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주말 선곡 코너를 녹음할 때였다. 노래를 선곡해 오고 소개해 주는 게스트는 하림. 본인이 만들었거나 참여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래들을 골라 왔는데 그중에 한 곡이 리사의 「어떻게 그대는 왜」라는 곡이었다. 아직 노래를 듣지도 않았는데 제목 하나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후벼 팔 수 있는 뮤지션이라니 하림 당신은 대체…. JYP가 진행했던 ‘박진영의 파티피플’이란 프로그램에서 박진영이 하림을 붙잡고 제발! 노래 좀 내달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는데…. 그 순간 그 심정이 너무나 이해됐다. (‘가요광장’이란 프로그램을 할 때는 고정 게스트로 하림 씨와 인연을 이어갔는데 고정 게스트가 자꾸 아프리카로 ‘출국….’ 가수는 노래 따라 간다더니….) 다시 노래로 돌아와서. 매주 진행하는 코너에서 소개한 수십 곡의 노래 중에 유독 이 노래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건 아마 그 당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차였기 때문일 거다. 헤밍웨이가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여섯 단어로 사람을 울렸다면 하림은 「어떻게 그대는 왜」 세 단어면 충분했다. 이렇게 제목이나 가사에 자신의 사연이나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노래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조금 특별해지곤 한다.
어릴 때 유독 힙합이 좋았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창 사춘기가 시작 되고 이유도 없이 세상이 미워질 무렵.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나 하라고 해!’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내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한 가사들에 얼마나 마음에 끌렸겠는가. 구레나룻 좀 길렀다고 교무실로 끌려가 한 시간 넘게 무릎을 꿇어야 했던 친구를 멀리서 바라보며 “넌 겁 없던 녀석이었어 매우 위험했던 모습…. 하….”라며 지누션의 「가솔린」을 듣고 있자면 창문 넘어 사식으로 소시지 빵이라도 넣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이십 대 후반이 되면서는 힙합을 잘 안 듣게 됐는데 래퍼들의 가사가 더 이상 와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꼰대력을 장착하고 전역하고부터는 미필들의 ‘스웨그’가 가소로워 보였다. ‘아무리 센 척을 하고 돈이 많다고 뽐내는 너도 훈련소에서 이름표에 바느질 삐뚤게 했다고 혼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봐야 세상을 알 거다….’라는 생각이 들고부터 힙합을 힙합으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래퍼들도 함께 나이를 먹었고, 그들도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었다.
둘이서 세상 다 씹어 먹을 것 같던 다이나믹듀오가 인터뷰에서 후배들에게 제발 저축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하는 2019년, 혼자 남은 집에서 비빔면을 왼손 오른손 와리가리 비비던 YDG는 이미 몇 년 전에 탄띠 말고 아기 띠를 메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내가 도레미 칠 때 체르니 졸업했을 「쇼미더머니」 아저씨 김진표는 「스물다섯」을 지나 「서른일곱」이란 노래에서 모두 잠든 밤,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몰래 전자 담배를 피우는 미래의 나를 떠올려 보게 했다. 더 젊은 래퍼들도 각자의 삶 그대로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림의 「어떻게 그대는 왜」를 들었을 때처럼 머리를 띵 하고 치는 제목의 노래를 2020년에 1985년생 래퍼가 발표했다. 이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십 대 이십 대 시절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웠던 힙합을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들을 이유를 만들어줘서. 마냥 스무 살 같고 힙한 줄 알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점점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기 시작한 우리 삼십 대도 노래방에서 “더블 D와 함께하는 특별한 밤~”이라고 외치면서 「출첵」을 부를 때 정도는 혀가 꼬이지 않으니까.
제목만으로 머리가 띵! 했다는 그 노래는 앨범 커버부터 아주 인상적이다.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장난감 블록이 발바닥을 파고들 것만 같은 어질러진 거실. 소파에 앉아 ‘넋이라도 있고 없고’의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한 남자. 래퍼 JJK의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 독립출판으로 발행 이후 정식 출간된 에세이 <저 결혼을 어떻게 말리지?>의 일부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올려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