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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은솔 Nov 12. 2017

급식체 부부

오늘도 야근? 에바 참치 꽁치 태평양 건너는 각?

야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편도 저도 깨어있는 상태의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지 며칠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오전 8시 이 전에 사무실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 저는 자정 전에 신데렐라처럼 잠이 들고, 스케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남편은 12시가 넘어 퇴근을 합니다.


# "여보, 오늘도 야근각? 에바 참치 꽁치 멸치 태평양 건너 동해 수확량 소박 중박 대박 나는 각?"

# "소박 중박 대박 옹박 ㅅㅌㅊ"

# "ㅅㅌㅊ 는 뭐야?"

# "상 타치 ㅋㅋ '높은 수준이다.'라는 부분대장 분대장 중대장 대대장 육대장"

# "ㅋㅋㅋ 오지고 지릿고 렛잇고"


어느 우울했던 주말 저녁(다음 날 월요일 실화냐) SNL Korea의 <설혁수의 급식체 특강>을 시청한 후 우리 부부는 급식체에 눈을 떴습니다. 처음에는 한글 파괴라며 코웃음을 쳤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 번 접하고 나니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신조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급식체를 써서 남편과 메신저를 나누다 보면 대화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분명 오늘 저녁 스케줄을 나누려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을 주욱 나열하다 보면 갑자기 주제와는 벗어난 대화를 나누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론 집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중에는 당최 얼굴을 보기 힘든 서울 사는 부부에게 온라인 메신저는 원활한 소통의 창구이며, 최근 급식체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언어의 사용은 비대면 유희 수단입니다.


사회생활에 치이고, 경쟁에 지쳐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마다 항상 징징거리고, 시퍼렇게 날이 선 감정을 무기로 휘두르다 보면 부부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가끔은 이른바 '병맛 코드'를 가지고 힘든 상황을 재치 있게 넘기다 보면, 현실이 자조 섞인 웃음으로 승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매 번 이렇게만 문제를 대응하면 안 되겠지만요.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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