꿈은 좀 더 유보되어.  


그래서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사람들이 그렇게나 원하는 전교 1등을 하고, 10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 이것저것 상장도 참 많이 받았지. 그 당시의 나는 나의 꿈보다도 엄마에게 관심받고 싶었던 것 같아. 엄마가 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해줬으면 했어.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걸어줬으면 했어. 엄마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한 전화를 받으면서 울거나 화내는 게 아니라.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엄마는 암이 재발되었지. 정말 좋지 않았어. 그래도 나를 밖으로는 자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조금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 


나는 음악을 제대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말이야, 한남동의 그 병실에서 말이야, 엄마의 삶이 드디어 멀리서 보였을 때 나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어. 그때 준비하고 있던 외무고시가 아니라, 국제법이며 경제학이며 PSAT며, 그런 두껍고 반복적인 책들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음악은 나의 올바르고 타당하기까지 한 길이라고 믿었지. 나한테 깨우침이 내려왔다고까지 믿었어. 예술을 처음 하는 초짜가 그렇듯이 신비주의에 쉽게 사로잡혀 기고만장했지.  


본격적으로 해본 적도 없는 음악이 떠오른 건 운명이라고 생각하기 쉬었던 거야. 그리고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주제에, 나는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앨범을 만들었으니, 게다가 그 앨범이 꽤나 좋은 평가를 받고, 나는 이 길이 더 운명이라고 덥석 믿어 버린 거야.  


아빠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엄마랑 아빠가 결혼하기 전에 사주를 봤던 이야기를 해줬지. 둘이 인연의 연은 전혀 없지만, 정말 엄청난 자식을 낳을 거라고.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술에 취해서 그게 오빠라고 생각했었는데, 가만 보니 너인 것 같다고 전해 줬어. 음반을 내고 나도 얼떨결에 그 말이 떠올라버렸어. 음악을 해야 하는 운명, 그런 거창한 프레임에 나를 넣어두고 신나서 작업을 했지.  


엄마 그래서 나는 왜 엄마가 예술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가 생각하며 함부로 불쌍하게 여겼어.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 가방, 이불, 이런 것들이 그 어떤 작품이나 상품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점점 깨달으며 엄마가 가진 재능은 얼마나 빛났었는 지를 떠올리며 말이야.  


그런데 , 엄마 나는 이제는 생각의 방향이 조금 틀어졌어. 엄마는 엄마의 빛나는 재능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아서 그 꿈을 오히려 보전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묘한 방향으로. 나는 내가 가진 가장 큰 재능을 가장 실현하면서 살고 있는데 사랑받지 못해. 돈이라고는 절대 못 벌어. 내가 느끼기에 별거 아닌 재능을 실현했을 때는 너무나도 큰 대접을 받아서인지, 이런 누추한 대우가 나는 믿기지 않아. 너무 나르시시스트 같나? 


처음에는 뻔한 범주 내에서만 반복되는 음악이 나오는 음악 시장을, 그다음에는 유명한 노래만 듣는 대중들을 탓했어. 마음이 가난하고 뾰족해졌지. 그래도 나는 미천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해. 발표를 해. 노래를 해. 무대를 만들어.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다 쏟아부어. 돈도 다 쏟아부어. 그리고 해가 5번이 바뀌었고, 나는 몇 걸음 성장했는데 세상은 나에게 여전히 무관심해. 비대해진 꿈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이제 탓할 상대가 없어. 이제는 내 운명에 삿대질하고, 여기에 엄마까지 다시 데려왔어.  


엄마 나는 엄마와 같아? 엄마처럼 나는 늘 실패하다 끝이 날까? 

아니, 엄마는 차라리 자신의 꿈의 길을 걷지 않아 꿈을 지킬 수 있었던 걸까? 나보다 더 나은 걸까? 






대중성은 진심에 있다고 믿으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 내가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만화에서도 진심은 늘 승리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이제는 도저히 못 해. 나는 어떤 음악에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보다시피 나는 무엇을 하든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인기 없는 뮤지션이거든. 엄마, 나는 시발 그 누구보다도 내 인생을 다 바쳐서 음악을 했는데, 언제나 내 온 마음과 전재산을 들이붓는데 내 음악은 절대 퍼지지 않았거든. 나는 이제 믿을 만한 것이 없어.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잘하면 인정받는다는 그런 말에 이제 내성이 생겼는지 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는 이제 약효가 없어.  


엄마, 음악이 마치 가십 같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음악을 이토록 진심으로 하는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어.  


