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주식 거래, 블록체인으로 믿을 수 있을까?
http://www.etnews.com/20181005000156
금융투자업계가 블록체인으로 비상장주권 거래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블록체인이 갖고 있는 "신뢰"의 메커니즘을 어떤 분야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국내에서 지금까지는 개별 사기업의 서비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그러나 이번 금융투자협회의 비상장주권 거래 개념 증명 검토 결정은, 공적인 역할과 책임을 갖는 제도권 금융산업에 적극적인 블록체인 도입의 잰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블록체인 도입의 첫걸음
지금까지 금융업권에서 진행되어 왔던 블록체인 기술은, 앞서 다뤘던(금융거래, 이렇게 쉬워도 되나요?) 금융투자 업권의 "Chain ID"와 은행연합회의 "bank sign"과 같은 공인인증서 대체 수단 정도였습니다. 그 이유는 고객의 거래 내역을 바로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옮기기에는 활용성과 기술적 측면에서 검증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금융산업은 국민의 자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죠. (아, 물론 요즘은 핀테크의 영향으로 혁신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상당히 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증기술을 토대로 시작된 블록체인의 활용도가 점차 국내 금융 산업에 있어서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금융투자 업권의 블록체인 두 번째 도전은 <거래>에 있어서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를 통해서는 블록체인을 통한 거래 내용 증명을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그 기간 기술을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가진 철학을 토대로 과거의 거래 방식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조금이나마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 아! 그거슨 신뢰의 시장.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주식거래는 "한국거래소"를 통합니다.
일반적인 주식 매매의 흐름을 이해하자면, 내가 개설한 증권회사(한국거래소 회원사) 계좌를 통해서 주식 매수, 매도 요청을 합니다. 그러면 각 증권사에서 고객이 요청한 주문을 거래소에 또 제출을 하죠. 이 과정을 거쳐 주식 매매에 필요한 정보(시간, 가격, 수량)가 거래소에서 취합하는 호가에 반영이 되며, 각 호가에 알맞은 매수-매도는 짝을 지어 매매가 체결됩니다.
내가 원하는 가격과 수량에 맞춰 거래가 성사되면, 한국거래소에서는 체결 결과를 거래가 성사된 각 회원사에 통보를 합니다. 이렇게 수신받은 결과를 각 증권사에서는 개별 계좌/고객에게 다시 알려주게 되죠.
이렇게 내가 사고 싶었던 주식이 체결이 되면, 주식 매수 비용이 계좌에서 바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체결된 날짜 기준으로 D+2일째 되는 날 증권사에 납부합니다. 주식을 매도한 사람의 경우는, 본인이 계좌에 보유하고 있던 증권을 거래하는 증권사에 또 보내게 되죠. 이렇게 각 증권사에서 고객 계좌에서 받은 매수 대금과 매도 증권을 거래소에 결제하고 나면 매매거래는 완전히 완료됩니다.
한국거래소가 담당하는 시장조성기능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그 근간을 들여다보면 거래의 신뢰를 담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담보하고, 자본투자 시 공정성을 확보하며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시작한 조직인 것이죠.
그런데 한국거래소에서는 기업공개(KOSPI와 KOSDAQ 시장)를 통해 상장된 주식의 매매에 주로 관여합니다.
아직 상장할 여력이 없거나(기업공개와 상장에 필요한 요건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혹은 다른 이유로 상장을 꺼리는 기업은 믿을 수 있는 한국거래소를 통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비상장주식"은 원래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를 통해 매매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중개기관이 없어 투자자와 사업자 간의 자금순환이 원활하지 못했죠.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벤처나 중소기업의 직접 금융(주식 발행)을 통한 투자 유치 등의 이유로) <금융투자협회>에서 K-OTC(Korea Over-The-Counter)라는 장외주식시장을 열어 운영하고 있고, 이 시장에도 편입하지 못한 중소기업의 경우는 K-OTC BB 라는 호가 게시판을 통해 매매를 유도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뭐.. 벤처나 중소기업 증권시장에 대한 역사는 프리보드를 거쳐, 코넥스 시장까지 훑어보아야 하지만, 우선 오늘은 비상장주식 거래 방식에 초점을 맞추도록 합니다.)
이번 금융투자 업권의 블록체인 거래는 "K-OTC BB" 에서 거래되는 비상장주식에 우선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K-OTC BB"는 사실상 호가만 제공해주는 게시판의 역할만 담당하고 있고요.
