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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Mar 14. 2024

흉몽과 길몽. 꿈을 꾸는 이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매일 꿈을 꾼다. 꿈은 생각, 무의식의 발현. 이에 매일 밤 생각을 비우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무의식은 어쩌질 못하는 모양이다. 한 번씩 심해질 때가 있다. 요즘이 그러하다. 개운하게 눈 뜨지 못한다.



- 1 -


주기적으로 꾸는 악몽이 있다. 몇 년째 이어진다. 같은 악몽을 돌아가며 반복적으로 꾼다.


새벽쯤이다. 창문 밖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감돈다. 나는 형체 모를 검은 것에게 쫓기고 있다. 도망치고 숨고 또 도망친다. 어떨 땐 잡히지 않고 어떨 땐 잡힐뻔한다. 좁은 복도를 지나 작은 방으로 도망친다. 침대가 있다. 침대 위 이불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린다. 숨을 몰아쉰다. 갑자기 고요해진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불을 살짝 내린다. 그때 내 눈앞에 다가온 검은 것이 얼굴에 입김을 후! 하고 분다. 놀라 잠에서 깬다. 식은땀이 난다. 그건 분명 웃고 있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다. 계단 공간이 제법 넓어 그 안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니, 모여 있는 게 아니라 겁에 질려 잡혀있다. 한 남자의 온몸이 피투성이다. 본인의 피가 아니다. 왜소한 체격의 그는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람이 죽어 나간다. 사방에 피가 흩뿌려진다.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한쪽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듯하더니 길목에 앉은 여자를 번쩍 안아 든다. 그러더니 계단 밑으로 떨어뜨린다. 쿵!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도 곧 죽겠구나. 그가 내게 다가온다. 내 얼굴 바로 앞으로 그의 얼굴이 가득 찬다. 날 보고 웃는다. 놀라 잠에서 깬다. 숨 쉬는 게 힘들다.


낡은 방이다. 나는 그곳에 혼자 서 있다. 구석 구석 벗겨진 벽지가 눈에 보인다. 천장 쪽 벗겨진 벽지 사이로 검은 것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자세히 보니 벌레다. 벌레들은 나를 구석으로 몰 듯 바닥에 떨어지고 어떤 벌레들은 천장에 구멍이 뚫린 듯 검게 몰려 있다. 찝찝함에 벌레를 피해 움직이고 몸에 붙은 걸 털어내다 이내 받아들인다. 그 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잠에서 깬다. 방 한쪽에 걸린 검은 코트를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꿈에서 깬 후에도 내 눈은 악몽을 찾는다.


공장과 같은 커다란 공간이다. 붉은 천막이 쳐져 있다. 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있다. 다들 무언가를 바라본다. 해 질 녘이다. 노을이 핏빛으로 물든다. 갑자기 악! 하는 비명이 들린다. 사람이 터진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부풀어 터지고 나는 그 모든 피를 뒤집어쓴다. 내게 피가 쏟아진다.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는다. 눈을 뜬다. 꿈이다.



- 2 -


집에 불이 난다. 시작은 커튼 하단. 붉은 조명처럼  불길이 커튼을 타고 천장으로 솟는다. 옆에 있는 소화기를 들어 불을 끈다. 불길이 잡힌다. 그러나 다시 옆으로 옮겨붙는다. 이번엔 물을 이용해 불을 끈다. 또다시 불길이 옮겨붙는다. 불을 끄려 노력하던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불을 바라본다. 뜨겁지 않다. 따뜻함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씻고 싶다.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전후 사정, 맥락없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머리를 감는다. 감고 또 감는다. 장면이 전환된다. 또 머리를 감는다. 개운하다. 차가운 물이 나를 적시고 그 이상의 개운함을 느끼면 잠에서 깬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좋아한다. 밑줄을 쳐가며 열심히도 읽었다. 독서라는 행위만으로 그의 이해를 완전히 내 것으로 흡수한 건 아니지만, 꿈에 숨은 의미를 생각할 순 있다.


내가 꿈을 유달리 심하게 꿀 때는 ‘변화’의 시기가 왔을 때다. 집에 일이 있을 때 그랬고 8년을 함께 지낸 고양이를 사고로 잃었을 때도 그랬다. 다만 사건이 터졌을 때가 아닌, 그 사건에서 벗어날 때쯤 꿈에 시달렸다. 괜찮다 억눌렀던 마음이 악몽으로 드러나다가, 얼마 뒤엔 씻거나 태우거나 없애는 꿈으로 변화가 시작됨을 알렸다. 무언가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나는 그때마다 꿈에서 시원함을 느꼈다.


이 패턴으로 말미암아 생각했을 때, 최근 나는 괜찮지 않았다. 다행히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면적 스트레스와 불안은 어느 정도 해소됐을지 몰라도 무의식은 어쩔 수 없었다. 회사 문제, 사랑, 질투, 욕심. 온갖 감정적 혼란이 악몽으로 표현됐다. 악몽을 꾸고 눈을 뜨면 어김없이 그에게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현실도 악몽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씻어내고 태우고 없애는 꿈을 꾸고 있다는 건 무의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바로 어제 씻는 꿈을 꿨다. 눈 뜨자마자 생각했다. 곧 정리가 되겠구나. 내 마음의 상태나 크기와는 별개로, 현실 가능성이 있는 범주에서 뭐든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수 있겠구나. 드디어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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