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가 아니라서... 살았다. 그리고 뛰었다.

2025 공주백제 마라톤에서 느낀 것!

by 난이

2025년 9월 28일 공주백제 마라톤이 개체 되었고

나는 풀코스를 뛰면서 고통이라는 동반자를 만났다.

공주백제마라톤 출발전 마라톤114(네이버 카페) 단체사진

보통 마라톤 대회 당일 컨디션은 좋다.

하지만 2025 공주백제마라톤 때

그러지 않았다.


왼발의 바닥은 살짝 찢어져있었고

오른 발목은 아킬레스건염이 있었으며

오른쪽 햄스트링이 탱탱하게 굳어있었다.

출발 전부터 발을 디딜 때마다 아팠다.


대회에는 참가하고 싶었으나

완주를 꿈꾸지는 않았다.


42.195km를 원하지도

하프를 갈망하지도

10km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제조해 준 약을 먹고 출발선에 섰다.

의지로 고통을 이기려 하지 않겠노라고

나의 몸을 완주의 대가로 지불하지 않겠노라고

DNF(Do Not Finish) 두려움을 이기겠노라고

결심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출발신호가 났고

다른 러너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비가 내리는데 모두 활기찼고

일부 러너들은 파이팅을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첫발부터 아픔을 느꼈고

내면에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첫걸음의 고통이 1이라면

열 걸음 뒤는 2

그리고 백 걸음 뒤는 3

한참 뒤 천 걸음 후에는 5

"ㅎㅎㅎㅎ" 웃음이 날 만큼 아팠다.

나도 뛰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파서 웃었고

이 상황이 재미나서 또 웃었다.


하지만 천 걸음을 정점으로

고통은 4로 3으로 2로 줄어들었고

약 2km를 뛰니 불편한 0.5만 남았다.


아마도 몸에서 열이 나고 호르몬이 나와서

아픔을 다소 못 느끼게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고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도 안 되는 0.5의 그것은 내 몸에서 꽉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맨날 날 괴롭히는

외로움 0.2와 우울감이 0.2 그리고 두려움 0.1

도합 0.5와 꼭 닮은 고통 0.5였다.

못 참는 괴로움은 아니었지만 계속 이어지기에

이겨내기 힘든 고통 0.5였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는데

그 정점인 대회에서

고통 0.5를 만나니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공주의 30km간판을 못 찍어서 인터넷의 다른 이미지를

10km를 뛰었을 때

이미 심신은 녹초가 되었다.

지루한 고통 0.5는

발을 먹고, 심장을 먹고, 의식까지 먹어가고 있었다.

그때 아주 오래된 30km 지점운 가리키는

마라톤 간판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곳이 진짜 30km 지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10km 산 인생을

30km 살아간 삶과 바꾸자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계속되는 고통 0.5 때문에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그것을 떨구고 싶어서...)

하지만 그나마 날 기쁘게 한 것들과도

나와 같이 해준 여러 삶과도

이별해야 할 것 같아서

바꾸기 싫어졌다.


그때쯤

누군가의 파이팅 소리도 들렸고

어떤 이의 괜찮냐는 걱정도 받았으며

이 달리기에도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고통 0.5를 이어갈 이유가 생겼다.


20km 지점을 지날 때쯤 하프 주자들과 갈라섰다.

26km 지점을 통과할 때 32km 주자들과 헤어졌다.


그때 돼서는 고통 0.5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미 그것보다 더 큰 괴로움이 날 덮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다리로 뛰는데 왼쪽 어깨가 너무 아팠고

배는 가느다란 것으로 쑤셔지는 고통도 느꼈다.


거리는 늘어났고

고통은 커졌으며

완주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일상스런 고통 0.5가 가져다준 포기는

더 큰 괴로움이 의욕으로 바꾸어갔다.


비는

추적거리며 내리기도

잠시 틈을 봐서 멈추기도

뭉탱이로 퍼붓기도 했다.


그것은

더위와 체온을 식히는 고마움이었고

한숨을 돌리는 여유였으며

치열한 즐거움이었다.

한마디로 현상이라기보다 동반자였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이니

마음이 발을 동동거리며 불안해하지 않았다.


비만이 같이한 것은 아니었다.

쓰러질 듯 달려가는 러너들도

몇 시간째 비를 맞는 대회관계자들도

계속 소리치며 응원하는 시민들도

모두 동반자였다.


마지막 코너를 돌아

피니쉬라인까지가 너무 힘들어서

속도를 올리지 못했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뜀이 걸음으로 바뀔 때

좋았으나 허탈했고

웃음이 났으나 코끝이 찡했다.

삶에서 오롯이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좋은 일만 벌어지는 그런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다.

고통 0.5는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고통 0.5를 받고 있는 누군가와 같이 살아갔다.

같이하면 항상 0.5-0.5=0은 아니었다.

때로는 0.5+0.5=1이고

어느 때는 더 큰 아픔도 생겼다.

하지만 바뀌고 바뀌어서

숨을 쉴 수 있었고 웃을 수도 있었으며

눈물이라는 사치도 부릴 수 있었다.


힘든 마라톤 왜 하냐고?

일상에 있는 고통 0.5에서 벗어나려고...


너랑 왜 같이 있냐고?

나의 0.5도 너의 0.5도 바꾸고 싶어서...


그렇게 공주백제마라톤에서

감사한 고통을 만났다.

keyword
구독자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