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ㅈㅊ Nov 07. 2020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물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 평문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꿋꿋함과 순수함 조명하는 드라마

짝사랑도 사랑이란 명제 제시해

사랑 본질 묻는 심층 서사구조

결과 아닌 과정 내내 주목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남다른 드라마다. ‘쿨함’이 주류를 점하다못해 ‘쿨병’까지 다다른 시대에 뜨뜻한 진심과 순애보의 가치를 조명한다. 소재는 ‘짝사랑’이다. 류보리 작가는 “짝사랑의 시간과 감정이 모두 헛되고 쓸모없는 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드라마는 짝사랑도 가치가 있다며 치열하게 지지한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명제를 내놓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박은빈)가 박준영(김민재)에게 묻는다. 브람스는 극에서도 설명하듯 짝사랑의 표상이다. 그는 절친한 음악 동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사랑했던 작곡가다. 송아의 질문을 달리 말하면, 짝사랑도 사랑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송아와 준영은 극 초반 다른 입장을 보인다. 송아는 그럼에도 좋아한다고 밝히고 준영은 그렇기 때문에 싫어한다고 말한다. 명제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것도 사랑인지’와 ‘잘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도 사랑인지’다. 송아는 전자의 물음과, 준영은 후자의 물음과 만난다.


드라마는 최선의 답을 얻었는지보다 끈기 있게 물음을 좇았다는 데 의미를 둔다. 성과나 결실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됐던 ‘짝사랑’을 곡진하게 살핀다. 사랑에 가닿기 위해 애쓴 ‘꾸준함’과 이로 인해 얻은 ‘성장’에 주목한다. 표면으론 사람 간의 엇갈린 사랑이지만, 심층적으론 꿈과 현실의 괴리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좋아해서 꿈꿨지만 잘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준영은 자유로운 연주를 꿈꾸지만 사회의 시선에 가로막힌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격차는 둘에게 불안을 안긴다. 이 드라마는 불안을 피하지 않고 넓게 펼친다. 배율을 조절해 흔들림에서 의미를 찾는다.


극 중반에는 성과 없는 짝사랑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준영에게 서운해하는 송아의 모습은 사실 꿈에 대한 감정이다. 그는 가족과 친구에게서 꿈을 향한 행보를 지지받지 못했다. 유진의 유일한 지지에 감명받은 송아가 그를 좋아하는 데까지 이를 정도로, 송아는 음악을 짝사랑했다.     


회의감의 종착지는 자기 자신이다. 송아는 (바이올린 연주에) 재능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지막하게 독백한다. “음악이 주저하는 것 같다.” 송아는 표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송아가 꿈을 이룬 준영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나란히 서지 못할 수도…”, “자신이 없어진다.” 짝사랑에 자격지심이 더해진다. 좋아함과 잘함이 거리를 벌릴수록 마음이 흔들린다. 선의로는 마음을 유지할 수 없어 성의로 나아간다. 버틴다는 절실함이 애틋함에 더해진다.


준영의 입장에선 ‘적성을 인정받는 연주’가 탐탁지 않다. 잘하긴 하는데 좋아하지 않는다. 첫사랑 진경과 이사장으로 표상되는 돈에 갇혀 인생을 좁게 살아왔다. 이 둘을 극복하고 마지막으로는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콩쿠르에서 인정받는 음악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의 갈림길에 선다.     


두 인물은 머뭇거림과 끄덕임으로 서로를 보듬는다. 준영은 식당 앞에서 30초가량 송아의 발 저림이 그치길 기다린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하게 가만히 기다린다. 피아노 연주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치기 싫다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까지 연주한다. 물론 서로의 마음이 여러 장애물에 막혀 곧게 이어지진 못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마음을 내려놓진 않는다. “기다려줄 수 있어요?” 준영이 말하자 “기다릴게요.” 송아는 답한다. 나중엔 송아가 묻는다. “기다려줄래요?” 기다리던 준영은 답한다. “사랑해요.” 불안함과 흔들림이 서로 기댔고, 둘은 결국 닿아 성장이 됐다.     


결과보단 과정이 사랑이라고 역설하는 드라마다. "사랑해요"란 준영의 말이 힘을 갖는 건 과정에 있다. 그의 말은 "(브람스를) 싫어해요"에서 시작해 "(마음을 담아 연주하는 송아 씨를) 좋아해요"를 거쳐 "(브람스와 송아 씨를) 사랑해요"로 맺는다.


소품으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 그림이 등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림이 송아와 준영 사이에, 그것도 같은 비중으로 카메라에 노출된다. 그림에는 물에 뛰어든 사람에 의해 생겨난 큰 물보라만 남아 있다. 다이빙에서 물보라는 주목받지 못하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호크니는 의미가 있다며 과정에 주목했다. 호크니는 2초의 순간인 물보라를 그림으로 붙잡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물보라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다. 당신이 물보라를 촬영할 때, 그 순간을 동결시키면 (물보라는) 무언가 다른 게 된다. 나는 이런 관점을 즐기기로 했다. 매우, 매우 느린 방법으로 그렸다.”고 말한 바 있다.


드라마 기획의도에서도 드러나듯, 이 드라마는 뜨뜻하고도 꾸준한 짝사랑을 조명하고 지지한다. '살다보면 마음속에 하나둘씩 방이 생겨난다. 방 하나에 추억과 방 하나에 사랑과 방 하나에 미련과 방 하나에 눈물이 있다...(후략)' 성과 없는 짝사랑은 무의미하다는 통념을 거부한다. 떨리는 찰나의 의미를 포착하고 대사와 지문으로 드러낸다. 인물 간 섬세한 감정선과 서사를 반영한 배경음악으로 깊이를 더했다. 43년간 클라라 곁을 지킨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우리는 웃고 울고 또 웃는다.


https://brunch.co.kr/@steelw2fo/20

작가의 이전글 안은영이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