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태도 EP.03 전쟁과 평화
어느덧 벚꽃도 지고 여름이 봄을 앞세워 만연할 준비를 합니다. 겨울이 끝났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계절이 바뀌고, 우리 곁의 식물이 모양새를 가꾸고,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면서 삶이 만연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봄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어서, 더 이상은 미련이 없다는 듯 겨울을 떠나보냅니다.
그러나 봄이 겨울을 불러 시간이 멈춘 곳이 있습니다. 벌써 10년 전, 아랍의 봄이었습니다. 아랍의 봄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혁명은 그 시작이 된 튀니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화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리아, 예멘, 리비아는 극심한 내전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이집트는 권위주의 군부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시리아입니다.
국가
국가는 일정한 영토를 기준으로 조직된 정치형태입니다. 대체로 학계에서 동의하는 국가성의 조건은 국제적인 독립성 인정과 국제 협약을 맺을 수 있는 능력 등이 포함됩니다. 통상적인 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주권 sovereignty
; the authority of a state to govern itself or another state
주권이란 국가로 묶인 통합체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입니다. 주권 이론의 창시자 장 보댕(Jean Bodin)은 주권은 국가의 절대적이며 영구적인 권력이기에 대내적으로는 최고성을, 대외적으로는 독립성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주권 이론이 만들어진 이후 사회계약론에 따라 주권은 사람들이 국가에 양도한 권력을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민주적 절차가 강조됩니다. 주권은 국가 공동체의 합의된 최고 권력이 존재하고, 국가적 결정과 선택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권 국가는 국경 내외부 다른 권력이나 다른 외부 국가에 의존하거나 종속되지 않습니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국가는 국내적인 상황에 따라 정의될 수도 있습니다. 베버는 "국가는 일정 영토 내에서 물리력을 단독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상황 발현에 성공한 인간의 무리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베버는 현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영토 내의 모든 사적인 폭력수단이 소멸하고 국가가 정당한 폭력행사의 유일한 주체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아랍의 봄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 작은 도시에서 노점상을 하던 26세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입니다. 자릿세 뇌물을 주지 못한 탓에 채소 행상을 위한 모든 물건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저울이라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공무원들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결국 그는 횡포에 항의하여 분신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후 튀니지 전국으로 반정부 시위가 빠르게 번졌고 이어 주변 국가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장기 독재정권을 순식간에 흔든 아랍의 봄 혁명이 시작됩니다. 튀니지를 비롯하여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바레인, 예멘 등 6국에서 대중의 시위가 강렬해지고, 독재 정권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을 대체할 정치체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42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리비아, 34년 독재가 끝이 난 예멘, 그리고 아들의 세습정치가 이어지던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하며 아랍은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집트는 다시 군부가 정치로 돌아왔고요. 사막화와 내전으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난민들이 리비아를 거쳐 지중해로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난민이 가득한 보트가 계속해서 유럽으로 향한 것입니다. 예멘과 시리아 난민들 역시 중동 전역으로, 터키로, 중부 유럽으로 흘러듭니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이주민이 밀려들자 유럽과 미국에서는 외국인을 혐오하며 극우파가 정치적으로 득세하는 효과까지 있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은 지난 3월 15일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
시리아는 하페즈 알 아사드(1970~2000) 과 아들 바사샤르 알 아사드(집권 2000~현재)에 의해 무려 50년이 넘게 독재 정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1년, 바사르가 시위대를 유혈진압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이미 국제전 양상이 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이 아닌 시리아 전쟁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적합해 보이는 이 사태는 정부군, 반정부군, 쿠르드족과 IS 무장세력까지 가세해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시리아 정부군, 러시아,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 지원세력과 반정부군, 미국,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지원세력이 대치하는 상황에 시리아에서 자치권을 확보하려는 쿠르드족,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내세운 IS 무장세력 등의 이해 타산적인 개입으로 시리아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국제사회는 시리아에 개입한 주요국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UN 안전보장이사회도 적극적인 압박 등의 입장은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독재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 역시 국민에 대한 존중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자국민을 세균으로 지칭하고, 국제법상으로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등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 협조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내전이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접어든 시리아에서 천이백만여 명의 난민과 난민 신청자 등이 생겨났습니다. 이는 전 세계 난민의 1/6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난민 refugee
난민은 박해,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 자연재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입니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의 제1조 난민의 정의 규정에 따르면,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를 난민이라고 합니다.