이제 나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서류를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돌아다녀. 뮤지션 카코포니로는 도저히 돈을 가져올 수가 없으니까, 예전 공부하던 머리로 어떻게든 돈을 가져오고 있지. 최악이야. 아무도 이 카코포니 자체로는 성공의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만 같으니까, 어쩔 수 없지.   


역시 내 목소리가 문제라고 문득 생각이 들어. 어떤 노래를 불러도 내가 부르면 슬프대.  엄마, 나는 사실 초등학생 때는 동요대회에 나가보라고 들을 정도로 괜찮은 목소리였잖아. 어쩌다가 이렇게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가지게 된 걸까. 아마 중학교 때 그 일이 있던 이후였던 것 같아. 나는 요즘만큼 내 목소리가 싫었던 적도 없어. 아무도 나의 슬픈 목소리를 원하지 않아. 나를 아무도 원하지 않아. 왜 이런 목소리로 나를 만든 거야, 왜 내 목소리를 슬픔 속으로 던져 버리고 떠난 거야. 엄마가 나를 안아줬더라면, 나는 지금 다른 음악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엄마 나는 그런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고 음악을 했는데 말이야, 점점 더 옹졸해져 가는 이 마음은 그때의 엄마와 다름이 없어지는 것 같아. 나의 불행을 누구의 탓으로 떠넘기고 싶어. 봐, 엄마에게 이렇게 못된 말을 하잖아.  


요즘은 엄마, 다 싫어. 내가 난해하다고, 나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만 싫었는데 이제는 나를 걱정해 주는 말까지도 나를 힘들게 해. 엄마에게만은 밉다고 말해도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엄마가 밉다고 말하나 봐. 엄마는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병실에서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가끔 떠올라.  


사실 더 할 수 있는 힘도 말도 마음도 내 안에 남아있지 않은 기분이 들어. 이 앨범도 외면받는다면 흰 백지장이 되어서 나는 무엇을 노래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어둠을 말하기에는 나는 이제 비밀이 없고, 사랑을 말하기에는 투명하지 못하니까. 겨우 간직해 온 비밀도, 이 글들을 통해 다 탄로 날 거야.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내 노래가 정말로 좋다고, 더 해보라고 말해. 너는 타고났고, 네가 무언가가 되는 건 분명하다고. 너는 엄청난 사람이라고, 큰 무대에 설 거라고. 그 이야기를 5년 동안 들으며 매일 모든 걸 쏟아내었던 나는 끝으로 추락하는 장면을 떠올려도 생각보다 덤덤해. 침묵하고 비워내도 비워 내도 차오르던 침묵이 이제는 드디어 말라 버렸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고 조금 씁쓸하지만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이기적이지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고 함부로 생각해. 나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테니까. 아니, 사실 그 사람들도 몰라. 내가 얼마큼 쏟아붓고 있는지는, 그걸 다 알려주면 내가 너무 가여워질 테니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말해. 이 앨범은 나에게 구원이 될 것 같다고. 간절히 원하던 사랑을 받는다면, 그거대로 구원이겠지만, 역시나 외면받는다면 드디어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것도 구원일 것 같다고. 나이가 들고, 현실을 안 친구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이제 나를 더 이상 말리지 않아. 


엄마가 죽기 직전에 내가 음악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엄마는 그러라고 했어. 그러면서 조금은 기대했을 텐데, 내가 큰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도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본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잘하게 된 게 없는데, 아직도 나는 같은 자리에 서 있어. 안 될 운명이었나 싶어. 나는 음악을 향한 마음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짝사랑이라고 믿어본 적 없는데, 짝사랑이었나 싶어. 역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걸까. 미련이 진득하게 남지 않도록 그래도 최선을 다 해보려 해.  


지금 만드는 음원들이 좋게 들릴 때마다 정말 괴롭다. 어차피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텐데, 뭐 해. 쓰레기통으로 운반될 운명을 아는 썩은 나무를 조각칼로 매일매일 곱게 다듬는 느낌이야. 그래도 나는 독해서, 명상하고 운동하며 생각을 없애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요즘은 꿈을 따르지 않았던 엄마가, 그래서 꿈은 아름답게 보존한 엄마가 부러워. 내 꿈은 이제 더러워. '음악만 하며 살고 싶어요'는 이제 말하고 싶지 않아. 다 쏟아내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음악은 만들고 싶지 않은데, 세상은 나를 그렇게 계속 몰아가.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어, 엄마. 

이런 마음을 가지는 나도, 이 꿈도 미워. 




작가의 이전글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 흔들리던 이가 빠지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