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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은솔 Nov 02. 2017

결혼하고 연애하기

결혼하면 좋아요?

결혼하면 좋아요?


2014년 스물아홉의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결혼한 이후 미혼 후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묻는 사람의 현재 상황, 그들이 꿈꿔왔던 로망, 또한 그동안 겪어왔던 인생을 통틀어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 지금의 이 질퍽한 현실을 결혼이 구원해 줄까요?

# 난 지금의 생활이 너무 행복한데, 결혼이 다 망치진 않을까요?

# 고부갈등, 장서갈등 때문에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 결혼하면 돈도 더 많이 벌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나요?


대부분의 기혼자들처럼, 저도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미혼 여성으로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20대에 세운 "좋은 인생"의 기준에 비추었을 때, 모든 것이 좋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후배들과의 긴 대화의 끝은 항상 결혼 생활의 추천으로 마무리짓습니다.

저는 왜 무시무시한 결혼 생활을 추천할까요?


결혼 이후의 생활에서는 그 이전에 해왔던 남녀관계와는 이른바 급(이라 쓰고 "끕"이라 읽는)이 다른 연애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는 주례사 없는 결혼식을 진행했지만, 보통 결혼식 단골 주례사로 등장하는 말이 바로 서로 간의 공경과 배려입니다.

남의 예식 때마다 들어야 했던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던 저 말이, 결혼 생활 3년을 훌쩍 넘긴 이 시점 결혼하고 새롭게 연애하는 부부 관계에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는지 놀랍도록 깨닫습니다.


# 서로의 미숙한 가치관이 충돌할 때.

# 나의 더러운 성질이 당신의 마음을 할퀴고 싶을 때.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녀 시각 차이로 분노가 차오를 때.


결혼 전에 이러한 문제 상황이 닥치면 이별을 각오하고 내 말이 맞다고 우기며 싸워내거나, 혹은 상대방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냥 외면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라는 카테고리로 묶이는 순간, 갑자기 이 문제 상황에 뭔가 다르게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때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부 공동체이기 때문에 너와 나는 같은 생각, 같은 결론을 내야 한다는 착오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 입장을 배우자가 온전하게 이해해주길 바라고, 내가 생각한 문제 해결 방식을 똑같이 함께 해주길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여기서 극렬한 부부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세상 어떤 부부에게 물어봐도 매번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 해결 방식을 정답이라고 믿는 배우자는 없습니다. (혹시 그런 관계가 있다면, 정말 건강한 관계인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나를 20년 넘게 키워주신 부모님도 자식의 생각을 완벽히 이해하시지도, 또 자식의 문제 해결 방식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결국 부부는 같은 문제에 다르게 반응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쉽게 이별하거나 외면했던 과거와는 달리 그 차이를 끌어안고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서로 간의 공경과 배려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미혼 시절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마음에 품고 연인 관계를 맺었던 연애와는 달리,

배우자의 삶과 인격을 존중하고 그 존재 자체를 서로 귀중하게 또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바로 그때 질적으로 완전히 업그레이드된 연애가 새롭게 펼쳐집니다.


# 서로 싸울 때;

    결혼 전 연애 때는 “아니 그게 아니고 내 말은,” 상대의 말을 자르고 내 말을 먼저 하기 급급하지만,

    결혼 후 연애의 과정에서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배우자의 말을 듣고 나의 말을 할 줄 알게 됩니다.

# 함께 식사를 할 때 ;

    결혼 전 연애 때는 오늘 무엇을 먹방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만,

    결혼 후 연애에서는 같이 무엇을 새롭게 해먹을 수 있을지를 이야기합니다.

# 서로가 야근을 할 때 ;

    결혼 전 연애 때는 "그래서 오늘 못 만나" 서운하지만,

    결혼 후 연애에서는 "그래서 오늘 내가 어떻게 위로해줄까"를 생각해봅니다.


이렇듯 생각의 무게중심이 나에서 우리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소멸하고 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라는 단어 안에서 오히려 배우자의 존중과 배려를 먹고 더욱 무럭무럭 자라는 "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미혼자의 로망처럼 결혼 생활이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부부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관계를 쌓아가느냐에 따라,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히 급이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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