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운동장(백석생활체육공원)-4편
나는 2001년 10월 13일에 아내를 처음 만났고
2002년 10월 13일에 결혼하였다.
모르는 사람이 서로에 대해 알아갈 때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하는데
내 걸음걸이를 아내가 분석한 것이 좋은 예이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혼자 걸을 때는 늦지 않은데
자신과 걸을 때 유독 느리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과 걸을 때도 느린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같이 생활한 지 25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아내는 빨리 걸으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아버지와 내가 걷는 것을 보고
유난히 느린 내 걸음걸이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보다 반족자 정도 뒤에서
경호하듯 보조하듯 알맞게 걸었고
나라는 사람은 그것에 특화되었다고
느린 발걸음이 이해되었다고 했다.
1986년 어느 날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 왼손과 왼발을 잘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특유의 정신력으로 재활을 위한 운동을 이어갔는데
그 곁을 지킬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인 나밖에는 없었다.
어머니는 돈을 벌어야 했고
누나들은 회사 또는 학교에서 늦게 돌아왔다.
집으로 가장 빨리 돌아오는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모시고
한강 또는 작은 산으로 운동을 갔다.
그 당시 나는 무척이나 긴장했었다.
불상사를 막기에는
나는 너무 연약했기 때문이었다.
방책이 필요했는데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고민했고 한 가지를 생각해 냈다.
"넘어지실 때 밑에 깔려서 충격을 완화시키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왼쪽 반족자 뒤에서 걸어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시간이 세월처럼 흘렀고
아버지는 더 노쇠해지고
난 점점 강건해졌다.
내 몸이 아버지와 비슷해질 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 밑으로 깔리기에는 내 몸이 너무 커버렸다고 느꼈을 때
고민하고 전략을 바꿨다.
그나마 힘이 남아있는 아버지의 오른쪽
반족자 뒤에서 따라가다가 넘어지시려고 하면
잡아끌어서 불상사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나의 방지대책은 어느 정도 적중하여
큰 사고 없이 아버지의 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운동하는 길에는
우리 둘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특히 산길을 갈 때는
느리다고 채근하는 사람도
장애를 힐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참기 위해서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아버지도 같은 이유에서 묵묵하게 걸으셨던 것 같았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포용할 여력이 없었다.
대신 마주오다 아버지를 보고 길을 비켜주신 분들께는 "감사합니다" 정중히 말씀드렸다.
이 습관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내가 산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어구가 "감사합니다"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때 누구도 아버지와 나를 막지 못했다.
나는 좋아하는 것에는 목숨을 걸 수 있어도
싫어하는 것에는 1도 소모하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걸으며 생긴 것 같다.
아버지의 운동장(백석생활체육공원)에는
트랙이 7개가 있다.
1 레인에서 한 바퀴를 돌면
정확하게 400m가 나온다.
아마 일반적인 상황에서 보통의 러너라면
1번 레인에서 운동함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4번 레인에서 달린다.
내가 운동하는 시간에, 안쪽 운동장에서는,
어르신들이 그라운드골프를 치시고
몇몇 분은 트랙에서 걸으신다.
나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뛰기에
어르신들이 무심코 걷다 보면
충돌하거나 놀라실 수 있다.
이에 어르신들의 이동을 인식하면
이른 시점부터 멀리 피해 가야 된다고 판단했는데
좌우측 모든 방향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4번 레인이기에 거기에서 뛴다.
한 20일 전쯤이었다.
장애가 있으신 분들 한 무리가 트랙에 오셨다.
그다음 날도 오셔서 트랙을 걸으셨다.
어르신들보다 예측이 어려웠지만
운동하는데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트랙으로 들어오지 않고
체육생활공원 주변을 걷거나 뛰셨다.
같이 쓸 수 있는 공간인데 아쉬웠다.
누군가 또는 어느 집단의 조치가 아니었기를...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좋은 분들과 많은 길을 걸어온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을 다시 걸으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만약에 아버지랑 걸으라고 하면
더 잘해볼 의향이 있다.
아니 무조건이다.
2025년 봄이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는 날!
작은 트랙을 뛰며 그를 생각하니
반족자 뒤에서 느려질 것 같다.
그럼 또 혼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