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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공 Aug 02. 2022

EP 05: 재택근무

[뉴-노멀: 일상의 단편] 근무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뉴-노멀: 일상의 단편]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서 작성하는 픽셔널(fictional) 에세이. 길었던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지난 시간의 촌극을 회상한다.


글의 서문을 썼을 때가 5월이었는데, 벌써 8월이 되다니,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고야 말았다.

그래서, 그 사이에 코로나가 어찌 되었나 하면, 유감스럽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사이 확진자 수는 1만 명대까지 줄기도 했지만, 다시 10만 명을 넘어섰고, 여름휴가나 여러 가지 행사들로 인해서 앞으로의 2~3주 간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는 이제 일상이고, 더 이상 숫자를 세는 것은 무의미하게도 느껴진다. 과연 팬데믹의 끝자락인 것인지 도중인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우리는 감염병과 함께 새로운 근무형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처음 시행 당시 근로자의 건강을 위하고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으나, 2~3년의 시범운영을 통해 IT회사를 비롯하여 원격근무가 가능한 환경이 구축된 곳에서는 선택 가능한 일상적인 근무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코로나와 함께 나는 두 곳의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형태가 극과 극이었다.


처음 재택근무를 접하게 된 외국계 회사에서는 입사(On-boarding)부터 퇴사까지의 모든 과정이 원격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면접도 화상으로 진행했다. 입사를 위한 서류 역시 모두 온라인, 입사가 결정되고는 퀵으로 노트북, 키보드와 같은 장비를 전달받았다. 보안 토큰과 VPN을 통해서 내부망에 접속했고, 나의 접속 시간이 기록되었으며, 퍼포먼스는 모두 수치화되고 있기 때문에 출근한 것과 다름없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혹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8시 59분에 기상해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업무를 마무리하면 지체 없이 칼퇴가 가능하다는 점은 대단한 장점이었다.(물론 업무가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영원한 근무도 가능하다.) 다만,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재택근무를 1년 가까이하다 보니 내가 백수인데 알바를 하는 건지 회사를 다니는 것인지 긴가민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잠깐 풀렸었던 3주 정도 연수를 위해 출근한 적이 있는데, 짧았던 재직기간 통틀어 그나마 3주간의 쌓인 추억들이 제일 많았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나마 같이 점심 뭐 먹을지 얘기하고, 동기들과 힘들면 퇴근하고 칵테일바도 가고, 눈치껏 질문도 하고 울고 웃고 했던 것이 다 그 시간에 응축되어있다. 그 외의 회사의 추억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정말 지겹도록 "일"만 하는 기억뿐이다. 소소하게 슬랙으로 수다 떨기나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려마시고, 점심시간에 잠깐 산책하면서 바깥공기를 쐬고 온다거나 하는 일상. 회사 내에서의 이벤트 모두 화상으로 진행해서, 핼러윈 파티나 연말 파티, 신년회를 모두 화상으로 진행한 것도 나름대로는 재미있었으나 아쉽기도 하다. 해외로의 워크숍이나 출장도 사실상 거의 중단, 외국계라 다양한 리로케이션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팬데믹 동안은 없었다. 삶의 공간과 일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MBTI 성향도 E에서 극도로 I로 변화하는 것 같은 기분. 불필요한 사회생활을 위한 스몰 톡은 어떻게 했던 건지 스스로의 사회성에 대해 반문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딴생각을 할 여지를 많이 주기 때문에,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이직을 위한 기회를 계속 찾아 헤매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원하던 직군과 직무로 옮겨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이 한 번 재택근무에 익숙해지게 되면 다시 출근을 하는 일상이 엄두도 나지 않는다. 새로운 회사는 처음 입사하고는 전체 출근을 했는데, 도무지 적응이 안 되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다는 말이 얼마나 큰 사치였는지, 새로운 회사에서 으쌰으샤 열정을 내뿜을 틈도 없이 '여긴 재택 안 하나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입사 3주 만에 다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새로 근무하게 된 회사는 콘텐츠 회사다 보니 퍼포먼스를 정량적으로 체크하기도 어렵고, 대부분의 업무가 노트북, 휴대폰으로 소통하는 일들이 많아 외국계 IT회사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운 재택근무가 가능한 환경이었다. 그야말로, 정말로 좋았다. 일 할 때는 일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고, 일이 없을 때는 불필요하게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필요가 없으니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전체 재택을 하다가는 팀에서 돌아가며 주 2~3회 출근을 했는데, 이때의 근무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것 같다. 하루 정도 집에서 일하고, 하루 정도는 나가서 일하면 아무래도 사무실에 있을 때는 사무실에서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몰아서 하고 집에서는 나머지 일들을 하면서 아주 최적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고, 사회성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어 좋았다. 이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정책이 여러 번 바뀌곤 했는데, 위드 코로나와 함께 전체 출근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전체 재택을 했다가 하이브리드로 했다가 변동이 많았다. 지금은 4월 이후 전체 출근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에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주 2~3회 정도를 재택근무로 하되 중요한 미팅/외근/출장이 있을 때는 출근을 하는 방식이라면 가장 최적의 근무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희망은 나만의 희망도 아니며, 단지 이상적인 "배부른 소리"가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몇몇 회사에서는 하이브리드 근무형태, 혹은 완전한 재택근무를 팬데믹 이후로도 지속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로자들은 적극적으로 사무실에 돌아가지 않기를 선언한다. 물론 업무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불가한 직종이 있지만, 재택근무가 가능한 IT업계의 경우 재택근무 시행 여부가 회사를 선택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며, 사무실로 돌아오기를 권고할 경우 퇴직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미국에서는 “대 사표(Great Resignation)’의 시대가 시작됐다.”라고 하는데, 재택근무에 적응한 근로자들이 사무실 복귀를 추진하는 회사를 등지고 근무 환경이 나은 직장으로 이직을 고려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실제로 퇴직수가 급증했다(중앙일보, 2021.06.30).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장인의 93%가 팬데믹 이후로도 계속해서 재택근무가 가능할 경우 재택근무를 희망한다고 응답(2020.12)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회사가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아 대기업에서 IT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경우를 보았으며, 제주도나 양양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메타버스'로 출퇴근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재택근무를 희망할 경우 회사들은 더더욱 핵심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재택근무 방식을 도입할 것이다. 재택근무가 일상적인 근무형태로 자리 잡게 되면, 도시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도 없어지게 되니 근교나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으로의 이주도 가능하고, 다른 나라에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N잡이나 학업, 취미, 육아 등을 병행하는 것도 보다 유연해지기 때문에 이전의 근로 형태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일-삶을 구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는 지인과 줌으로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원체 비싸기는 하지만 팬데믹 이전만큼 회복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 직원들이 거주하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재택근무를 계속 시행하는 회사가 많아 근로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특히나 이렇게 집값이 비싼 지역의 경우 사실 회사에 출퇴근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비싼 렌트비를 주고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지속할 수만 있다면 지속하는 방향으로 퇴사하거나 이직을 선택할 것이다. 재택근무만큼 가장 확실하게 주거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유럽에서는 '원격근무 신청권' 법제화라고 하여 재택근무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제도화하고 있고, 재택근무 시 발생하는 비용들 - 전기, 인터넷 등 - 을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훗날 어느 시점에 "라테는 말이야~" 하면서 "주 5일 동안 매일 회사 사무실을 나갔단다."하고 말하면,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사셨어요?" 하는 대화가 오갈 날이 멀지 않았기를 내심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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