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주
세상에 수많은 J 도시들이 있겠지만, 한국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제주도 아닐까 싶다. 코로나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제주도는 휴가철의 유일한 대안이 되었고 8월 성수기에 떠난 제주는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이 기세를 몰아 제주도 서귀포시에 제2의 공항을 짓겠다고 하는데, 무산됐으면 좋겠다. 개발이란 서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업이라 무조건 하면 안된다 하긴 어렵지만, 자연은 한번 망치면 되돌리는 것이 미친듯이 어렵다는 걸 코로나의 시대에 더욱이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제주 제2 공항은 좀 아니지 싶다. 그리고 이동의 편리함은 좋은걸 금방 소진하게 하고 지키고 싶은걸 금방 닳게 한다. 그 가속화가 과연 좋은걸까?
이번 여름 휴가 동안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면서 빈둥거렸더니 이 좋은걸 오랫동안 누리고 싶어졌다. 환경보호란 예전엔 한가한 소리였겠지만,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동물들이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옮기게 되고, 미친 기후변화로 여기 저기 파괴되는 소식들을 듣고 있자면 이건 더이상 한가한 소리가 아니다. 오랜만의 휴가에서 지속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는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원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애쓰고, 행복할때는 이게 얼마나 갈지 불안에 떠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나는 앞으로도 일년에 일주일은 휴가를 떠나 한량처럼 사는 삶을 지속하고 싶다.
제주도에서 뭘 했길래 이렇게 제주사랑이 각별해졌냐고 묻는다면 잠시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한 일이라곤 없었지만 전부 다 특별했다. 우선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스노클링도 했다. 여름 바다는 따뜻하고 차갑기도 했다가 마지막엔 그을린 피부랑 젖은 머리칼을 남겼다. 타기 싫어서 열심히 선크림도 바르고 래시가드도 챙겨 입었는데 막상 별로 타지 않은 피부를 보니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야외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더운 숯불 옆에서 고기를 구었다. 감자도, 양파도, 버섯도 구워서 노릇하게 익혀서 꺳잎에 편마늘과 싸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부지런히 일어나 요가를 하고, 프렌치 토스트도 구워 먹었다. 차타고 이동하고, 힐일없이 동네 공원의 운동기구들을 깔짝대다가 나른한 하루들이 이렇게 소중했구나 생각했다. 별 것 아닌 얘기들로 밤을 채웠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내일의 일정부터 전기차 시대의 문제점까지 다양한 주제들이었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까지 어쩐지 열정적으로 나누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열심히 얘기했고 누군가는 중간에 지겨워 지기도 했지만 다들 각자의 최선을 다해 떠들다가 결국 지쳐서 자러 가버렸다. 공기중에 물이 가득한 제주도의 밤바다를 걸어다니면서 이런게 여름 휴가구나 했다.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오고 싶다 생각하게 되는, 여러번 반복해도 지겹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하루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