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태도 EP.01 불안과 능력주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크게 흔들립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규제가 줄어들고 시장의 자율성이 극대화된 경제체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쉽게 고용불안을 마주하게 됩니다. 고용이 흔들리니 삶은 불안해집니다. 직장인 고용 불안감 설문에서 직장인 85.8%는 '현재 고용상태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얘기했습니다.
85%의 사람들이 고용상태에 불안을 느낀다고 하니, 내가 아는 10명 중 8명은 나와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이쯤 되면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더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살면 되는 것인가요? 글쎄요, 불안감을 느껴야 한다는 게 내일의 날씨처럼 정해진 것이라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쁘게 살아내고 있는 하루하루 속에서 일정량의 불안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기도 하고요.
내가 느끼는 불안감을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어, 사회학자 바우만의 이론을 빌려왔습니다. 사회학자 바우만은 현대의 개인들이 마주하는 우연성, 불확실성, 이동성, 예측 불가능성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주목했습니다. 일상의 소확행부터 직업의 선택까지 모든 것이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인생의 실패가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래로, 우리 앞에는 사냥감을 사냥하는 헌터 혹은 사냥 되는 먹잇감이 되는 두 가지 기로만이 놓여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각자 존재하고, 결국 홀로 소멸하게 됩니다. 무기력과 고립감, 그리고 생존을 이어나가게 하는 유일한 동력으로서 두려움에 대한 그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이론입니다.
능력주의란?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배분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입니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어떻게 실현되느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할 때 그 시스템에서는 폐해가 발생합니다. 능력주의가 과도하게 신성시되는 사회에서는 성과에 대한 보상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성공하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을 선으로, 실패한 사람을 게으른 실패자로 낙인찍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능력주의와 사회
로켓 배송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지난 2월 9일, 근로복지공단은 쿠팡 물류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구 칠곡 물류센터 근로자 고 장덕준씨의 사망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습니다. 장씨는 지난 10월 칠곡쿠팡물류센터에서 야간분류노동을 한 뒤, 퇴근한 새벽 자택에서 숨졌습니다. 당시 쿠팡 측은 고인의 사망은 과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고인이 근무했던 7층은 물류센터 중에서도 가장 업무 강도가 낮은 곳이며 취급무게, 포장재 사용량이 가장 낮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사망 당시 장 씨는 27세였으며, 2019년 6월부터 1년 4개월간 일 단위로 계약하며 근로하였습니다. 오후 7시에 일이 시작되어 새벽에 근로가 끝나는 심야노동이었습니다. 재해 판정서에 의하면 '장 씨가 다룬 일일 중량물은 470kg 이상으로 근골격계 부담 지침의 일일 취급 중량물 기준 250kg을 훨씬 넘었'으며, 장 씨의 근무라 주 58.7시간이었으며 그로 인해 장 씨의 근육이 과다 사용으로 인해 파괴되었다는 의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고 장덕준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 내용을 밝히며, 특히 대구칠곡물류센터는 이동식 에어컨, 서큘레이터 외 전체적으로 냉방 설비가 갖추어 있지 않아 7월 말부터 계속된 30도 이상의 고온의 날씨 아래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무거운 중량물을 취급하던 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2월 9일 산업재해가 인정되자 쿠팡은 첫 공식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이사는 고인과 유족분들께 깊은 사죄 말씀을 드린다며 쿠팡의 산재 불인정 의견과 공단의 산재 불승인과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속적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개선을 위한 결심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산업재해 인정으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6일, 쿠팡 송파 1캠프에서 심야, 새벽 배송을 하던 이 모(48세)씨가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이 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송파의 한 고시원에서 이 모씨를 찾았습니다. 택배노조는 이씨가 지방에 부인과 자식을 둔 채, 서울에서 홀로 돈을 벌기 위해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쿠팡에 계약직으로 입사하여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로, 평소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매일 10시간씩 주 5일 근무하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씨의 임금은 280여만원으로 최저 시급을 살짝 웃도는 정도 였으며, 이 사건에 대해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는 8일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을 중대재해다발사업장으로 지정하고 특별근로감독과 노동자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고인이 지난 2월 24일 마지막 출근 이후 7일 동안 휴가 및 휴무로 근무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다”며 “지난 4일 복귀 예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쿠팡 관계자는 “지난 12주간 고인의 근무일수는 주당 평균 약 4일이었으며 근무기간은 약 40시간이었다”며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가 지난해 발표한 택배업계 실태조사 결과인 평균 주 6일, 71시간 근무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자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합의기구가 권고한 주당 60시간 근무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는데요. 이에 대해 쿠팡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쿠팡의 배송직원에게 일어난 사고라며 업무와 소속이 다른 지난해 쿠팡풀필먼
트서비스(CFS)에서 발생한 물류업무 과로사와 동일 선상에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밝히며 선을 그었습니다.
