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 Apr 14. 2021

세상을 엿보고 일상을 엿보이는

사회에 대한 태도 EP.02 대중문화와 인터넷방송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고 나의 여가생활을 엿보이는 일상


 심심하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나의 손가락이 나도 모르게 타인의 일상을 확인합니다. 먹방, ASMR, GRWM... 각종 유튜브 채널이 나를 타인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연결합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남이 무엇을 먹는지, 내가 어디를 가는지, 남이 무엇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 소셜네트워크 사회!


 유튜브를 통해 요리, 게임, 음악, 일상, 정보의 공유를 기존 방송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상하는 나는 만족을 느낍니다. 이제 유튜브 없는 생활은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작년 11월 12일 오전에 전 세계의 유튜브가 멈추었습니다. 

우주가 멈추고 지구가 꺼졌던 11월 12일 오전 10시경


소셜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개성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그것을 보는 나는 어떤 개성을 갖게 되나요? 


 예로부터 방송은 방송국의 독점적인 역할이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채널의 영역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튜브 방송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채워가고 있고, 전통적 방송의 형태를 벗어나 개인이 프로그램의 제작 주체가 되었습니다. 영상을 직접 창작하여 방송할 수도 있고, 소비할 수도 있으며, 실시간의 의사소통까지 가능한 형태의 인터넷 방송이 등장한 것입니다. 



Broadcast

방송이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활용해 널리 듣고 볼 수 있도록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방송을 담당하는 방송국에는 전파의 희소성에 의해 특별한 사회적 책임이 부과됩니다. 역사적으로 방송은 사회적 영향력이 강력한 형태의 행위로, 그 행위가 지니는 공공성이 강조해왔습니다. 그래서 방송제도를 통한 규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요. 국가별로도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정의가 상이합니다. 미국의 정의에 의하면 방송을 통해 공공이 이익,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며 독일에서는 다원적인 여론을 만들어내고 통합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을 방송의 공공성 실현 방안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방송의 종류

국영방송과 민영방송과 공영방송

 국영 방송은 권력을 지닌 세력이 언론을 소유하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언론을 국유화하거나 강력하게 통제하는 형태입니다. 이 제도의 철학적인 바탕이 되는 언론이론은 권위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이론입니다. 인간을 비이성적이고 감성에 치우치기 쉬운 존재로 보고, 방치하는 경우 개인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입니다.  

 반면, 민영방송의 철학적인 배경은 자유주의 이론입니다. 자유주의 사조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능력의 주체로 보고 선과 악, 진실과 허위를 구분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진실이나 선을 선택하게 되고요. 따라서 정부는 모든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언론이 표현의 자유를 갖도록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 됩니다.

 공영방송의 철학적 배경은 사회책임이론입니다. 언론의 자유보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언론의 자유가 무한히 인정될 수는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언론이 일방적으로 정답이라는 의견을 관철하거나 개인의 사생활을 폭로하여 침해하는 등 상업적 선정주의에 물들었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이론입니다. 이는 자유주의가 가정하는 인간관에 대한 부분적 회의이기도 하면서, 무한한 언론의 자유가 오히려 공공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었습니다.


mass media

 대중매체는 신문·라디오·텔레비전·잡지·영화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불특정한 대중에게 대량의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미디어. 또는, 그 미디어기술. 대중 전달. 줄여서 매스컴이라고 합니다. 특정 대상을 두는 편지나 전화 등 상호통신수단과는 다르게 특정되지 않은 다수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정보의 전달을 하는 형태입니다.  

 대중매체는 근대산업 발달 이후로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겪어왔는데, 인구집중, 교육의 보편화와 경제적 성장, 여가 시간 확대 등이 큰 원인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대중매체의 엄청난 파급효과 때문에 대중문화나 개인의 가치관이 다양성을 잃고 천편일률적으로 변화한다는 우려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아도르노와 문화산업

현실로부터 도피로서의 문화산업

 현대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1903년 9월생의 독일 사회학자를 소개합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대중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대중문화는 대량생산체제를 바탕으로 기계적 생산에때문에 진정으로 문화가 담고 있는 본질이 파괴되어, 이를 수용하는 대중은 표준화, 규격화, 그리고 상업화된 문화에 종속된다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에게 있어 대중문화는 일종의 변질된 문화상품이었고, 대중들의 비판적 사고를 저해하기 위해 대중문화가 이용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광고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중들의 관심, 흥미를 끌고 계속 사로잡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중의 관심과 흥미가 상업적 목적을 지닌 산물들 때문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비판합니다. 무엇보다도 상업적 산물에 관심사가 치우질 때, 대중의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인터넷방송

더 사적이고 은밀한 


 2019년에는 초등학생의 진로조사에서 크리에이터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크리에이터는 인터넷 방송의 창작자를 의미하겠습니다. 사실 인터넷 개인방송은 방송법에서 정의하는 ‘방송’과 구분됩니다. 방송법 상에서는 ‘방송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시청자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으로 방송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개인방송에서는 개인이 설비 없이도 수신과 송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의 방송 개념과는 다르고요. 따라서 인터넷 개인방송은 현행법상 방송이 아니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인터넷 개인방송이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사회 제도적으로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지난 3월 25일, 유튜브 컨텐츠 헤이나래가 폐지되었습니다. 23일 컨텐츠가 공개된 지 이틀만이었습니다. 헤이나래 컨텐츠는 코미디언 박나래가 남자 인형의 팔을 늘려 성적 묘사를 하거나, 수위 높은 발언으로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컨텐츠 헤이나래는 CJ ENM에서 론칭한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와플에서 기획한 웹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코미디언 박나래 씨 역시 25일 소속사를 통해 사과와 하차의지를 밝혔고, 26일 자필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자필 사과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헤이나래에서 부적절한 영상으로 많은 분께 불편함을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방송인으로 또 공인으로서 한 방송을 책임지며 기획부터 캐릭터, 연기, 소품까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저의 책임과 의무였는데, 미숙한 대처 능력으로 많은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렸습니다.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더 깊게 생각하는 박나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댓글의 상당수는 남자 연예인이 같은 행동과 멘트를 했다면 선 넘은 성희롱이 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방송컨텐츠의 수위 조절의 실패가 큰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컨텐츠의 제작자들이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부적절한 컨텐츠를 아동 시청층에게 노출시켰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튜버 헤이지니는 구독자 250만명이 넘는 키즈 크리에이터로, 타겟하는 주 시청대상이 어린이입니다.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튜버 알고리즘이란 무서워서 헤이지니를 보는 어린이에게 헤이나래가 분명히 뜰 수 밖에 없을텐데 말입니다. 


 유튜브의 특성상 조회수가 많을 수록 수익이 늘어납니다.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컨텐츠가 무분별하게 생산되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나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요.



관련 영화

트루먼쇼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는 피터 위어(Peter Lindsay Weir) 감독의 1998년 영화입니다. 평범한 작은 섬에서 평범한 보험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 트루먼 버뱅크는 어느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자신의 모든 삶이 낱낱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30년간 살아온 나의 일상이 나를 방송하는 채널을 켠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트루먼은 충격에 빠집니다. 모든 것이 보여지기 위해 연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삶이 진실하지 않았다고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트루먼이 되려고 하는 시기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명작으로 너무나 유명하여 많은 분들이 이미 한 번쯤은 봤으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렸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