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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Oct 04. 2020

오디세이아

2010년 뉴욕으로 한달간 여행을 떠났다. 대학원을 막 졸업했던 시기였는데, 당장 취업은 하기 싫었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전부 탈탈 털면 뉴욕 이모네에서 한달정도 머물 경비는 될 것 같았다. 뉴욕은 대학원 생활 내내 나의 이상향 같은 곳이었는데, 거기 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곤 했다. 왜 뉴욕이였냐면 영화를 보면 늘상 나오는 곳이 뉴욕이었으니까. 영화속 멋진 주인공들이 누비는 거리, 온갖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도 마지막엔 꼭 화려한 마천루를 조망하며 끝나는 도시, 미국인들에게 조차 때론 선망의 도시가 되는 뉴욕이 나는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뉴욕은 정말 꿈만 같았다. 이모네 집에서 맨하탄까지 지하철로 한시간정도 걸리는데 매일 아침 맨하탄으로 가서 저녁 늦게 돌아갔다. 모든 거리가 영화속에서 본 듯 했다. 실제로 촬영지도 매우 많아서 다 쫓아다니기도 벅찬 수준이었다.

오디세이아도 문학계의 뉴욕같은 책이다. 크게 보자면 오디세우스가 10년간의 트로이 전쟁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10년간 바다에서 떠돌다 겨우 집에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바다에서 떠도는 10년간에 오디세우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적혀있다. 재밌는 점은 수천년이 지난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하고, 수많은 문학에서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 소설, 에세이, 웹툰,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오디세이아에 대한 언급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영하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서는 기고만장한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와 맞딱뜨려 자신의 허영심과 낯선 땅에서 조차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자기 자신을 nobody라고 낮추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영하 작가는 여행지에 우리는 낯선 땅에서조차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허영 대신, 그 곳에서 노바디를 자처하며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의 인생 웹툰 중 하나인 언럭키맨션의 결말부분에서 작가인 주인공은 자신의 새로운 소설의 수상소감에서 오디세이아를 차용한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어떤 섬에 도착하여 몇몇 부하들이 그곳에서만 나는 어떤 열매를 먹게 된다. 그 열매, 연실을 먹는 사람들은 기억을 잃고 가족과 자기 자신조차 잊은 채, 행복한 기분만 누리는데, 사실 가족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에게 쉽게 상처주기 쉬운 존재이며 그 때문에 한발자국 떨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 특히 동생과의 관계가 엉망이었던 주인공에게 동생은 연실을 먹으라 했고 주인공은 그걸 기꺼이 받아들일거라는 내용의 수상소감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오디세이아의 이야기가 변주되고 새롭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러니 더 미룰 수 없었다. 고전 문학의 매력은 이런 보편성에서 온다.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독서 초보인 나에게 고전 문학은 너무나 어려운것... 호메로스씨(?)의 원작 대신, 오스트리아 작가가 쉽게 풀어쓴 책을 읽었다. 이 책도 (작은 책이긴 하지만) 무려 600쪽에 달한다. 

오디세이아에서 좋았던 것은 영웅인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늘 고민하는 존재다.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예언을 들었을때, 부하들에게 알릴지, 사기를 위해 비밀로 할지 고민하기도 하고, 어떤 섬에서 소와 양떼를 잡아먹지 못하게 해서 부하들에게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고는 자기 자신조차 그 말을 믿지 않기도 한다. 게다가 정말 읽다보면 오디세우스가 얄미운 구석도 물론 있지만 너무너무 불쌍하다. 아니 이렇게 까지 집에도 못가고 벌을 받을 일인가? 싶은 정도로, 그리스의 신들은 가혹하다. 잔머리 굴리는 오디세우스의 꾀를 얄미워하다가,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같은 면모에 답답해 하다가, 어떻게든 집에 가보겠다고 포기하지 않는 오디세우스를 결국엔 응원하게 되는 이야이기였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또 어느 곳에서 인용될지도 기대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앞으로 더 많은 부분이 오디세이아 처럼 보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 이 책의 결말 부분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아내에게 구혼하며 나쁜짓을 일삼던 구혼자들을 일시에 다 죽여버리는데 어쩐지 왕좌의 게임의 피의 결혼식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작가들도 참고했을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창작자들의 레퍼런스가 되는 책이라니 그 자체로도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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