한국과 난민수용
제주도 난민사태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또 국내적으로도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었습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문제인 줄만 알았던 난민들은 어떻게 멀고 먼 동아시아의 한국, 그것도 제주도에 도착하게 되는 것일까요? 정치적 혼란과 끊임없는 내전으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예멘의 난민들은 일부가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건너갑니다. 기한이 만료된 예멘 난민들은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를 찾았고, 마침 제주도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2018년, 제주도에 무비자로 입국한 예멘인이 500여 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난민과 그들의 수용에 관해 한국 사회에서도 일련의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한국리서치의 ‘예멘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인 수용 찬성은 24%, 반대는 56%로 확인되었습니다.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무려 70만 명이 동의했습니다. 무슬림의 대규모 이주를 처음 접한 한국 사회에는 ‘예멘인 체류를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인터넷에는 무슬림에 대한 극단적인 묘사가 가득했습니다. ‘무슬림 난민은 다른 종교인한테 폭력을 행사한다’ ‘예멘 난민들은 테러리스트’ ‘무슬림은 여성을 성폭행한다’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난민법과 지위인정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난민 집계를 한 199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난민 신청 건수는 모두 7만646건으로 집계됩니다. 지난해 초부터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매월 수백 명씩 쌓인 결과다. 1994∼2012년 총 5천69명에 그쳤던 난민 신청자는 2013년 난민법 시행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2018년(1만6천173명)과 2019년(1만5천452명) 2년 연속 1만 명대를 보여줍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난민 인정을 신청한 이는 6천288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2019년 난민신청을 한 1만5천452명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건 79명뿐입니다. 이 중에서도 다른 나라에서 이미 난민 지위를 부여받은 재정착 난민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법무부 심사를 통해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42명입니다. 결과적으로 난민심사가 종료된 9,286건 중 0.4%만 난민 지위를 받게 된 것입니다.
난민법이 처음 시행된 2013년 당시 난민 인정률(재정착 난민 제외 수치)은 9.7%였습니다. 이후 2018년엔 3%, 2019년엔 0.4%의 수치를 보여줍니다.
관련 영화
가버나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라는 소년 자인의 대사로 영화가 시작합니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살고 있던 12살 소년이 사람을 찌르고 교도소에 갇혔습니다. 신분증도, 출생증명서도 없이 살고 있는 소년 자인. 소년 자인은 판사에게 엄마아빠가 아이를 그만 낳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갑자기 초경이 시작된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 부모는 사하르를 동네 슈퍼마켓 주인에게 팔리듯 시집보냅니다. 극도로 저항하던 자인은 결국 자인은 집을 뛰쳐나오고, 길거리에서 살게 됩니다. 영화 말미, 11살인 여동생이 슈퍼마켓 주인의 아이를 임신한 뒤 하혈을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병원에 가지만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하르는 죽고 맙니다. 자인은 이에 분노해 아사드를 찌르고 법정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법정에 선 자인의 대사입니다.
자인: 내 부모에게 항의하고 싶어요. 어른들이 내 말을 귀담아들어주길 원합니다. 자식을 양육할 능력이 없는 어른은 아기를 갖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는 뭘 기억할까요? 폭력, 모욕, 두들겨 맞기, 체인과 몽둥이와 벨트로 맞기? 내가 들은 가장 친절한 말이라곤 이 창녀의 자식아 저리 가,였습니다! 쓰레기들, 꺼져버려! 사는 게 개똥 같아요. 제 신발보다 더러워요.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 이게 뭐죠? 맨날 배고프고 맞고, 욕 먹고. 신은 우리가 짓밟히길 바래요.
Zain: I want to make a complaint against my parents. I’d want adults to listen to me. I want adults who can’t raise kids not to have any. What will I remember? Violence, insults or beatings, hit with chains, pipes, or a belt? The kindest words I heard were get out son of a whore! Bug off, piece of garbage! Life is a pile of shit. Not worth more than my shoe. I live in hell here. I burn like rotting meat. Life is a bitch. I thought we’d become good people, loved by all. But God doesn’t want that for us. He’d rather we be wash rags for others. The child you’re carrying will be like I am.
실제로 주인공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리아 난민 가정의 아이로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사하르 역의 하이타 아이잠은 베이루트 슬럼가에서 꽃을 팔다가 캐스팅되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는 영화 <가버나움>이 영화 이후 배우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려줍니다.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2018년 8월, 노르웨이에 정착한 자인은 당시 13살의 나이로 인생 처음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맺음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는 사실 아사드 집안의 차남으로, 첫째 형이 권력을 승계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젊은 시절은 평탄하고 차분했다고 합니다. 예의 바르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알려졌던 그는, 1992년 영국에서 안과의 수련을 받아 안과의사가 되려고 했다고 하죠. 1994년 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급히 귀국을 서두른 뒤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된 것입니다. 80년대에 우연히 그를 마주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1,000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 낸 나라의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는 앞으로 난민에 대해 어떤 여론이 자리 잡게 될까요? 아직 난민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정립되지 않은 시점에서 난민에 대한 무비판적인 혐오여론이 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난민 인정을 위해서는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필요한데, 이 기준 자체가 모호하여 여론을 인식한 결정이 내려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조건 없이 난민을 수용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난민이 어디에서 오며, 왜 오고, 그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일 수 있는 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레퍼런스
시리아 내전 10년…민간인 사망 38만명·난민 1천200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