쿠팡근무 노동자들은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물량을 부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1시간의 무급휴식시간에도 어플을 확인할 수 있게 해두어 택배노동자가 실제로는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쿠팡의 상대평가제도 역시 택배노동자들 사이에 무한 경쟁을 부르는 시스템으로 지목되기도 하였습니다. 장 씨의 유족 역시 쿠팡의 시간당 생산량(UPH)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강도 높은 노동이 과로사를 불렀다고 꾸준히 주장해온 부분이기도 합니다.
쿠팡에서 작년 한 해만 4명, 올해 들어 3명의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관련 영화
켄 로치, 미안해요, 리키 (2019)
영화의 주인공은 서덜랜드의 택배 노동자 리키. 그는 ‘개인사업자’로 택배 회사와 사업자 대 사업자로 용역 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입니다. 업무용 차량마저 직접 자신의 차를 몰아야 하는 리키를 통해 영화는 극단적 개인화된 사회 속 택배 노동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리키의 회사는 그의 노동권, 생명권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프리랜서(free-lancer)’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해진 임금계약을 하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의 배송 실적에 맞추어 수수료를 받습니다.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약 조항을 얻기 위해 리키가 포기한 것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장치를 명시한 계약 조건입니다.
프리랜서로 플랫폼 노동에 뛰어든 그의 삶에 불안이 깊숙이 침투합니다. 끊임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리키를 가족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팍팍한 일상에 지친 리키는 엇나가는 사춘기 아들과 깊은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지쳐가는 부모 밑에서 막내딸 라이자는 심리적으로 지쳐갑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시작한 노동이 가족들마저 개인화시키는 상황을 현실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 미안해요 리키 입니다.
맺음
우리가 생각할 것
켄 로치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입니다. 원제는 택배 기사로 일하는 리키가 배달 시점에 고객이 부재중일 때 집 앞에 붙이고 오는 택배 메시지입니다. 택배회사의 일원으로서 리키는 고객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택배원으로서 택배 회사를 대표하여 we라고 자신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정작 택배 회사 내부에서는 택배 기사인 리키가 구성원으로 취급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이 현상을 우리가 함께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레퍼런스
1. 벼룩시장구인구직 직장인 고용불안감 설문, 2021년 3월 4일, 직장인 3,274명을 대상으로 진행.
2. 박효민. (2019). 능력주의(meritocracy)를 넘어서 : 능력주의의 한계와 대안.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211-211.
3. 남미자, 배정현, 오수경. (2019). 교육열, 능력주의 그리고 교육 공정성 담론의 재고(再考): 드라마 <SKY 캐슬>의 담론 분석을 중심으로. , 29(2), 131-167.
4. 김미영. (2011). 실천과 탁월성 그리고 공과의 정의. 사회와이론, 77-106.
5. 김호기의 굿모닝 2020s, 기회의 공정 vs 결과의 공정 ... 능력주의의 빛과 그늘, (2020.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