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어느 날,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공허'를 느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대학생 행정인턴을 지원했지만 수 십대 일의 경쟁률에서 떨어졌고, 뒤늦게 찾아본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이미 자리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했다. 바깥에 보이던 논밭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시멘트 건물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집이 가까워지는 듯했다.
'에라, 모르겠다. 더운데 바깥에 나갈 생각말고 집에서 책이나 읽자.' 라고 단념했다. 돈이 없어서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지만,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하니 나름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는 역시 페이스북이 제격이었다. 새로고침을 해도 타임라인엔 똑같은 게시물만 등장했다. 나처럼 특별한 일을 만날 처지가 못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더워서 페이스북에 무언가 올릴 힘도 없는건가. 이런 생각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해주었다.
페이스북을 닫기 전에 새로운 게시물 한 개를 기대하며 새로고침을 다시 해보았다. 못 보던 게시물이 올라왔다.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시민사회 청년인턴십 추가 모집공고"
인턴을 뽑는다고 했다. 그것도 '시민사회'.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 사회학을 공부하는 내게 좋은 기회였다. 접수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집에 오자마자 자기소개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고3 때 썼던 자기소개서도 다시 열어보고, 사회에 대해 분노하며 썼던 내 페이스북 글도 찾아가면서 나름 빈 칸 채울 문장들을 모았다. 워낙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자기소개서를 채우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만, 글빨이 없어서 문장을 다듬는데 시간이 오래걸렸고, 다듬을 때마다 마음도 더 불안해졌다. 며칠 새벽에 잠들면서 겨우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한동안 문자가 오지 않아서 떨어졌겠거니 생각하고 책을 잡았다. 그런데 며칠 뒤 문자가 왔다.
"시민사회 청년인턴 면접과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니 참석 바랍니다. 7월 17일 (화) 오후 2시 장소...."
글은 자신 없어도 말은 자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드디어 시민사회 인턴으로 방학을 보내는구나.', '독서보다 더 보람있게 보낼 수 있겠다' 이미 합격한 듯 어느 단체로 갈지 생각하고 있었다.
폭염에 몸부림치는 오후에 면접을 보았다. 대기실에 있는 동안 내가 활동하고 싶은 '도시재생'과 관련한 기사들을 찾아보면서 뒤늦게 면접 답변을 준비했다. 내 차례가 되어서 면접장에 들어갔고, 나는 세 면접관 앞에 앉았다. 내 앞에 준비된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덜덜 떨었다. 면접장을 나와서 내 답변을 곱씹어보려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답변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시민사회 청년인턴>에 함께 할 수 있어 축하와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다음 날 온 문자였다. 그렇게 나는 시민사회 청년인턴이 되었고, 원하는 도시재생 분야로 가지는 못했지만 그와 유사한,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인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집 걱정 없는 세상>에 인턴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임무(?)는 주거문제 활동가나 주거문제에 당면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인터뷰 결과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개인사정 때문에 9월 초까지만 활동할 수 밖에 상황이라 아쉽지만, 가능한 많은 주거활동가들을 만날 것이다. 서울, 경기 뿐만 아니라 더 먼 곳에도 직접 만나 생생하게 글에 담을 예정이다. 이번 기회에 주거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도 하고, 삶을 글에 오롯이 잘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