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신혼이 더 아름답다고 해서, 내 신혼이 못난 것은 아니다.
올해 즐겨봤던 프로그램들 중에는 연예인 부부의 생활을 관찰하는 예능이 주를 이뤘습니다.
가수 이효리 씨는 4년 만의 컴백을 앞두고 대중과의 소통 창구로 JTBC의 <효리네 민박>을 선택했습니다.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부부의 소탈한 모습이 화제가 되어 최고 시청률 10.00%를 넘기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안재현-구혜선 부부가 도심을 떠나 시골에서 꿀 떨어지는 신혼 생활을 즐겼던 tvN의 <신혼 일기> 역시 최고 시청률 5.00%를 넘겼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며 화제를 이끌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올 가을 다시 시작된 <신혼 일기 2>는 정상민-장윤주, 김소영-오상진 부부의 신혼 생활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 중 인기가 높았던 프로그램으로는 SBS의 <동상이몽 시즌2 - 너는 내 운명>이 있습니다.
추자현-우효광 커플의 케미가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습니다. "결혼 조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 달고 사는 '우블리'는, 대한민국 남편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채널을 돌리면 손쉽게 접할 수 있었던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
한 해 동안 소비했던 부부 관찰 예능 콘텐츠는 우리 부부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와, 우리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
위의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면서 남편이 가장 많이 했던 말입니다.
"아, 저렇게 살면 좋겠다. 여보 우리도 저렇게 여유롭게 살자."
<효리네 민박>과 <신혼 일기>가 방영한 모습은, 조잡하고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부부가 서로에게 집중하며 생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콘텐츠는 도심에 살고 있는 많은 부부들에게 힐링의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결혼 전보다 더 얼굴 보기 힘든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바쁜 현대의 부부들에게 분명하게 던지는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매달 깨닫는 남루한 월급 통장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나의 개성과 가정생활을 조직에 양보하는 미덕(?)을 베풀며 사는 30대에게, 연예인 부부가 하루 종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화내고, 즐기는 모습은 우리가 꿈꿔왔던 아름다운 가정의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가 심한 대한민국의 30대로 살면서, 남의 가정의 행복을 바라보는 눈길이 순수한 동경이기만 하긴 어렵습니다. 특히나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관찰 예능이기 때문에, 더욱 나의 현실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이기도 쉽습니다.
사실 최근 부부 관찰 예능은 육아 관찰 예능에서 보여줬던 박탈감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습니다.
탁 트인 조망권과 넓은 평수를 자랑한 아파트, 비싼 놀이 교구에 둘러싸인 그들의 자녀를 피상적인 콘텐츠로 제작한 것과 달리, 부부의 사랑과 생활이라는 추상적인 콘텐츠를 제공했습니다.
부부가 싸울 때 몇 시간이고 서로의 눈을 맞추며 끝없이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하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예쁜 말과 표정을 나누는 행복한 일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행복 경쟁이, 어느덧 현실 부부의 불만족의 지렛대가 되어 피로감을 추가하기 시작합니다.
'저 집 아내는 아침밥 해주려고 엄청 노력을 하네.'
'저 집 남편은 배려심이 진짜 깊네.'
라고 생각하며 옆에 앉아 있는 배우자를 바라보면 갑자기 한숨이 쉬어지기도 합니다.
평균 방송 기간 2달간 보여준 연예인 신혼부부의 생활이 그들의 결혼 생활 전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들이 프로그램 내에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청자의 일상 피로를 해갈시켜주기 위한 예능 콘텐츠의 목적상, 적당한 편집 과정을 거쳐 잘 정제된 부부의 모습이 탄생한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의 생활을 제삼자의 입장에서만 관찰하기 때문에, 내가 당장 한 남자의 아내로 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면서 느끼는 1인칭 감각과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곧 우리 부부의 24시간을 카메라로 담아 적당한 편집을 거쳐 제삼자에게 보여주면, 연예인 부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어쩌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현실 부부는 언제나 1인칭, 2인칭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굳이 타인에게 공개할 필요 없는 무료 하거나 지치고 힘든 시간들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부부가 마주하고 있는 바쁜 현실 속에서도,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하며 웃고, 울고, 화내고, 즐기는 감정들이 연예인 부부와 동일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너희의 신혼이 더 아름답다고 해서, 내 신혼이 못난 것은 아니다.
비단 연예인 부부의 일상을 엿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SNS 속 옆 집 부부의 포스팅을 보며 내 감정을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의 잘 정제된 이미지만을 보고 전체를 조망한다는 착오를 버린다면,
너희의 아름다운 신혼 생활이 나의 신혼 생활을 가치 판단하는 척도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부부의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항상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