실제 주식 매입과 매도는 해당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증권사의 계좌를 통해서 일종의 점두 거래(직거래) 형식으로 이뤄집니다.
A 증권사 고객 "아무개"는 성장할 것이라 눈여겨보던 비상장기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K-OTC BB 홈페이지를 통해서 해당 기업의 매도 호가가 올라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 이 가격이라면 미리 투자해두는 것도 좋겠다.'
생각한 아무개 씨는 A증권사에 연락을 합니다.
"K-OTC BB에 올라온 주식을 매입하고 싶습니다."
A증권사에서는 아무개 씨가 원하는 종목의 매도 호가를 확인하고, 해당 호가를 접수시킨 B 증권사에 연락을 취해서 거래를 성사시키게 됩니다.
K-OTC BB 거래의 경우 금융투자협회는 그라운드만 제공해줄 뿐, 사실상 거래를 성사시키는 플레이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증권회사를 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비상장주권의 블록체인 거래는 증권사들이 직접 해당 거래의 신뢰도를 검증하는 방식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 거래를 담당하는 노드는 개별 증권사가 담당하고, 그 노드를 거쳐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블록이 하나씩 생성되어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는 원장을 담당하게 되겠죠.
물론 거래 원장에 저장되는 데이터를 어디까지 공개하여 거래할 것인지, 또 작업 증명의 과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인 부분은 앞으로 개발을 통해 진행해 나가겠지요.
그런데 도대체 왜 블록체인을 통해 비상장 주식 거래를 하려는 걸까요?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주식거래. 그래, 다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해야 하죠?
그것은 앞서 확인했던 한국거래소나 금융투자협회 등이 설립된 목적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피, 땀, 눈물을 흘려가며 번 돈을 어딘가에 투자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내가 투자하려는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가 진실인가?
이 주식의 현재 가치가 정말 맞는 것일까?
내 주식 매수자금이 다른 사기꾼에게 넘어가지 않고, 제대로 매도자에게 전달되었나?
내가 매입한 주식을 내 계좌로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KOSPI, KOSDAQ 외 거래시장을 통해 이러한 신뢰의 문제를 위임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 및 규정을 통해 기업은 "공시"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합니다. 이 정보를 토대로(추가로, 주갤러의 이야기..) 기업의 정보를 믿고 있죠.
또 많은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거래를 하기 때문에 거래량을 통해 시장의 관심을 확인하기도 하고, 실시간으로 변하는 호가와 체결 내역, 차트를 통한 과거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주식의 현재 가치를 가늠하기도 합니다.
또 국가의 법을 통해 만들어지고 제재를 받는 증권회사와 거래소를 통해, 주식을 거래하기 때문에 내 돈이 하늘로 증발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있죠.(아.. 물론 상폐당해 투자금이 사라지는 경우는 있네요..ㅠ)
블록체인의 주식 거래는 이러한 신뢰의 문제를 분산 원장 방식으로 해결할 것입니다.
과거의 거래 내역을 결코 변함이 없이 유지하고, 신뢰의 주체를 분산시켜서 시장 참여자'들'(다수)의 검증과정을 통해 해당 매매의 건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각 참여자들이 모두 공유한 데이터들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정보가 되어 해당 기업에 대한 현재가치를 예측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직접 증권사에서 연락을 주고받아 매매를 진행하는 해당 시장(K-OTC BB)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인적, 물적 비용에 대한 문제도 해결이 가능할 것이고요.
이 것뿐인가요. 단 하나의 기관에서 "신뢰"의 프로세스를 통제할 때 생길 수 있는 "부패"의 문제.
그것이 법률이나 규정을 통하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퍼져있는 데이터를 통해서 해결하는 2차적인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권력을 가진 기관의 부패를 우리는 수도 없이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더해서 거래 내역에 대한 원장 관리 뿐만 아니라, 비상장 주권 발행 등으로까지 업무의 영역이 확장된다면 스마트계약을 통한 관련 업무의 자동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사를 읽고 단상을 마치며.
물론 퍼블릭 블록체인이 아닌 특정 노드만의 시장 참여가 과연 진짜 블록체인의 가치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 문제는 앞으로 금융 산업이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국내 금융 산업에서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블록체인의 도입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큰 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년 K-OTC BB 를 통해 블록체인 거래가 상용화된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해보아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