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대신 비벼버린 육회 비빔밥
헉헉, 죄송합니다. 급히 오다가 넘어졌는데, 그때 이랬나봐요
자전거 배달부인 젊은 남자는 내게 연신 굽신거렸다. 남자가 손에 든 투명한 비닐봉지는 3분의1쯤 쏟아진 잔치국수 국물로 부풀어 마치 복어의 배마냥 출렁거렸다. 가게에서 고명으로 넣은 파가 초록색인지 하얀색인지까지 구분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 순간 내 감정이란... 뭐랄까. 찰나였지만 선고공판에 입장하는 판사가 된 기분이었다. 혐의를 전부 인정한 피고인이 초조한 얼굴로 나의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손해를 입은 고객의 정당한 권리에 의거해 남자를 준엄히 질책할 수도, 전화기를 들어 배달 플랫폼 고객센터에 내 손해를 물어내라 요구할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냥 먹겠다’며 남자를 돌려보냈다. 음식값을 배상하겠다는 그의 제안도 끝내 거절했다.
나는 대인배가 아니다. 값싼 겸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부끄럽게도 이 나이를 먹고도 내 용서의 목록은 일천하다. 다만 굽신거리는 남자를 바라보던 그때의 나는, 잠시 잊고 살던 3년전의 기억을 떠올렸을 뿐이다.
3년전의 나 또한 늦깎이 취준생 겸 배달부로서 육중한 전기 자전거를 타고 고바위 위 원룸촌을 오갔다. 자전거를 탄 채 굴러 고객의 육회비빔밥을 대신 비벼준 적도, 3500원 더 벌겠다고 마지막 배달 건을 잡았다가 자전거 배터리가 방전돼 한밤의 마라톤을 뛴 적도 있다. 맞다. 그때의 나도 남자처럼 절박했고, 또 자주 죄송해했다.
“박애란,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려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서른을 넘기면 소주잔만하던 내면이 냉면 그릇만큼 넓어져 저절로 용서와 자비심이 샘솟는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박애심이란 잔치국수 1만2000원치 밖에 안된다. 그마저도 ‘난 안 그랬었나’ 하는 반추가 가능한 순간들만으로 한정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당신만큼의 민폐를 끼친 적은 없다고 판단될 때의 나는, 마치 자격을 얻었다는 듯 더 깐깐하고 에누리 없는 인간이 된다.
다행인 점은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타인에게 불가피한 민폐를 끼친 순간도 누적된다는 점이다. 오늘 내가 끼친 민폐가 훗날 1만2000원짜리 박애의 근거가 된다. 내가 멋대로 먼저 비빈 육회 비빔밥을 복잡한 얼굴로 받아들던 그 손님, 아니 판사님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