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영원의 군주 리뷰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라는 대한민국의 총리 ‘구서령’의 대사는 십 년 전이었다면 아무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드라마라고 연일 혹평을 때려 맞은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가 십 년 전에 나왔더라면 「시크릿 가든」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관의 스케일이 여태껏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블록버스터 급이고, 대사는 쫀쫀하고, 결말까지 찬란하고 눈부셨다. 다소 불친절했던 세계관 설명 때문인지 초반에 자진 하차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서 댓글 반응은 극과 극의 분위기로 갈리기도 했는데 참고 본 사람들이 승리한 드라마였다. 뻔한 클리셰로 치부된 장면들이나 로맨스 코미디물의 공식이 되어버린 남주와 여주의 티키타카가 진부하다는 댓글을 볼 때는 공감하되 동조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 ‘로코의 공식’을 만들어 낸 게 바로 김은숙 작가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세운 세계 신기록에 도전하는 운동선수들처럼 과거의 나를 뛰어넘어야 하는 레이스가 얼마나 고독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현빈의 트레이닝복을 모두 기억하는 「시크릿 가든」 이후 딱 십 년만에 나온 드라마다. 십 년 동안 이 나라는 「더 킹」의 세계관인 평행 우주 속의 다른 세계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차이만큼이나 많이 달라졌다. 언제부터 예뻤는지 대답 없는 길라임 씨는 누군가의 가명이었고, 그게 최선이고 확실하냐는 기업의 압박 면접에 어떤 면접자는 땀을 흘리다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단다. 2002 월드컵이 엊그제 같기만 한 ‘라떼’들에게 2021년, 다가올 2022년의 속도는 손흥민보다 빨라서 도통 잡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빠른지 맥시무스라는 백마를 탄 왕자는 따라잡을 수 없어서 모든 세계관의 끝판왕이라는 양자역학과 평행 우주라는 카드를 쥐고도 총 앞에서 칼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휴대폰을 보면 어느 시기에 방영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처럼 드라마 속 결혼을 대하는 가치관에도 시대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2005년에 방영된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콤플렉스 덩어리인 노처녀 ‘김삼순’의 극중 나이는 고작 서른이었다. 2021년에는 서른을 노처녀, 노총각으로 분류할 수도 없거니와 노처녀, 노총각이란 말 자체도 롱다리, 숏다리란 말처럼 사장된 지 오래다. 이대로 몇 년이 지난다면 그땐 또 어떤 새로운 가치관을 맞이하게 될까. 만약, 2025년쯤에 오 년, 십 년을 만기로 한 계약 결혼이 보편화된다면? 지금이야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딱 오 년 전만 하더라도 동거 중인 연예인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와 집을 공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드라마의 세계관처럼 평행 우주 속 또 다른 내가 있다면,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결혼을 안 했으면서도 한 상태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육아를 시작했을 수도, 혹은 벌써 한 번 다녀온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처럼 이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든 고군분투하고 있을 내 모습이 궁금해진다. 아니지. 반대로 그쪽 세계의 내가 아직 혼자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을 어디선가 지켜보며 짠하다고 생각하거나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어떤 예능프로그램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하던 과학자가 멘붕에 빠진 패널들에게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위로를 건낸다. 영화도 드라마도 심지어 아이돌의 세계관마저 양자역학이 배경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게 얼마나 큰 위로였던지. 듣고 보니 양자역학이란 게 결혼과 참 닮은 것 같다. 결혼을 했던 안 했던 사실 이 우주 속에서 우리는 혼자인적도 함께인 적도 없는 것이다.
** 독립출판으로 발행 이후 정식 출간된 에세이 <저 결혼을 어떻게 말리지?>의 일부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올려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