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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씨 Jul 15. 2020

포용사회

“불평등사회에서 포용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불평등사회의 반대말은 평등사회이다. 불평등 사회에서 ‘평등사회’로가 자연스럽다. 그런데 포용사회라고 표현했다. 포용, 누가 누구를 포용하는 걸까? 그 말은 위아래가 있는 있다는 것, 크기가 같지 않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포용’의 개념을 살펴보자

“‘포용’이라는 개념은 ‘이질성과 다양성에 대한 관용-수용-변용으로 더 나은 상태로의 진보’를 의미한다(은재호, 2019, p. 21; 곽윤경·주유선·우선희, 2019 ).

포용은 ‘관용’에서 출발한다. 일찍이 웬디 브라운은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을 통해 관용이 갖고 있는 한계와 이중성을 지적한 바 있다.


“지은이는 관용은 최근 적극적인 정치행위를 사라지게 한 원흉이다. 국가 혹은 사회는 동성애자, 무슬림, 이주민 등과 같은 여러 갈등 문제들은 관용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평등을 향한 투쟁 대신 ‘평화로운 공동체’ 유지를 위한 소극적인 교양 혹은 ‘참아내기’만 만연하다. 그뿐만 아니라, 관용은 국제사회에서 어느새 예전 문명의 자리를 대신한다(윤은숙, 2010).”


이쯤 되면 우리가 쓰는 관용과 포용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포용은 베푸는 쪽과 베풂을 받는 쪽이 있어야 가능한 행위라고 한다면(아량도 넓게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계급(지위와 권한의 의미적인 차원에서)적인 단어이고 행위이며 정신이라는 의미가 강하기도 하다. 해서 포용은 가름과 나눔을 통한 서로가 주고받기의 거리와 괴리를 느끼게 하는 차별의 단어라는 생각이다(당현증, 2018)”


“서구의 학문에서 포용적 복지(inclusive welfare)라는 용어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에 비하여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과문하여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추측건대, 포용의 의미에 포용의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가부장적인 개념이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김미곤, 2019)”


우리는 모두 평등하지 않은 존재임을, 그래서 정부가 시혜를 베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게 바로 ‘포용국가’ 아닐까. 이제 우리가 마주할 사회가 어떠할지 그려지지 않는가.





reference

김미곤 (2019). 포용적 복지의 개념과 철학적 함의. 보건복지포럼


곽윤경·주유선·우선희(2019). 이민자의 사회적 포용 실태 및 대응 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보고서.

당현증(2018). 포용의 의미를 생각해보다.
URL: http://www.kong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944

윤은숙 (2010). 미국식 ‘관용정치’의 이중성.
URL: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7085.html


당현증(2018). 포용의 의미를 생각해보다.
URL: http://www.kong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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